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책이 중요한 이유]
첫인상에서 영어 수준을 가늠하게 해주는 여러 가지 요소들 중 하나가 바로 발음이다. 어린 두 딸을 국제 학교에 들여보내며 내가 기대했던 몇 가지 중 하나(아마도 제일 많이)도 발음이었다. 다른 영역은 조금 커서 공부해도 되지만, 발음만큼은 어렸을 때 몸에 익힌 것을 따라가기 힘들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국제학교 5년 차인 지금 내가 가장 집중하는 것은 바로 말과 글의 '내용'이다. 적절한 단어를 골라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다면, 네이티브 발음과 억양 따위야 가뿐히 포기하리라. 발음과 내용이 두 마리 토끼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충실한 내용을 유창한 발음으로 구사하는 훌륭한 아이들도 많다. 다만, 우선순위의 측면에서 내용의 중요성에 집중하게 되면, 내 아이 담임의 국적이 비영어권일지라도, 내 아이의 단짝이 북미 친구가 아니어도, ORT 대신 마법천자문만 본다 하여도, 초조하지 않을 수 있다.
몇 년 간 이곳에서 꽤 다양한 국적의 엄마들과 영어로 소통하면서, 똑 부러지게 이야기하는 엄마들은 하나같이 네이티브 발음이 아니더라는 공통점을 찾았다. 나에게 국한된 요상한 우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말로든 글로든 의사소통을 잘하려면 의도와 의미가 잘 전달되는 것이 최우선이다. 발음의 유창성보다 내용의 깊이, 단어의 선택이 우선하다는 당연한 결론에 도달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디즈니 영화나 미드에서 들었던 영어 발음들들 마치 영어의 정통처럼 느끼는 것은, 영어가 평생 숙제인 뭘 모르는 찐 한국엄마의 로망이지, 내 아이들에게 강요할 것이 아니었다.
내가 북미나 영국과 같이 영어권 국가에 있었다면, 영어 발음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데 좀 더 시간이 필요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곳 호찌민의 국제학교에는 아주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이 함께 공부하고 있고, 우수한 아이들의 국적도 마찬가지로 다양하다. 여기에서 지내는 동안, 친구들 간에 발음 지적을 하는 등의 이야기는 들어본 바가 없다. 너는 너대로 영어를 구사하고, 나는 나대로 영어를 구사하고. 우리는 그저 서로 뜻이 통하면 된다. 다시 말해, 내 딸들에게 어떤 발음이 좋고 나쁘고의 기준은 그다지 뚜렷해 보이지 않는다. 영어가 어떤 다른 나라의 언어라는 개념보다도, 다 같이 쓰는 공용어라는 개념으로 자리 잡은 것이 매우 다행스럽다. 영국인 담임 선생님을 만난 한 해는 아이가 제법 영국식 발음을 모방하는 듯하다가도, 다음 해에 방글라데시 국적의 담임 선생님을 만나고 처음 들어보는 억양을 쓰기도 했다. 누가 쓰는 영어든, 어떤 스타일의 발음과 억양이든, 맞는 영어, 틀린 영어가 아니라 그저 소통의 도구인 영어인 것이다.
묻는 말에 동문서답하지 않고 야물딱지게 답하는 한국 아이들은 영어도 역시나 잘한다. 한국어로 기승전결 구조적인 글쓰기가 가능한 아이라면, 영어로도 마찬가지 결과물을 낸다. 꼭 필요한 영어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다른 표현으로 돌려 말할 줄 안다. 결국 어떻게 답하고 어떻게 써 내려갈지 머릿속에서 잘 정리하는 아이는 그게 한국어든, 영어 든 간에 잘 표현해 낸다는 것이다. 계속 국제학교에 다니고 해외생활을 이어나갈 아이라면, 모든 읽을거리가 영어라도 무관할 것 같다. 하지만 우리 가족과 같이 해외 생활 기간이 유한하다면, 모국어책을 놓아서는 안된다. 영어발화의 수준이 모국어 발화의 수준을 추월하기는 쉽지 않다. 영어를 잡자고 모국어를 놓치면, 모국어의 수준이 정체되거나 퇴보할 수 있다. 해외에 머무르는 몇 년 간 소위 최대한 뽕을 빼서 영어를 많이 해서 돌아가길 원한다면, 처음 1-2년 영어 회화에 집중하되 이후에는 양질의 한국어책을 읽어 영어 말하기와 쓰기에 부스터를 달아야 한다.
큰 아이는 호찌민 입성 전에 모국어가 상당 수준 정착된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수업 내용을 백 퍼센트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그 간 읽어둔 책들의 배경 지식을 많이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이 증발해서 수증기가 된다는 배경지식을 알면, water, hot, air와 같은 단어만 알아도 선생님 설명의 흐름상 evaporate라는 단어의 뜻을 '증발하다'로 유추하는 식이다. 여러 과목에서 이런 경우를 발견하면서 아이가 한국어 책을 읽는 걸 적극 지원해 주었다. 둘째 아이는 호찌민에 올 당시 한국나이 5세였으니 한국어도 영어도 아무것도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일단 학교에서 살아남아야 하니, 간단한 영어책들에 집중적으로 노출시켜 주려고 힘썼더랬다. 한국어책으로 치자면 돌쟁이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쉬운 책들이었는데, 차차 수준을 올려가긴 했지만, 이때 내가 간과했던 점이 있다. 한국어책으로는 제법 글밥이 많은 동화책을 읽던 아이가, 단어 반복에 초점을 두고 스토리가 부진한 책들을 읽으니 책에 흥미를 잃어갔던 것이다. 둘째는 아직 학습보다는 놀이 중심의 하루를 보낼 때였으니, 학교 생활에서 필요한 초급회화 위주로 도움을 주고, 책은 오히려 한국어로 수준을 높여갔더라면 최종적으로 지금 아이의 읽기 수준이 훨씬 더 높아졌을 거라는 후회가 든다. 책에 대한 흥미도 잃지 않고 배경 지식도 탄탄하게 쌓여 학습으로 넘어간 지금의 수업 시간이 더 수월했을 수 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나는 잠시 한국에서 머물며 한 학기 동안 아이들을 한국 초등학교에 보냈다. 둘째는 그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한국어책만 읽었는데, 다시 호찌민에 돌아왔을 때 걱정과는 다르게 오히려 영어책 읽기 수준이 올라가 있었다.
요즘 첫째 아이는 한국 베스트셀러 소설들을 좋아하고, 둘째는 한국어 학습만화에 푹 빠져있다. 중학생이 된 첫째의 엄청난 라이팅 과제들, 둘째의 엉망인 스펠링 노트를 보면, 두 아이 모두 영어 학원에 몇 달 보내야 하지 않나 수시로 고민에 빠진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교복도 벗지 않고 소파에 널브러져 책을 집어든 아이들 모습을 보고 이내 고민을 접어둔다. 탄탄한 아웃풋을 내기 위한 인풋의 시간을 기다려주자는 생각으로, 그리고 발음이 다소 뻗뻗해도 뼈 있는 문장력을 구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