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교 유치부 전학 후기]
왜 때문일까. 어릴수록 적응이 빠를 거라고 믿었다. 한국에서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다가 갑자기 초등생이 되어 학습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내 걱정은 오로지 첫째뿐이었다. 만 3.5세 둘째는 텃새 없이 편견 없이 새 환경에 스르르 녹아들 줄 알았는데 6개월을 꽉 채워 꼬박 울며 들어갈 줄. 정말이지 미처 몰랐다.
둘째는 매일 교실 입구에서 기본 2-30분씩 내 바지끄덩이를 붙잡고 매달렸다. 한국에서 만 1세부터 기관에 갔던 아이인지라 결국 저 교실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건 아는 듯했다. 다만 이런저런 핑계로 엄마와 떨어지는 시간을 유예시켰다. 내 눈물 그치고 가, 가방 정리할 동안 기다려줘. 화장실 같이 가주고 가. 저녁에 뭐 먹을지 말해주고 가. 등 매일 핑계가 다양했다. 어떤 날은 보조선생님 품에 안겨, 또 어떤 날은 엄마가 도망치듯, 얼르고 달래고 설득하고 혼내며 힘겨운 이별을 반복했다.
두고 가야지 하면서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염치불구 리셉션에 앉아있기도 하고, 학교 근처 카페 투어를 하기도 했다. 일과시간을 몰래 지켜보면 아이는 대부분 혼자 놀았다. 선생님은 친절했지만 한국 어린이집 선생님과 같은 밀착케어는 없었다. 다른 외모의 선생님과 친구들이 무서운 걸까, 아니면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이 혼란스러워서일까. 국제학교 대신 한국인 원장이 운영하는 유치원에 좀 더 보냈어야 했나. 한 학년을 내려서 적응시켰어야 했나. 한번 루틴을 깨면 더 힘들어질 것 같아 매일 아이를 학교에 데리고는 왔지만 고민이 깊어졌다.
이런 아이가 우리 아이뿐은 아니었으리라.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보고 싶어 유치-초등부 교장 면담을 신청했다. 아이의 상황을 설명한 후에, 아이가 어쩔 수 없이 환경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끈질기게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영어에 조금 친숙해질 수 있도록 집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오는 게 좋을지 의견을 물었다. 그런데 교장의 답은 말문이 막히게 했다.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니 자유인데, 돌아올 때까지 아이 자리를 보전해 줄 수는 없어." 내 질문은 그게 아니라고 다시 한번 설명했지만 같은 대답이었다. "니 아이인데 내가 어찌 아니, 네가 알아서 판단하고 알려줘."라는 말에, 우리 아이는 학생이 아니라 고객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국제학교는 모두 이런 마인드 인가 하는 생각에 실망스럽고, 내가 너무 뭘 모르는 건가 위축도 되었다. 하지만, 이 상담으로 말미암아 내 아이는 이곳과 맞지 않는다는 확신이 섰다. 앞으로 아이가 이 학교에서 어려운 일을 마주했을 때 나와 고민을 함께 해줄 수 없을 거라는 결론에 이르자 행동이 빨라졌다. 집에서 통학이 가능한 국제학교와 유치원들을 처음부터 다시 찾기 시작했다. 나의 입성 희망일에 딱 맞게 티오가 있으면서도, 영어 못하는 우리 두 딸을 환영해 준 학교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덜컥 입학금을 냈는데, 섣불렀구나 싶었다. 학교의 슬로건이 무엇인지, 얼마나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는지, 부모와 어떤 식으로 소통하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적당한 규모에 분위기가 따뜻한 학교에 지원서를 냈다. 1 Term 정도 지내니 큰 아이가 제법 기초 단어들을 알고 짧은 문장들을 구사했다. 영어보다는 씩씩한 태도가 한몫했을 것 같지만 어찌 되었든 다행히 큰 아이가 인터뷰에 통과했고, 유치부인 둘째는 인터뷰 없이 티오 확인 후 전학을 할 수 있었다. 지금의 학교는 당시 아주 많이 알려지지 않아 한국인 비율이 적고, 전학 오는 아이도, 전학 가는 아이도 적었다. 첫 번째 학교와의 또 다른 차이점은, 모든 활동에 아이들을 골고루 참여시킨다는 점이었다. 특히 유치부의 경우, 다양한 놀잇감 중 각자 선택해서 노는 게 아니라, 한 가지 주제로 다 같이 모여 모두에게 기회를 주었다. 활동에 대한 피드백을 더 자주 자세히 전달해 주었고, 언제든 부모가 교실에 들어와 아이들을 지켜볼 수 있다며 프로그램에 자부심을 보였다.
한 학기만에 영어 실력에 얼마나 향상이 있었는지는 가늠이 쉽지 않다. 조심성 있는 성격이라 Hi, Thanks 정도의 단어 외에는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아이 성격이 다르니, 둘째에게는 집에서 전혀 영어 압박을 하지 않았다. 얼마나 아는지 은근히 확인하려는 시도도 스트레스가 될 것 같아 꾹 참았다. 그저, 앉아, 집중해, 줄 서자 등과 같은 선생님 지시사항은 알아듣고 행동할 만큼 귀는 열렸으리라 예상할 뿐이다. 그리고, 친구들 행동을 보고 재빠르게 따라할 줄 아는 눈치도 늘었을 것이다.
한 달 정도 지나면서부터 아이는 나와 짧게 인사하고 교실로 뛰어 들어갔다. 한 학기 동안 단단해진 덕분인지, 아니면 언니를 더 자주 마주칠 수 있는 편안한 환경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새 학교와 딸의 궁합이 잘 맞는 것 같아 안도했다. 처음의 학교에도 즐겁게 생활하는 씩씩한 아이들이 아주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전학을 하는 것은 굉장히 큰 모험이었다. 하지만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2019년에 한국 국적과 베트남 국적의 아이들이 70%는 족히 되었던 첫 번째 학교는, 현재 새로운 교장이 부임해 있고 오히려 한국 국적 아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 아이들의 학교는 몇 년 간 학생수와 규모를 꽤 크게 키워 유명세도 함께 커졌다. 한국 국적의 아이들도 매우 많다. 두 학교 모두 몇 년 전과는 다른 색깔이 되었다. 이런 것을 보면, 카페들에 넘치는 학교 정보들이 과연 그 학교의 현재 모습인지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유치부 자녀와의 입성을 앞둔 부모들이 이 글을 본다면, 일단 호찌민에 발을 디딘 후, 최대한 천천히 기관을 살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놀이터에 나가 이웃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아파트와 지역 커뮤니티 단톡방에서도 분위기를 읽어보고, 기관에 가서 조금 오랫동안 머무르며 환경 파악을 해보면 좋겠다. 그렇게 결정한 유치원 또는 국제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힘들어한다면, 부적응을 아이 탓으로 돌리지 말고 과감하게 변화를 시도해 보라고도 조언한다. 이 시기에는 엄마의 노력이 절대적이고, 애쓰는 만큼 내 아이와 맞는 환경을 분명히 찾아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