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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레논 Oct 22. 2023

[웹소설] 광인들 - 2화

"요즘은 아무도 우주폰을 우주폰이라고 안 부른대. 이제는 아재폰이라고 하면 다들 우주폰인 줄 안대"


조상이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ㅇ과 ㅈ의 초성으로 이루어진 단어들이 만들어내는 묘한 리듬감에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의 관심이 순식간에 집중되었다.


"아니 내가 봐도 좀 그렇긴 해. 내 친구들은 다들 우주폰을 쓴단 말이야. 저번 주말에 골프를 치러 갔는데 고상무가 골프장 라운지에 먼저 와있더라구. 기다리면서 우주폰을 활짝 펼쳐서 자기 배때기에 올려놓고 유투브보고 있는 거 있지."


고상무의 배는 유명했다. 배가 너무 나온 나머지, 뱃살과 벨트의 쇠버클이 맞닿는 부분에는 만성적으로 발진과 종기가 있어서 그의 비서가 매일 그것을 관리해준다고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진 씨는 그 소문을 떠올렸고, 우주폰을 안락하게 기대어놓은 뱃살 아래의 빨간 짓무름을 상상하며 아무도 모르게 소름이 오도도 돋았다.  


"그리고 그 주말에 골프 치러 와있는 아재들도 죄~ 우주폰이야"


조상은 아저씨임에도 본인을 '아재'와 구분짓는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곤 했다.


"그래서 내가 파격적인 아이디어가 있는데 들어봐바."


진 씨는 내심 겁이 났다. 회의에 들어오기 전부터 진 씨는 이미 몇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려놨었다. 만약 조 상의 아이디어가 그것보다 좋다면 아이디어를 말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에. 일단 들어나보자.


"사과폰을 말이야, 시커멓고 냄새나는 아재들 있지. 너네가 절대 커서 되고 싶지 않은 아재들. 난 회사에서 걔네한테 사과폰을 한 대씩 나눠줘야 한다고 봐."


새로나온 사과폰을 받은 후에 당근마켓으로 팔아서 뭐 돈이라도 만지려는 속셈인가 싶었다.


 "자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봐바. 고상무가 배에 사과폰을 걸쳐놓고 극우 유투브 라이브 스트리밍을 유선 이어폰으로 보는 모습. 그리고 그걸 다 찍어! 그리고 인스타에 올려버려 사과폰 계정 다 태그하고!"


이 인간 보통이 아니다. 역시 아재라서 그런지 아재에 대한 통찰이 엄청나다.


진 씨는 본인이 회의 초반에 불현듯 떠올라 적어놓은 카피들을 손으로 자연스럽게 가려 덮었다. 그의 다이어리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과폰, 사과해!"   


조상무는 사과폰의 매출을 떨어트리고 아재폰을 부활시키기 위한 본인의 아이디어 발표를 열띠게 이어갔다.


"이번 캠페인 슬로건 나왔다. 나왔어! 말하면서 떠올랐는데 이건 된다!" 다들 심드렁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다.


"몬지 안물어봐? 몬지 물어봐죠." "뭔데요?" 진씨가 애써 묻는다.


아재들이 사과할게.


"자자, 더블미닝이야. 첫 번째, 아재들이 그동안 아재폰만 쓰고 너네 젊은 것들 몰라줘서 미안하다 말그대로 사과하는거야. 두 번째, 이제 아재들이 사과폰 쓸게. 사과할게~"


"우주폰 광고주가 좋아할까요? 이게 뭐 사과할 일도 아닌데 사실. 아재들은 우주폰 잘 쓰고 있는데 괜히 긁어부스럼 아닌가 싶어서..." 전략팀장 제갈 씨가 처음 입을 뗐다.


"지금 엠쥐들이 99프로가 사과폰을 쓴대..! 이젠 이판사판인 판이야!" 조상무는 왜 항상 엠Z를 엠G로 발음할까.


"그러면 모델로 한사랑 산악회 아저씨들을 섭외하면 좋을거같습니다!" 신입사원 민씨가 의견을 낸다. 민씨는 주니어 카피라이터로 이 방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의욕적인 엠쥐세대였다.


조상무가 칼같이 자른다. "야, 진정성 떨어져. 걔네는 찐으로 드럽고 배나온 아재가 아니야. 야개." 약해는 또 왜 야개로 발음하는걸까. "너네 걔네 연예인들 우주폰 광고받고 인스타에서 개인사진 올릴 때 '사과폰에서 작성함' 문구 떠서 당한 거 한두 번이야?"


"안되겠다. 다들 주말에 등산화 신고 산으로 모여. 이 캠페인은 진정성이 생명이다. 진짜 산에서 찐아재들만을 섭외하는 거다!"


다들 충격에 할말을 잃었다. 여기 모여있는 모두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씩 미친 사람들이었지만 광파리스에서 임원자리에 오른 사람의 광기를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상무님 일단 그러면 시안 들고 광고주한테 가서 컨펌받고 진행은 나중에 하시죠." 이성의 끈을 유일하게 잡고 있는 사람, 제갈 씨의 말이 먹힐리 없었다.


"너 이게 광고주 컨펌이 될 거 같냐? 허락받는 건 어렵지만 저지르고 용서받는 건 쉽다. 너 유부남자식이 플스 안사봤냐? 와이프 몰래 지르고 용서받는게 쉽냐? 와이프 허락받아서 같이 마트 가는 게 쉽냐?"


"그럼 아저씨들만 가세여 저는 카피라이터니까 발로 안 뛰고 카피로 승부하겠습니닷!"


민씨가 본인의 노트북을 티비에다 연결하자 카피가 뜬다. 우주 라이크 우주폰?


“언어유희를 활용하면서도 우주폰을 세련되게 권유하는 카피를 써보았습니닷!“


민 씨는 요즘 애들치고 보기드문 야망녀였지만 사수 진 씨가 관심가져주지 않자 그동안 어깨너머로 진 씨의 카피스타일을 따라하려고 노력하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


"이야~ 좋네 너무 좋네! 크게 프린트해서 가져와. 등산하는 아재들 일단 저 멘트로 꼬신 다음에 사과폰 나눠주자"


민 씨는 조 상이 본인의 카피에 관심을 가져준다는 사실에 감격해서 노트북을 주섬주섬 챙긴다.


"민씨야... 하 시발 나 그냥 산으로 주말출근할바에 산에 머리깎고 들어갈래."


"진 선배님, 비구니 되면 매주 주말에 염불하셔야 돼여"


민 씨는 광파리스에서 언젠간 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광고는 산으로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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