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내 아이는 약자?


얼마 전 가족과 마지막 스노보딩을 하러 갔다. 마지막이라 좀 더 즐겁게 타고 싶었는데 역시 스키장에는 사람이 많다. 적당히 타고 접으려고 했지만, 마지막이라 아쉬워서 다시 한번 곤돌라를 타고 올라갔다.


곤돌라에서 내리니 바람이 미친 듯이 분다. 슬로프 초입은 바람으로 눈이 다 사라지고 얼음만 남아 있다. 아이들이 무서워하면 슬금슬금 내려간다. 나는 뒤에서 아이들이 다칠까 봐 지키고 서 있다. 어느 정도 내려가니 바람이 잦아든다. 딸에게 속도를 내면서 내려가라고 이야기를 한다. 무서워하고 힘들어해서 옆에서 박수 치면서 응원을 한다.


“딸, 잘하고 있어! 괜찮아! 멋있어!”


중간쯤 내려오니 아내와 아들이 쉬고 있다. 함께 앉아서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딸이 짜증 내며 소리친다.


“재는 말이 많고, 저 사람은 훈계하고!”


갑자기 화가 치민다. 딸 뒤에서 내 다리 뽀사지도록 지켜주고 잘한다고 응원을 해줬더니 훈계했다고 짜증을 내다니. 나도 욱해서 맞받아친다.


“야, 이 싸가지야. 아빠가 그렇게 노력했는데 뭐라고?”


분위기가 싸하니 엄마랑 아들은 도망가고 나는 딸을 데리고 숙소로 들어왔다. 마지막 보딩을 망쳤다.


나중에 들어보니 슬로프 초반에 넘어져서 멘탈이 흔들렸다고 한다. 그 와중에 아빠가 빨리 가라고 하니 화가 났다는 것이다. 아빠가 옆에서 응원해 주고 하는 것은 생각도 안 났단다.


서로 사과하고 화해하고 어쨌든 마무리가 되었지만, 아빠와 딸에게는 상처가 남았다.


요새 계속 부모교육 수업을 듣고 있다. 한 강사님이 이야기한다.


“왜 부모가 아이들에게 화를 쉽게 내는지 아세요? 아이들이 약자라서 그래요. 경찰이나 국회의원 같은 사람에게 아이에게 하듯이 짜증 낼 수 있겠어요? 아이를 좀 더 존중하셔야 합니다.”


스키장에서의 일이 생각이 난다. 만약에 친구가 나에게 “왜 훈계 질어야”라고 했을 때 딸에게 화낸 것처럼 화를 낼 수 있을까? 아마, 비슷하게 짜증을 내기는 했을 것 같다. 다만, 그럼 알아서 해 하고 버리고 슬로프를 내려갔을 거다. 그리고 서로 화해하고 밥 먹었겠지.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첫 번째는 내가 쉽게 화를 낸 것은 내 딸이 약자기 때문이다. 이건 사실 같다. 딸이 강자라면 화를 못 냈겠지. 만약 친구라면 역시 짜증은 냈을 거다.


두 번째는 내 아이와 친구처럼 지내서 화를 내지만 돌봐야 할 존재라는 것이다. 짜증 나도 버릴 수 없다. 화나면 그 사람을 보지 않고 화가 가라앉아야 다시 만나는데, 화 가라앉기 전에 계속 보면서 돌봐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화가 오래간다.


고민이다. 아이를 돌봐야 하는 존재를 볼 건가, 친구처럼 생각할 건가, 아니면 강자라고 생각하고 조심할 건가. 정답은 없다. 부모의 성향에 따라서 결정할 거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항상 고민이다.


우선은 아이가 약자이기 때문에 좀 더 쉽게 화를 낸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먼저일 듯하다. 이제는 화를 내려고 하면 한 번 더 생각해 보려고 한다.


“아이가 아닌 아내라면 내가 지금 화를 이렇게 낼 수 있을까?”


아마도 이런 생각 하면 화내는 것은 꽤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딸이랑은 아직 친구처럼 지낸다. 내가 바뀌면 좀 더 친한 친구가 되지 않을까?


사이좋은 가족을 만들기 위해서 아빠는 오늘도 공부하고 반성한다. 난 약자에게 화내는 사람이 아니야 하는 생각하면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육아 여행에서 아빠와 아이에게 남은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