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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Zorba Aug 23. 2018

둘째를 낳아도 될까요?_부부의 육아력

(17) 첫째와 둘째 사이_엄마


들어가며

 ‘둘을 낳아 기를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누구에게로 향해야 할까. 물론 나 자신에게 가장 먼저 던져져야 할 물음이다. 육아 이전에 임신과 출산 과정부터 어렵다면 그것은 또 오롯이 내 몫이기에. “부장님, 저 시험관 아기 시도 중인데, 수요일에 병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하니 “토요일에 가세요.” 라고 한다면, “주말에만 병원갈 수 있게 제 맘대로 생체리듬을 바꿀 순 없고...사표 쓰겠습니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다니고 있는 직장이 있다면 직속상관에게도 물어봐야 할지도. 남자 직원이 많은 회사에 다닌다면, '여직원 휴게실에서 모유 유축하는 행동이 위화감이 없을 지' 동료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하고. 여차하면 ‘내가 둘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 둬도 될까?’도 생각해 봐야 한다. ‘남편보다 연봉이 많거나, 근무여건이 좋거나, 장기적으로 롱런할 수 있는 직장을 다니고 있어, 내가 가계의 주 수입원이라면, 육아를 위해 남편직장을 그만둘 수도 있을까?’ 까지 부부가 생각해 볼 일이다.      



육아력

 ‘육아에 요구되는 양육자의 육체적 능력과 그것을 감당해낼 수 있는 정신력 까지를 망라한 육아의 능력치’를 두고 우리 부부가 자주 쓰는 말이다. 주로 육아를 맡을 사람의 육아력이 관건이 될 것이다. 배우 홍지민씨는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 “현재 두 딸이 있다. 아이를 더 낳고 싶은데 시어머니와 남편이 반대한다”고 했다. 홍씨가 아닌 남편과 시어머니가 육아를 하기 때문이란다. 그렇다. 육아를 도울 수 없는 가족 구성원에게는 아이 출산에 대한 발언권이 없는 게 맞다. 가정의 주 수입원이라 해도 한 아이를 더 출산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나서서 목소리를 높이긴 어렵다. 출산 이후에 육아하는 수고는 누군가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기 때문이다.      



준비된 육아력 이었을까?

 언제나처럼 나는 무모하고 용감했다. 육아의 방식이 사는 방식과 닮듯, 질러놓고 보는 스타일인 나는 이번에도 그랬다. ‘하나보다는 둘이 좋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쉽게 답을 찾을 수 없는 일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이 좋다는 쪽’에 의존해 왔다. 그 통계의 표본집단은 단연, ‘주변에 내 보기에 행복한 가정’이었다. 지극히 주관적인 표본인 셈. 그러니 ‘아이 둘을 갖는 것이 가장 좋은 답’이라고 우길 생각은 결코 아니다. 여기에 “둘째 고민은 둘째를 낳아야 해결된다.”는 누군가의 말도 내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어차피 낳을 거면 첫째가 쓰던 육아템이 집안에 여전히 있을 때, 연달아 키우겠다는 야무진 마음까지 더해졌다.

 첫째를 임신했던 대로 이번에도 산부인과에 가서 날을 받았다. 둘째는 마음먹은 그 달에 한 방에 우리 곁에 와주었다. 첫째 임신이 어려웠던 터라, 둘째 임신도 장기전이 될 것으로 예상했던 남편은 둘째 갖자는 의견에 거부가 아닌 정도로 어물쩍 응했었다. 그러다 둘째가 생각보다 일찍 찾아오자, 마음의 준비가 덜 돼있던 남편은 짐짓 당혹스러워 했다.



주변 육아력

 무모하기만 한 나도,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긴 했다. 남편은 야근, 당직, 주말 근무가 거의 없고, 정시 퇴근이 비교적 가능한 직장에 다니고 있다. 일과 중에 열심히 일하면, 퇴근 후에 육아를 함께 할 수 있는 형편이다. 그래도 본업이 있는 남편이기에 일이 바쁘거나, 고단해서 육아를 전혀 못 돕는 날도 있을 것이라 생각은 했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돕지 않아도 누군가 육아하는 공간을 함께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는 것을 마음의 마지노선으로 생각해 뒀다. 거기에 더해 남편은 나와 육아관이 비슷하다. 그리고 (부모세대와 비교하자면) 세대차이가 없다. 그러니 육아방식에서 마찰이 거의 없다. 덕분에 나는 첫째를 비교적 수월하게 기르고 있었다. 


 그렇다가장 좋은 육아인력이 나에게는 남편이다낮은 수준의 강박에 가깝게 유난을 떠는 나에게 적응해 온 지 벌써 6년 차인 남편은 나와 손발이 잘 맞다. 첫째 출산 전에 결혼해 4년 가까이 시간이 있었던 우리부부는 가사분담을 효율적으로 해왔다. 우리는 각자 빨리, 잘 할 수 있는 일을 택해 동선이 겹치지 않게 가사분담을 했다. ‘집안일이 너무 많아, 끝이 없음’을 남편이 깊이 공감해준 덕이다. 


 이따금 남편이 “나만큼 육아를 잘 도와주는 남편도 드물다.” 라고 할 때가 있다. 그렇다. 남편은 육아와 가사를 잘 도와주는 편이다. 그러나 그 기준이 ‘육아나 가사를 도무지 도울 수 없는 아빠들’에게 가 있는 형편인 것은 아쉽다. 대부분의 아빠들이 야근과 주말근무와 퇴근 후 업무, 회식 등 '직장생활이 전부인 삶'을 살고 있다. 그런 환경에서 엄마 혼자 아이 둘을 돌보는 것은 '끊임없이 내려오는 바위를 영원히 밀어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의 형벌 같은 일'이다. 


 현재 우리는 바삐 돌아가는 도심에서 멀리 거리를 둔 곳에 살고 있다. 부부 둘 다 특별히 만날 사람도 없이 섬처럼 지내고 있다. 육아 말고는 달리 친목을 도모할 친구도 만들지 않은 셈. 그러니 부부가 '아이 둘을 키우기에 이처럼 좋은 환경일 때 둘째를 얼른 낳아 기르자'는 생각이 나의 결심을 서두르게 했을 것이다. 이 타이밍이 언제 중단될 지 모르기 때문에. 



 사실 남편이 아내를 도울 시간적 형편이 된다면, 안 돕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가사도우미와 결혼한 것이 아닌 다음에야, 육아와 가사노동으로 혼자 끙끙대는 아내를 돕지 않고 남편이 즐거울 수는 없다. 더구나 요즘은 아빠들이 ‘요리 잘 하는 남자’, 혹은 ‘육아도 잘 하는 아빠’로 자신을 이미지 메이킹 하는 걸 자랑삼는다. 가족은 나 몰라라 하며 생업에만 열중하는 전통적인 아버지상과는 결별하는 게 맞기도 하니까. 


 그럼에도 남편은 지금 우리 가정의 주 수입원이다일단 다음날 일 하는 데 무리가 없어야 한다. 퇴근 후에 공부도 해야 하고, 교육도 다녀야 하고, 강연이나 중요한 모임이 있으면 주말도 시간을 내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 그러니 남편이 나서서 도와준다고 할 때는 고맙다고 하지만, 강요할 수는 없다. 그때 육아는 오롯이 내 몫이 된다. 


 밤새 둘째는 자지 않던 밤, 첫째도 안아달라고 목놓아 울던 밤, 나 말고는 아이를 안아줄 다른 이가 전혀 없던 그 밤의 답답함이나 힘듦은 지금 생각해도 울컥해진다. 그러니, 주변에 육아를 도울 인력이 든든히 있다 해도, 나에게 힘든 시간은 찾아 오게 마련이다. 가끔은 반복되는 일상의 무게에 지치기도 한다. 나 아닌 누군가에서 답을 찾을 수 없는 그때가 오곤 하는 것이다. 그 때 남편은 “당신이 우겨서 바로 이 때에 낳자고 했잖아? 이 정도 각오는 한 거 아니었어?” 라고 한다면 결국은 내 몫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남편들이 싸우고 나서 문을 쾅 닫고 제 방으로 들어가면, 결국 여자들은 독박육아의 시작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육아계의 괴담 때문에, 오늘도 아내들은 남편에게 화가 나도 못내 한 번 더 인내한다. 육아를 도와주는 남편은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에게는 치트키가 있었다바로 둘째 출산 즈음에 엄마가 곧 퇴직 하신다는 사실이었다. 남편이 주말에 자주 일 때문에 집을 비울 때 엄마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큰 힘이 된다. 엄마는 육아보다는 ‘먹고 치우는 일’을 도와주시는 인력이다. 엄마는 첫째가 먹을 반찬을 해주실 수 있고, 무엇보다 첫째가 외할머니를 잘 따른다. 전염병에 걸려 격리가 필요했을 때, 첫째는 외갓집에서 엄마, 아빠를 찾지 않고 잘 지내다 왔으니까. 하지만, 엄마도 엄마의 삶이 있으시기에, 모든 순간 나를 도와주실 순 없는 형편임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하여 첫째를 기르면서 파트타임으로 일할 동안, 이따금 첫째를 봐주시던 시터 선생님께도 여쭤봤다. “선생님 제가 둘째를 가져도 될까요?” 육아력이 고갈되거나, 친정 부모님 도움을 받기 어려운 때가 오면, 선생님은 현재도 우리 둘째를 잘 돌봐주신다. 무엇보다 성정이 무척 고우신 분인 것이 가장 감사하다. 유치원 교사로서 오랫동안 아이들을 교육해 오신 분이며, 우리 부부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 계신 점도 안심이 되었다. 전자기기보다는 책을 가까이 하시는 분이라는 점도 마음이 놓였다. 책을 좋아하는 첫째가 책을 더 좋아하게끔 만드신 분이시기에. 나아가, 나보다 아이를 훨씬 행복하게 해주시는 마법 같은 능력이 선생님에겐 있으시다. 모두 다행한 일이다.  


 “시터 선생님댁 강아지 밥 주려고, 저희 아이를 선생님댁에 데려가셨다구요?” 이웃집에서 들리는 이런 터무니없는 사건들이나, 어린이집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사건들을 듣고 나면, 우리 아이를 함께 돌봐줄 가족 아닌 누군가를 찾는 일 역시 천운에 가깝게 어려운 일임을 실감하게 된다.          



현재 나의 육아력     

 국이며 반찬 베이스가 되는 육수는 늘 냉장고에 준비해둔다. 아이 밑반찬이 없을 때 즉시 구울 수 있게, 생선은 한 마리씩 미리 손질해 저장해 둔다. 고기 먹기를 싫어하는 첫째의 균형 식사를 위해 다짐육과 함께 볶을 알록달록 채소들도 손질해 둔다. 저녁상에는 늘 새로운 반찬을 하나씩이라도 올리려 한다. 그러다보니 첫째 하원 후둘째가 깨어 있다면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일은 전쟁통이나 다름없다. 첫째는 책 읽어달라고 가져오고, 둘째는 때마침 배가 고파 운다. 둘을 키우면 동시에 손이 필요한 일이 다반사다. 물론 타이밍을 잘 맞추면, 아이들 컨디션이 좋으면 반찬 한 두 가지 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을 터. 하지만 매번 그렇게 상황이 좋지는 못하다.   


  어린이집에서 첫째가 열이 난다는 연락을 받았다. 둘째가 자는 사이 첫째를 얼른 데려와 씻긴다. 둘째가 낮잠에서 일어난다. 첫째와 둘째가 동시에 응가를 해, 둘을 안고 가 씻기며 머릿속으로는 아픈 첫째에게 먹이기 좋으면서도 비교적 간단한 요리를 생각해 본다. 큰 솥에 닭을 푹 삶기로 한다. 첫째가 좋아하는 버섯과 야채를 참기름을 듬뿍 넣어 소금에 볶는다. 둘은 번갈아가며 울기도 하고, 기다려 주기도 하며, 기본적인 욕구들을 가까스로 해결한다. 우는 둘째를 등에 업고 플레이팅을 시작한다. 남편이 돌아오면 그제서야 밥을 먹고, 다시 육아력을 충전해 본다. 못 먹어서 살이 빠지냐고? 아니다. 나는 밥이 코로 들어가는 느낌이더라도, ‘엄마도 밥을 먹는 사람임’을 아이들에게 늘 보여주려 한다.     



 닥치면 어찌됐든 키워지는 게 육아력일까? 둘째가 칭얼칭얼 엄마를 부르기 시작하는 동안에도 감자 껍질을 빛의 속도로 벅벅 벗기고 있는 나를 마주하며, 이것이 육아력 일까 생존력 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금방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는 첫째를 보면 육아력은 이내 나의 능력치 이상으로 충전된다. 라면조차 끓이기 귀찮아 하던 미혼 때의 나는 어디론가 가버린 모양. 이렇게 쓰고 보니, 누군가에게 이런 일상은 형벌같은 일일수도 있갰다. 내가 느끼기에도 이런 육아력은 나의 이전 삶을 돌아보았을 때 기적같은 일이므로.           



내가 할 수 없으므로타인에게

 원칙이 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가사나 육아를 맡길 때는 그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되도록 관여하지 않으려 한다. 걸레를 말리는 방식이 마음에 안 들어도, 설거지 하다 주방이 물바다가 되더라도 못 본 척 한다. 위생에 있어서도 아이가 당장 병에 걸릴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면, 그냥 두고 본다. 그게 싫다면, 잠을 참고, 시큰거리는 손목과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내 업무나 일상을 모두 접어두고 ‘내가’ 하면 된다. 내가 할 수 없으므로 남에게 부탁하는 것임을 잊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참 마음처럼 쉽지는 않다.     



결국부부의 육아력

 둘째 생후 40일 즈음, 두 아이가 모두 아파 몹시 힘든 육아 중에 시어머니께서 육아를 도와주신 적이 있었다. 평소 할머니와 즐겁게 잘 놀던 첫째는 몸이 힘들어지자, 아빠 껌딱지가 되어 할머니에게 가지 않으려고 울었다. 둘째 역시 밤잠을 길게 못 잘 때라 나와 딱 붙어 새벽녘에 거실을 지키기 일쑤였다. 첫째 육아를 위해 오셨던 어머님은 첫째가 울며 도망 다니자 머쓱해지셨다. 

 친정어머니는 가사를, 시어머니는 육아를 잘 도와주시지만 한계가 늘 있었다. 물론 아이 둘을 키우는 데 돌봄인력이 둘 이상 있으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부부에게 지치지 않는 체력과 정신력만 있다면 부부 둘이서 키우는 것이 아이들에게나 우리자신에게나 모두 혼란도 적고, 평온하다는 것을 경험했다. 결국 부부의 육아력이 관건인가. 그리하여 부부는 육아력을 앞으로도 쭉 전투적으로 키우면 되는 것인가.          




두 계절 뒤의 여유를 바라보며

 경험하지 않고서는 알기 어렵다. 이렇게 고단할 줄 알았다면, 그럼에도 이렇게 버텨낼 수 있을 줄 알았다면, 하는 이 모든 생각들은 가정에 불과하다. 그리고 시간은 멈추고 나의 선택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둘째 낳을 더 나은 때가 오지 않을까?' 하고 기다리는 것보다는 부딪혀서 체득해가는 지금의 시간에 우리는 만족하고 있다.

 어떤 일이 힘들 때, 나는 항상 두 계절 뒤를 생각한다. 그 때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말복이 지났다. 절기상 가을로 접어들었다. 가을과 겨울을 지나고, 둘째가 아장아장 걷는 봄이 온다면, 지금의 바쁨이, 지금만이 누릴 수 있는 아이들의 자라남이 사뭇 그리워질 것이다. 어제 뒤집기를 해낸 둘째가, 오늘은 팔빼기 까지 연속동작으로, 되집기 까지 단번에 해냈다. “천천히 자라렴.” 잠든 아이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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