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착 초기 눈물겨운 영어 공부 후기]
호찌민으로의 이주를 결정했을 당시 첫째 아이는 동네 사립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국공립 어린이집을 다니다 7세 때 유치원으로 옮겼는데, 영어 수업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있는 곳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유치원에서 보내준 영어 시간 동영상에서 우리 아이만 우물우물 노래 부르기를 어려워했는데, 일찍 하원시키고 영어 학원에 좀 보내줄 걸 그랬나 싶다. 책육아 중이라고 자신했지만 사실 워킹맘에겐 늦게까지 꽉 채워 아이를 돌봐주는 기관이 최고인지라 애써 모른 척을 했던 것 같다. 영어 노출이 제로에 가까웠던 아이가 해외이사 전 두 달간 준비하고, 학교에 좀 편안하게 적응하기까지의 눈물겨웠던 시간을 돌이켜보려고 한다.
출국일 두 달을 앞두고 뭐라도 벼락치기로 하고 가야겠다 싶어 리터니들을 가르치는 목동 소재 모 학원에 무턱대고 찾아갔다. 긴급 상황임을 밝히고 단기 과외를 의뢰했다. 당장 수업 시간에 아무것도 읽지 못하면 아이가 너무 힘들 거라고 하셨다. 주 3회 수업으로 파닉스 자음과 단모음을 가르쳤다. 엄마는 하루하루가 조급한데, 도통 아이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당연하다. 갑자기 안 하던걸 하는데 놀이식도 아니고 책상에 앉혀 주입을 시키니 얼떨떨할 수밖에. 벼락치기 파닉스 수업은 돈과 시간, 에너지 낭비였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파닉스가 아니라 Hello, Thank you, Give it to me, I want to do it. 과 같이 간단한 문장들을 직접 가르쳤을 것이다. 출국 날 비행기에서 아이에게 몇 가지 파닉스 문제를 내보았는데, 이미 전부 휘발된 후였다.
호찌민에 온 지 3일째부터 아이들이 학교에 갔다. 일단 부딪혀보자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걱정 많은 어미는 학교 근처를 떠나지 못하고 주변을 서성였다. 등교 둘째 날이었던가. 운동장에서 체육 수업을 하는 큰 아이를 몰래 지켜봤다. 두 팀으로 나뉘어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뒤집어진 컵 위에 탁구공을 두고 종종걸음으로 반환점을 돌고 와 같은 편 친구에게 전달해 주는 식이었다. 선생님 센스도 참. 이제 새로 왔는데, 상황 파악하게 뒤에 좀 세워주지, 영어로 한참 설명한 뒤 우리 아이를 첫 번째 주자로 세웠다. 아이는 게임의 룰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크게 뒤쳐지자 선생님이 도와주었지만 그 사이 간격이 더 벌어져, 상대팀은 환호하고, 우리 팀 친구들은 딸에게 야유를 보냈다. 자리로 돌아와 바닥에 털썩 앉은 아이와 학교 펜스를 사이에 두고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눈물을 그렁거리며 '엄마,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라고 입모양을 만들었다. 주눅 든 딸의 표정이 안쓰러워 울컥했다. 아이가 더 크게 울어버릴 것 같아 '괜찮아, 천천히 해, 파이팅!'이라고 입모양 화답을 해준 뒤 부지런히 자리를 벗어났다.
아, 자비란 없구나. 넋 놓고 있으면 안 되겠다. 하고 정신이 번쩍 든 사건이 하나 더 있다. 아이와 함께 잠자리에 누웠는데, "엄마, 오늘 내가 선생님 말을 못 알아들어서, OO 이한테 선생님이 방금 뭐라고 한 거야?라고 물었거든. 근데 걔가 나한테, '궁금하면 네가 직접 물어봐'래. 나도 얼른 선생님 말을 다 알아듣고 싶어."라고 했다. 국제학교 유치원부터 쭉 다녀 영어가 유창한 한국 아이가 도움의 손길을 매몰차게 뿌리쳤다는 내용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그 아이가 야속했다. 잠이 확 달아났다. 더운 나라 학교에서 매일 땀에 절어 꼬질하게 집에 돌아오니 짠한 마음에 밥만 잔뜩 먹였는데,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실전에 들어간 아이에게 요즘식의 파닉스를 가르칠 시간이 없었다. 천천히 흘려듣기 음원을 틀어주고 할 겨를이 없었다. 나 역시 대학에서 영어학 수업 때문에나 파닉스를 들춰봤지, 정작 처음 영어 배울 때를 생각해 보면 영어 단어와 문장들을 통으로 달달 외우지 않았었던가. 제일 시급한 건 말로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고, 읽어내야 따라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홈스쿨링을 시작했다.
첫 번째는 일상 회화를 익히는 것인데, 하루에 다섯 문장 정도를 외우게 했다. 영어를 읽지 못하니 한글로 써주었다. ‘메이 아이 고우 투 더 토일렛?’, ‘아이 돈 언더스탠’ ‘쿠 쥬 플리즈 쎄이 어게인?’, ‘아임 씩, 아이 원 투 고 홈’과 같은 생존 표현을 시작으로, ‘윌 유 플레이 위드 미?’,’ 캔 아이 바로우 디스?’와 같이 친구와 나누는 표현들로 확장해 나갔다. 달달 외운 문장은 작은 종이에 적어 매일 아이의 주머니에 넣어 학교에 보냈다. 무조건 한 번은 말하고 오라고 했다. 아이도 필요성을 느낀 까닭인지 기특하게도 매우 협조적이었다. 매일 집에 오면 한번씩 전부 말하고 왔다고 종이를 박박 찢어 휴지통에 버렸다. 2주 정도 지나니 그래도 밥 더 주세요, 색연필이 필요해요. 등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오기 시작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함께 책을 읽어내는 것이었다. 매일 저녁 둘째에게 유튜브를 틀어주고, 첫째와 책상에 앉았다. 책 세 권을 읽어야 하는데, 한 권은 그저께본 책, 한 권은 어제본 책, 한 권은 새로운 책이다, 단순한 스토리에 같은 단어들이 반복해서 나오는 책을 골랐다. 30-40권 책의 다시 1권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하루에 다섯 권씩을 복습했다. 억지로 노래를 만들기도 하고 손뼉 치며 리듬을 타기도 했다. 아이가 어렵다고 울기도 하고, 난 집중하라고 다그치기도 했다. 다소 혹독한 시간이었지만, 아이가 전집을 거의 통으로 외우자, 학교생활이 편안해졌다. 칠판에 쓰인 글자들, 교실에 붙은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니 놀라울 정도로 리딩에 속도가 붙었다.
다양한 그림책들을 열심히 구해 보여주고, 목표한 만큼 다 읽어내면 서점에 가서 또 다른 새 책으로 보상을 주었다. 보상으로 주는 책들은 만화 따라 그리기, 클레이 만들기 책 등 순전히 흥미 위주인 것들도 허용했다. 그런데 활자가 많지 않은 책들은, 그 몇 안 되는 단어들이 오히려 더 눈에 잘 들어오는지 잘 기억해 내는 효과가 있었다.
주먹구구식의 홈스쿨링이라 내 방법에 헛점이 다분하리라. 하지만 아이가 요청사항을 말할 줄 알면서 용기를 갖게 되었고, 칠판을 읽게 되면서 활동에 몰입도가 올라간 건 분명하다. 영유에 다니지 않은 초등 저학년이라면, 입성 전에 약간의 말하기와 리딩을 할 줄 알아야 위축되지 않으니 준비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파닉스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라이팅은 그다음이다. 말할 줄 알면 비록 철자가 틀리더라도 써보는 시도가 가능할 테니 말이다. 내 좋지 않은 발음으로 가르쳐야 하는 게 싫었지만, 아이가 스스로 선생님 발음을 따라 수정해가는 모습을 보며 미안함을 덜었다.
3개월 정도 후부터 학교에서 보내오는 활동 사진들 속 아이의 표정에서 집중력과 즐거움이 확연히 묻어났다. 종이에 문장들을 적어 주머니에 넣어주는 것도, 붙들어 앉혀놓고 책을 읽는 것도 더 이상은 하지 않았다. 대신에 아이가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와 재밌다고 하는 책은 최대한 시리즈로 구하려고 노력했고, 한국어로 이미 여러 번 즐겨 읽었던 나무집 시리즈는 원서로 구비해 나란히 꽂아두었다. 한 숨 돌리며 다음 단계를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