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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mi Jun 02. 2023

가슴 활짝 펴고 교문 들어서고 싶다. (2)

[국제학교 부모에게 요구되는 영어실력 얼마큼-리딩과 라이팅 편]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학교 생활을 시작하면, 거의 매일 어플과 메일로 리딩의 기회를 갖게 된다. 담임 선생님과 소통할 수 있는 모바일 알림장에는 사진들과 함께 활동 내용이 업데이트된다. 한국에서 쓰는 키즈노트나 클래스팅과 비슷하다. 학교에서 주 단위로 발송하는 전체 메일에는 곧 있을 학교 행사 일정이나 전염병 등 당부 사항들, 어머니회 소식들이 담긴다. 메일에 커리큘럼 안내가 나오기도 하는데 학교에 따라 상세한 정도에 차이가 있다.


이 근처 대부분의 국제학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딸들 학교의 경우 유치, 초등과정 모두 교과서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서 보내주는 메시지들이 아주 중요하다. 첫 번째 이유는, 요즘 아이들이 수업에서 어떤 주제를 공부하는지 파악해 도움을 주기 위해서이다. 달러와 유로로 돈 세는 법을 배우고 있다면 집에서 돈을 프린트해 가게놀이를 해보기도 하고, 시계 보는 법을 배운다면 half, quarter, past, to를 써가며 함께 시간 말하기를 연습했다. 국제학교 수학은 깊이는 다소 얕을지라도 개념 위주로 폭넓은 범위를 동시에 다루는데, G2에 빼기를 하다가 갑자기 나누기를 하더니 분수까지 개념을 확대시키는 식이다. 혹은 G4에서 곱하기를 하다가 한국 중학생이 배우는 제곱, 제곱근 문제를 푼다. 관련되는 참고서를 찾아 아이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면, 학교에서 주는 알림 내용들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이유는, 빠짐없이 준비물을 챙겨주기 위해서이다. recycle에 대해서 배울 때에는 페트병을 한 아름 모아 보내주어야 하고, 특별한 Art 수업이 있는 날이라면 낡은 티셔츠를 가지고 가야 한다. 물의 순환에 대해 배울 때에는 작품 만들 재료를 구상해 준비해 가야 하고, Book character를 흉내 내 퍼레이드를 하는 날에는 코스튬도 챙겨주어야 한다. 체육 행사를 위해 정해진 색깔 티셔츠를 입고 가는 날 비록 나 혼자 유니폼을 입고 갈지라도 쿨하고 당당한 아이들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대중 속에서 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데다, 오히려 넉넉히 준비해 친구들에게 나누어줘야 마음이 편안한 아이들이다. 준비물을 빌려서 활동을 하는 날에는 표정도, 결과물도 좋지 않았다. 학비가 얼만데 집에서 가져가는 준비물이 왜 이렇게 많은 거냐고 매번 투덜대면서도 정성껏 준비해 줄 수밖에 없는 이유가, 활동 준비가 아이들의 자신감, 성취감과 연결된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리딩은 매일 피할 수 없고, 메모하고 숙지해야만 한다. 매년의 학사 일정이 거의 비슷하게 반복되기 때문에, 일 년만 열심히 리딩을 해두면 어떤 건 중요하고 어떤 건 걸러도 되는 내용인지 파악이 될 것이다. 손쉽게 번역기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공지 내용들만큼은 원문 그대로 영어로 읽어내길 추천한다. 일례로, 이번주에 respiratory system(호흡기관)에 대해 배웠다는 안내 메일을 받았다면, 영어 단어 그대로 언급하며 아이와 짧은 대화를 나누어보자. "엄마 발음 왜 선생님이랑 달라?"라는 반응이 있을 수도 있으나, "엄마도 학교에서 똑같은 거 배웠어?" 하고 신나서 설명해 주는 반응도 기대할 수 있을 지어니.


라이팅이 필요한 경우는 크게 세 가지 정도이다. 첫 번째는 whatsapp의 학부모 단톡방에서 이야기할 때인데, 반 대표 엄마가 '담임 선생님 선물 사서 전달했어요~'라고 하면 이모티콘과 Thank you를 보내주면 되고, 아이가 물통을 두고 안 가지고 왔다면, 물통 사진과 함께 'Does anybody have this in a bag?' 하면 된다. 준비물이나 행사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물을 때에는 학교 공지 메일의 단어들을 참고하면 된다. 아카데믹한 라이팅보다 캐주얼한 메신저 대화가 더 어렵게 느껴진다면, 학년이 바뀌어도 대화창에서 나가지 않고 보존해 두는 것이 꿀팁이다. 원어민 엄마들의 표현들을 그대로 따다가 쓸 때 매우 편리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학교에 아이 지각 또는 결석 사유를 알리거나, 과목별 수업 제외요청 등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경우이다. 지각이나 결석의 경우, 아이들 1교시가 시작하기 전에 보내는 것이 좋고, 하교 때 셔틀버스 대신 직접 데리러 가고 싶다면 이 역시 점심시간 전에 연락을 해두어야 혼선이 없다. 콧물이 나서 수영 수업을 빠지고 싶다거나, 다리가 아파 체육 수업이 어렵다면 병원 진단서 등을 첨부해 과목 선생님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내면 된다. 처음에는 짧은 메시지 하나를 전달하는데도 공손한 인사 표현들을 찾느라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었다. Hope you had great holidays. My daughter loves your class, and thank you for your excellent guidance. 와 같은 서론 말이다. 하지만, Hello, Mr.OO, My kid has a high fever, and she can't make it today. I am going to take her to a doctor's office and let her take a rest at home. 과 같이 간단하게 용건만 적어서 보내도 충분하다. 형식을 갖추어 서론 본론 결론으로 메시지를 전달해도, 바쁜 선생님들 결코 길게 답장을 주지 않는다. 캐주얼하게 핵심만 적되 늦지 않게 전달하자.   


세 번째는, 학습 또는 교우 관계 등과 관련하여 길고 진지한 메일을 보내야 하는 경우이다. 민감한 내용일수록 단어 선택이 중요하므로 신중해야 하는 경우가 바로 이때이다. 메일 내용을 근거로 대면 상담을 하기도 하므로, 스피킹이 어렵다면 최대한 메일에 많은 내용을 담아내는 것이 상담 때 추가 설명 부담이 적다. 자주 오지 않는 상황이지만 아주 공을 들여야 하고, 번역기를 사용한다면 단어들의 뉘앙스를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라이팅에 능통한 지인의 확인을 받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차라리 돈을 들여 전문 번역가에게 의뢰를 하자. 내 아이의 치부를 알고 있는 오늘의 절친이 내일의 적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리딩과 라이팅은 챕터북을 읽을 정도의 실력이면 매우 충분할 것 같다. 회화에는 임기응변 센스가 요구되지만, 다행히도 리딩과 라이팅은 모두 반복해서 연습하고 시간을 들이면 해결된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학교에서 주는 전체 메일은 formal 하게 잘 정돈된 글이니, 여러 번 읽는 것 자체가 공부가 된다. 날이 갈수록 뻔한 단어들이 익숙하게 눈에 들어오고, 읽는 속도도 빨라질 것이다. 추가로 공부를 하고 싶다면, 아이들이 읽는 동화책들을 함께 보는 것을 권한다. 다양한 국적만큼이나 부모들의 영어 수준의 차이가 크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고 대응해 주는 곳이 국제학교이며 국제학교 부모들이다. 괜찮으니 가슴 쫙 펴고 교문에 들어가 고개 들고 캠퍼스를 누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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