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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레논 Oct 25. 2023

[웹소설] 광인들 - 5화

#우주폰 광고주 사무실 - 우주폰 광고주 배 책임과 윤 주임이 휴게실에 모여있다

"책임님, 이거 보셨어요?ㅋㅋ 커뮤니티에서 난리에요 난리ㅋㅋ 아재들이 사과폰 써가지고 정떨어진다고ㅋㅋ"

윤 주임의 핸드폰 화면 속 인스타그램 피드에는 형형색색의 철쭉꽃, 검정가죽슬리퍼 사이로 삐져나온 발가락양말, 아구찜을 다 먹고 난 후에 찍어서 생선가시와 양념이 지저분하게 널부러진 음식, 물마시고 가글하거나, 식당 물수건으로 이마를 닦는 동창의 사진 등이 하나의 해시태그 아래 끝없이 올라와있다. 

#Shot on Sagwaphone

"이제 사과폰도 끝난 거 같다고ㅋㅋ 뭐.. 그래도 우주폰으로 갈아탄다는 말은 없네요 쩝"

"야 지금 웃음이 나와?!"

"아니 우리 우주폰이 이거 큰일났네.... 그나마 비빌 언덕이라고는 아재들뿐이었는데 이 자들마저 안 써주면 이제 누가 써주나? 이거 사과폰의 농간 아녀? 이 새기들이 갑자기 공시지원금 많이 주면서 싸게 내놧나?"

이거 대책이 필요하다

"야 당장 광파리스 조상무랑 제작팀 들어오라 그래! 우주폰 MZ세대 매출 증대 아이디어 짜라고 오티 준 게 언젠데 어떻게 된 게 감감 무소식이야" 


# 광파리스 로비

조상무가 형씨를 부른다. "야 세별전자 급하게 들어가야겠다." 

진씨의 퇴사 선언 이후 면담할 틈도 없이 형 씨는 끌려간다. 


# 세별전자 회의실

배책임은 우주워치를 톡톡 두들기며 재촉하는 말투로 광파리스에서 헐레벌떡 달려온 아재 둘에게 핀잔을 준다

"아니 이거 어쩔거에요.. 말세네 말세야.. 이거 인스타랑 맘카페 봤죠?" 

"아재들이 사과할게요." 조상무가 형 씨와 어깨동무를 하며 입을 뗀다.  

"지금 이게 사과한다고 될 일이에요?"

"네, 사과한다고 될 일입니다." 

형 씨가 매고 있던 큰 등산가방을 내려놓고 사과폰을 나눠주며 인질로 잡았던 우주폰 수십 대를 우루루 쏟아낸다.

접을 수 있는 폰에 지갑케이스까지 전부 달려있어서 회의실의 책상을 뒤덮을정도로 부피감 있게 쌓였다.

우주폰 광고주는 마치 전쟁터에 나간 자신의 아이들이 포로로 잡힌 것을 보는 것 마냥 엄청난 충격에 휩싸인다.

"아니 이거 다 어디서 났어요?" 배 책임이 뒷목을 잡는다.

"관악산에서 캐왔습니다."  


형 씨가 프로젝터에 노트북을 연결해서 한 영상을 튼다.

"조상무 어 왔어?"  골프장 라운지에 앉아서 우주폰을 활짝 펼쳐 이어폰도 안끼고 극우 유투브를 시청하는 고상무의 목소리다.

영상을 멈추고 형 씨가 묻는다. "자 여기서 뭐가 느껴지십니까?"

"역시 우주폰은 광파리스 임원들도 쓸만큼 좋다?" 윤 주임이 답한다.

"맞습니다. 아재들은 우주폰을 사랑합니다." 형 씨가 또 다른 영상을 튼다.

"아니 나는 우주폰이 좋다니까 그러네~ 어허~~" "천지인이 없자나 사과폰에는! 이거이거 한손으로 문자치는거 이게 혁신이여!" "접어지잖아 사과폰 접어지는거 못하잔어"

막걸리에 거나하게 취한 아재들과 실랑이를 벌이며 민 씨가 열심히 사과폰을 영업하고 있는 모습이다. 

어쩐지 감동한 듯 보이는 배 책임, "아니 그 좋아하는 아재들한테 왜 사과폰을 나눠주냐고!!! 그니까"

"우주 라이크 우주폰? 저건 또 뭐야. 우리가 저 카피 컨펌한 적이 있나?"

형 씨가 칠판에 도표를 그리기 시작한다. 

"아재들은 우주폰을 사랑하지만. 우주폰은 MZ를 사랑하고. MZ는 사과폰을 사랑합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죠. 분명 비극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형씨가 빨간 펜을 집어든다)

만약 아재들이 어느날 사과폰이 좋다고 고백을 한다고 쳐봅시다. 

(AZ와 사과 사이에 빨간 점선 화살표를 그린다)

당연히 사과폰을 자신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엠쥐들은 당황하겠죠? 

(이어서 사과와 MZ 사이에 있던 화살표 위에 엑스 표를 친다)

그러면 우리 우주폰에게도 기회가 생기는 거죠-

(MZ와 우주 사이에 빨간 점선 화살표를 추가한다)


"오오- 신박한데요?" 윤 주임은 넘어갔다. 

"에휴 뭔지는 알겠네. 그럼 딱 한 달 준다. 그때 소비자 조사 돌려서 사과폰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지 않았다면 

광파리스가 전부 책임져야돼!" 

배 책임도 혹했지만 광고주로서의 권위를 지키느라 티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세별전자 앞 지하철역

"야 걔네 도표 꺼내니까 바로 현혹되더라?"

조상무가 형씨의 어깨를 대견하다는듯 두드린다.

"광팔이질 20년차. 있어보이게 포장하는거 빼면 시체죠ㅎㅎ" 

"그래 고생많았어 형 팀장" 

형 씨가 큰 등산 가방을 매고 세별 전자를 나서서 회사로 돌아가고.

“넵. 저는 산타 등산화 보고 준비해야되서 들어가보겠습니다”

한숨을 내쉬는 조상무. 뭔가 결심한듯 어디론가 향한다. 


#광파리스 19층 사무실

"민 씨야, 진 씨 어디갓어?" 

"이미 퇴사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하시고 짐 싸서 가셨는데요?"

민 씨는 자신의 덱을 수정하느라 정신이 없다. 



#지리산 자락의 어느 암자

머리를 정갈하게 묶은 진 씨가 회색 승복을 입고 합장을 한다.

얼굴이 어쩐지 평안해보인다. 다리를 통통거리며 느긋하게 처마 밑에서 앉아있다.

들어온지 얼마 안된 초보 승려라 주지 스님께서는 아직은 머리를 밀어줄 수 없다고 하셨다.

그때, 예불이 시작되고 불자들이 하나 둘 들어온다. 그들을 가만히 관찰하는 진 씨.


"항상 저희를 이끌어주시는 부처님! 자 우리 자녀들의 수능이 100일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부디 원하옵나니. 저희 아이들이 문제지와 답안지를 긴장하지말고 조심스레 받아,

문제풀이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자비의 손길로 맑은 기운을 보내주시옵소서.

심신안정. 대학합격. 만사형통. 소원성취. 합격발원 기도 올립니다.

한남동의 김지연 학생, 

대치동의 최민경 학생,

공덕동의 이경훈 학생

...


108배를 마치고 무릎을 부여잡으며 부모님들이 꽤나 쌀쌀해진 저녁의 암자를 하나 둘 떠난다.

한산해진 도량에서 진 씨가 주지스님께 말을 건넨다.

"근데 스님, 여기 보시함이 있지 않습니까? 음...그러니까... 보시를 더 받으려면 말입니다.

지금은 '보시함'이라고만 써있는데요"

"네에~ 작은 스님~" 온화한 주지스님이 귀기울여 들어준다.

보시함,

함 보시오~

로 바꿔서 써보는게 어떨까요?

"보시함, 함 보시오ㅎㅎ 작은 스님은 참 재주가 많으십니다" 

주지스님의 격려에 진 씨는 부처님의 웃는 얼굴 사진과 함께 변경된 카피를 보시함에 붙인다.

깊은 밤, 이제는 주지스님이 자리를 떠나고 법당에 보시함과 그녀 혼자만 남았다. 작은 혼잣말로 기도를 올린다.

"부처님, 속세에서 광팔이로 보냈던 시간들은 모두 뒤로 하고 이제는 다 훌훌 버리고 맑게 바르게 살겠습니다."

부처님의 인자한 표정이 중생의 마음을 헤아려주시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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