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ipe 4. 스물 넷의 라라랜드

눈물 젖은 에그마요 샌드위치 드셔 보셨습니까.

by 청년백수 김파보

2019년, 8월 ○○일


'찌르르르르으--', '빵, 빠앙-!!!!'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클락션이 울려댔다. 사람들은 저마다 분주한 발걸음을 옮겼고, 난 그 사이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는 핸드폰의 지도를 바라보며 빙글빙글 제자리를 돌고 있었다.


'이 놈의 GPS는 왜 맨날 말썽이야'


무더운 날 땀을 뻘뻘 흘리며 먹통이 된 휴대폰의 지도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내 신세가 처량하기 그지 없었다. 약속시간인 1시까지 못 도착할 까봐 나는 폭풍 무더위도 잊은 채 안절부절 했다. 심지어 아까 편의점에서 먹은 컵라면과 삼각김밥이 속에서 부대끼는 것만 같았다. 작곡 레슨 발품 파는 일이 이렇게나 고될 줄이야.


오늘은 세 군데를, 내일은 두 군데의 레슨 상담을 예약을 해 두었다. 때문에 타이트한 스케쥴에 맞춰 움직이려면 나는 발에 불이 나게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난생 처음 와본 학동사거리 역에서 나는 ○○빌딩이 있는 골목을 찾지 못해 사람들 사이에서 낙다운이 돼버리고 말았다. 결국 1시가 가까이 돼서야 레슨 선생님께 콜을 때려 나를 데리러 달라고 부탁드리는 수 밖에 없었다.


레슨 선생님이 오시기까지 나는 내 머릿 속에서 온갖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었다. 첫 인사는 어떻게 해야 하지? 뭐라 얘기를 해야 되지? 혹시 몰라 지하철에서 수도 없이 읽은 '데일리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머릿속으로 복기하며, 안절부절하고 있을 때,


'OO씨?'


하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개를 들어 바라본 쪽에는 덥수룩한 수염과 벙거지 모자, 헐렁해진 반팔 프린트 티셔츠에 쪼리를 신고 듬직한 풍채를 가진 남자분이 누가봐도 음악을 할 것 같은 포스를 풍기고 있었다. 는 뜨거운 태양 때문인지, 아님 역력한 당황의 기색인지 모를 땀만 삐질삐질 흘린채 레슨 선생님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솔직히 고쳐야 할 게 너무 많아요. 이 실력으로는 어디 명함도 못 내밀어요.'


지하에 있는 쾨쾨한 작업실에서 나는 현실의 쓴 맛을 보고야 말았다. 데일리 카네기씨의 책 덕분이었던 걸까. 나름 작업실에 대한 칭찬과 이야기로 아이스브레이킹을 시도해 훈훈해진 분위기가 연출된 것도 잠시, 편한 대화 속에서 내 심장을 훅 파고 들어오는 한 마디가 끝내 튀어나왔다. 그 동안 나름 방구석에서 '아마추어가 혼자 이 정도면 꽤 잘하는 편이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내 오만함은 끝내 나를 저격하는 화살이 되어 내게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내가 그 동안 만든 음악들은 상업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명함'도 못 내미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그 뒤론 약 한 시간 동안 내가 만든 작품들은 신랄하게 난도질 되었다. '여기서는 공간계 이펙트가, 여기선 볼륨 밸런스가...' 그렇게 대차게 까이고 난 뒤에 드는 감정은 간절함이었다. 그래도 어느 한 구석은 칭찬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간절함. 그래서 나는


'전혀 성장가능성이 없는 건가요?'


라고 물어봤다. 그제서야 그 작곡가 분께선 '아뇨. 지금 이 곡들로만 설명을 드린거에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나의 첫 레슨상담은 그렇게 분위기에 압도당해 일방적으로 질질 끌려다니며 너덜너덜해진 채로 끝났다. 왠지 작업실에 나와 다시 학동사거리로 가는 내 터덜터덜한 발걸음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그러나 지치기도 잠시, 이미 나는 다음 레슨 상담 스케쥴을 위해 어느 샌가 강남구청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대치역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손에 들린 USB를 만지작만지작 하다 보니 점점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 처음엔 누구나 다 그래. 보란 듯이 증명해 내겠어. 두고 봐.' 한 번 현실의 쓴 맛을 보고 나니, 왠지 쓴 맛에 대한 역치가 올라간 느낌이었다. 더 씁쓸한 결말이 맞이한다 해도 그닥 놀랍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두 번째 레슨 상담 땐 나에 대한 사실을 더 과감하게 풀어놓았다. 나는 6년 동안 학교에서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틈틈이 음악 공부를 했고, 그래서 기초적인 작곡 방법은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음향이라던가 사운드라던가 전문적이고 디테일한 부분이 많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난 그 부분을 보완하고 싶으며, 수업을 받으면서 만든 곡들로 피칭을 해서 최종적으론 입봉을 해 보는 것이 목표다. 이런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앳돼 보이는 두 번째 선생님은 좀전과는 확연히 다른 반응을 보였다. 마치 좀전에 내가 현실의 쓴소리를 듣고 좌절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이 나에게 온갖 달콤한 말들을 퍼부었다.


'와, 정말 공부하면서 음악하기 힘든데 어떻게 그걸 해내셨죠?'

'아니, 저보다 음악도 훨씬 많이 하시고 저보다 곡도 잘 쓰실 것 같은데요?'

'혼자서 이 정도면 바로 데뷔해도 될 것 같은데요?'


그런데 그 달콤했던 말들이 뭔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마치 너무 단 것을 목에 들이부어 목이 쓰라려운 듯한 느낌이었다. 분명 듣기 좋은 말들이고, 내게는 위안이 되는 듯한 소리였지만, 나는 엄연히 학생의 입장으로 배우러 온 것이 아닌가? 분명히 부족한 것이 있어서 왔는데 마치 부족한 것이 없다는 식으로 치켜세우는 그 달콤한 말들 뒤에는 왠지 이 생님을 신뢰할 수가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몇 차례의 상담을 더 받고 나는 진이 빠진 채로 서브웨이에 앉아 주문한 샌드위치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개중에 아주 수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 분은 커리어도 괜찮고 나에게 정확하고 냉철한 조언을 해 주셔서 내 마음에 쏙 들었었다. 그러나 그 분께 배우려면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달라 프로그램을 다시 싹 깔아야 했다. 그 분은 자신이 아는 브로커가 있어 합리적인 가격에 프로그램이 내장된 컴퓨터를 구해줄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내 작업용 컴퓨터를 이미 맞춰놓은 터였고, 몇 년 동안 같은 프로그램만 써왔던 터라 새로운 프로그램에 적응하려고 레슨을 비용을 지불해가며 받는 게 좀 아쉬웠다. (심지어 커리어가 좋으시다 보니 다른 레슨보다 가격이 5만원 정도 더 비쌌다.) 그리고 집에서 왕복 4시간이 걸린다는 것도 걸림돌이었다.


'에그마요 샌드위치 나왔습니다.'


왠지 내 꿈이 이 에그마요 샌드위치의 가격과 반비례하는 것 같았다. 어디선가 읽었던 말이 떠올랐다. 발품을 파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돈이 없어서'이기 때문이라고. 만약 돈이 많고 여유가 넘쳤으면 굳이 발품 같은 거 팔 이유 없이 제일 좋은거 하나 사면 그만이라고.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만약 내가 충분한 여유가 있었더라면 그냥 커리어가 제일 뛰어난 사람에게 돈을 조금 더 내더라도 믿고 배우면 된다. 그리고 작업용 컴퓨터를 한 대쯤 더 마련하는 것도 크게 손해보는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차가 있었다면 강남이든 어디든 장소 상관없이 레슨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러나 나는 열심히 방송 알바를 해가며 모은 돈이 아까워 기껏해야 서브웨이에서 제일 싼 에그마요 샌드위치 밖에 못 먹는 가난한 존재인걸. 어쩌면 이럴 시간에 나도 취업 준비하는게 낫지 않을까.


멍하니 서브웨이 창밖을 바라보다 순간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언젠가 우리 과에서 가장 친한 누나가 나한테 이렇게 말해준 적 있었다.


"내 주변에 힙합한다고 자기 랩 SNS에 올리고, 노래 발매까지 했던 애가 있거든? 근데 걔 지금은 취준하고 있어. 걔가 말하길, 자기는 그래도 해보고 싶었던 거 해봤기 때문에 이제는 미련이 없다고. 그래서 관둘 때도 쉽게 관뒀대. 그냥 일단 미련이 없어질 때까지 부딪혀 보고, 그 다음에 다른걸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아."


어째서인지 그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음악을 누구보다 간절히 시작하고 싶은 사람이 음악을 하고 관둔 사람에게 위로를 받는 이 아이러니함이란. 미련 때문이었다. 이렇게 레슨을 받는 것도 아니고 고작 상담 받는 거에서 힘들다고 관둬버리면 미련이 두고두고 남을게 분명했다.


'그래, 한 번만 더 해보는 거야.'


강남 대로의 큰 빌딩 앞에서 좌절된 내 심기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 건 다름아닌 한 번도 뵌 적 없는 학과 친한 누나의 친한 친구 아무개씨의 인생 조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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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세 달이 흘렀다.


"OO아, 너가 힘들면 거절해도 괜찮은데, 이제 레슨은 그만 배우고 아예 우리 크루에 들어와서 작업실에서 같이 곡 쓰면서 지낼래?"

내가 듣고 있는 말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어렵사리 구한 레슨을 3달째 받고 있을 때, 레슨 선생님께서 나에게 뜻밖의 스카웃 제의를 해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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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ipe #4. 타르타르 소스


직접 만든 수제 타르타르 소스. 가끔 집에 피클이 남으면 타르타르 소스를 대량으로 만들어 두고두고 먹으면 편리하다. 아무래도 난 계란+마요네즈 조합이 질리지가 않는 듯하다.


타르타르 소스란?

한동안 서브웨이의 에그마요 샌드위치와 맥도날드의 빅맥세트만 주구장창 먹었던 적이 있다. 요즘처럼 오천원 이하로 해결할 수 있는 끼니가 전무한 시대에 이들은 내 허기와 가난한 지갑사정을 책임지는 고마운 존재들이었다. 문득 이 둘을 먹다가 느낀 것이 이 둘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 타르타르 소스였다. 타르타르 소스는 마요네즈에 다진 피클, 양파, 달걀, 그리고 레몬즙 등을 넣어서 만든 소스로, 1845년 잉글랜드에서 처음 만들어진 소스라고 한다. 이제는 각 나라에 바리에이션이 돼 치킨난반이나 생선카츠 같은 일식에도 사용되며 빅맥의 소스는 이 타르타르 소스를 베이스로 한 소스다. 마요네즈도 달걀 노른자로 만든 소스인데, 이걸 다시 삶은 달걀과 섞다니. 맛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는 조합이다. 단, 칼로리가 높으니 너무 많이 먹지는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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