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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 kwangsu Apr 02. 2019

죽고 싶다는 생각을 오늘도 서른 번쯤 했다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오늘도 서른 번은 넘게 한 것 같다.



지난 주말, 우리가 즐겨 가던 합정 만평에서 들었던 슬픈 말. 친구의 말에 나는 가슴이 아팠다. 단순한 동정은 아니었다. 작년 이맘때였나. 나 역시 친구와 비슷한 상황에 있었다. 자존감은 바닥에 바닥을 치고.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고 있는 상황이 답답했고, 자신이 쓸모 없게 느껴지던 날들. 삶이 무기력하게 변해감을 체감하는 일은 고통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때 내 책상에는 이반 일리치의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라는 책이 놓여있었다. 나는 매일 책상 위에 놓인 책을 보면서 그냥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물론 진짜 죽고 싶었을 리가 없다. '일이 너무 하고 싶은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상황이 힘들다'라는 말을 꾹꾹 눌러 참다가 터져 나온 한마디였을 뿐이다. 내가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이 순전히 내 능력 탓일까? 나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해외의 브랜딩 프로젝트를 진행했음에도 프로젝트를 구하지 못하고 있을 그 시기에는 또 다시 나 자신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내가 정말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다. 언젠가 한국에서 가장 몸값이 높은 컨설팅 회사에 다니는 컨설턴트가 내게 말했다. 한국에서 3년 차 브랜드 디자이너 중 당신처럼 기획부터 디자인까지 완성도 높은 브랜딩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며, 해외에서 3억, 10억 규모의 브랜딩 프로젝트를 제안받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라고. 듣기 좋은 그의 말에 마음이 훈훈했지만 나는 그다음 말이 더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그런 당신을 감당할 수 없는 회사도 그리 많지는 않을 거라고. 취업이라는 것이 개인의 능력과는 무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뒤늦게 알았다. 나는 지금 첫 직장을 3년 차 경력의 선임 직급으로 시작했고, 한국에서 가장 럭셔리한 호텔의 브랜드 아이덴티티 디자인과 대기업의 핵심 사업 브랜딩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아침마다 죽고 싶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곤 했던 작년과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다른가. 스스로를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여겼던 그때와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를 것이 없다. 누가 나를 비참하게 하는가. 누가 나를 가치 없는 사람으로 규정했는가. 누가 나로 하여금 죽고 싶다는 말을 내뱉도록 했는가.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것은 내가 아니다. 답은 사회에 있다. 지원자 100명 중 1명을 뽑는다면, 나머지 99명은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1명에 들지 못한 나를 자책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아무도 공생과 연대라는 키워드에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는다. 모두가 1명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탓한다. 시간이 흐르면, 기술이 진보하면 상황은 나아질까. 아니, 전혀. 대기업에서 큰 비용을 투자해서 만들고 있는 AI 프로그램은 현재 인력의 90%를 감축하는 것을 단기적인 목표로 하고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 인간은 가장 큰 지출이기에, 영구적으로 인력을 줄일 수 있다면 아무리 큰 비용이 들어도 이익이다. 그때가 되면 10개에서 1개로 줄어든 의자에 앉기 위해 싸워야 하는 사람이 100명에서 1000명으로 늘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그 1명이 되어 살아남으리라고 다짐하는 머저리가 있을까.



그때가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고 싶다는 말을 습관처럼 읊조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답을 구하기 위한 물음이 필요한 시점이다.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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