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를 아시나요?
도망치듯 서울로 올라온 후에도 명절이 되면 목포에 갔다.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햄버거 하나에 화장실도 못 들린 체 20시간 가까운 귀향길을 참아내야 했던 목포였다. 서해안고속도로와 KTX로 인해 이제는 목포 가는 게 서울 가는 것만큼 쉬워졌다(현재 나는 안산에 거주 중). 명절이 되면 전국 각지에 흩어진 친구들이 목포에 모여 못다 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모이는 장소는 늘 우리 집에서 5분이면 갈 수 있는 유달산 아래 MOSS라는 술집이었다. 대학시절에도 자주 가던 술집이었는데, 명절에 가면 참 당혹스러운 일을 만나게 된다. 나와 비슷한 또래라면 기억할 텐데(80년생) 그 술집은 명절이 되면 기존의 메뉴판이 사라지고 코팅된 한 장짜리 메뉴판이 등장한다. 소주는 사라지고 병맥주만 판매되고 술과 안주값이 비싸진다.
서울 사람들이 이 사실을 들으면 소비자보호원에 신고하라거나 그런데를 왜 가냐 할는지 모른다. 그런데 거기 말고도 많은 술집들이 명절 대목이 되면 그렇게 가격들을 올렸고 메뉴를 축소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명절에 오거리를 중심으로 반경 10분 거리의 술집을 제외하고는 달리 갈 데도 없었고 추억의 술집에서 어릴적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그 값을 치러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약속 없이 그곳을 가도 한 두 테이블은 아는 얼굴들이 꼭 있었다.
그러다 신도시 조성 소식을 들었고. 이제 명절에 친구들이랑 술 약속을 잡을 때면 목포역 근처 유달산이나 오거리가 아니라 하당에서 보자는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하당은 지금 원도심을 떠나 처음 한꺼번에 사람들이 이주한 곳으로 영산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역이다. 현재는 평화광장(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이후 조성된 공원), 롯데마트, 이마트 등 공원과 대형마트와 빽빽하게 들어선 아파트들로 목포의 중심지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옷가게나 술집들은 오거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오거리 너머 차 없는 거리를 중심으로 모두 모이고 소통하는 중심가였는데 지금 가보면 해가 지면 지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유령 같은 곳이 되어버렸다.
목포의 중심이 하당으로 옮겨졌더라도 오거리는 목포 주민들에게는 버리고 싶지 않은 곳이었음에는 분명하다. 밤이 되면 인적이 드문 무서운 곳이 되었고 임대 현수막이 여기저기 색 바랜 채 걸려있으니 더 상막해지지 않도록 목포주민들이 시와 시의회에 뭐라도 해내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때 사실 목포 원도심은 살아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시나 시의회의 창의성은 우스운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 당시 목포시장을 빛 시장이라고 불렀는데 이유인즉슨 오거리의 밤이 어두워졌다 하니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 루미나리에를 설치한 것이다.
루미나리에란?
빛의 축제라는 의미의 루미나리에(luminarie)는 ‘luminarie’는 ‘빛’ 또는 ‘조명’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로, 르네상스 양식의 목조 건축물에 조명을 달아 빛을 내는 것으로 15세기에 종교 장식에서 출발함.
사진에서도 보이겠지만, 생각보다 화려한 모습에 처음 보면 와~ 탄성이 절로 나오긴 한다. 그러나 수백 미터에 달하는 길 곳곳을 빛으로 가득 채우기 위해 목포시민들은 엄청난 세금을 낭비해야 했고, 한번 설치된 루미나리에를 철거할 수도 없어 처치곤란이 되자, 이제는 매일 불을 켜지도 못하고 켰다 껐다를 하면서 생색만 내고 있다. 아무도 오지 않는 거리에 빛을 내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부은 시장은 빛시장이라는 놀림거리가 되었고, 그 이후에도 공동화되는 원도심을 막을 길은 없었다. 목포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계속 아파트를 짓는 일 말고는 진척이 없었다. 하당과 북항, 삼학도가 모두 아파트로 가득 채워지고 더 이상 아파트를 지을 데가 없어질 때쯤 전남도청의 이전 문제와 무안의 목포시 편입 문제가 화두가 되면서 또 한 번 목포가 희망의 빛이 드리우는가 싶었다. 그러나 역시, 도청이 들어선 남악신도시만이 엄청난 아파트를 지어대면서 또 한 번 원도심은 비워져 갔다.
이쯤 되면, 원도심의 쇄락과 대규모 아파트 건설의 상관관계를 무시할 수만은 없어 보인다. 원도심의 집들은 1930년대부터 지어지기 시작해, 1980년대까지 거의 지어져서 스스로 보수하고 개조하지 않으면 어린 자녀를 데리고 살기에는 불편함이 많은 동네다. 부모님이 살고 계신 집도 1980년 무렵에 지어진 건물로 40년 된 건물임에도 그 동네에서는 제법 최신식이다. 사람들이 떠나는 것은 술집이 사라지고 옷가게가 없어지면서 느껴졌는데, 정작 경제가 죽어간다는 것은 은행이 문을 닫고 사라질 때 명확해졌다.
우리 집을 중심으로 5분 내로 갈 수 있는 은행이 4개 이상이었다. 그러나 하나둘 사라지더니 작년에는 하나 남은 한 은행의 ATM마저 사라지는 것을 보고, 끝까지 왔음을 체감했다. 우리 고향집은 건어물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 부모님도 건어물 가게를 하고 계신다. 목포의 건어물 거리에는 예전부터 1층은 가계 2층에는 가정집을 두고 살던 곳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1층 가계는 운영하되 2층 가정집에는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가게를 운영하시는 분들의 대부분은 70~80대로 몇 년 내로 장사를 그만두시고 가계마저 문을 닫게 될 것이다. 다행히 가업을 이으려는 자식이 있긴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그 마저도 청년실업을 피해 도망 온 케이스에 불가했다. 몇 년 후에는 건어물 가게의 대부분이 문을 닫을 것이고 그건 건어물 거리 옆 홍어거리에도 예견되는 현상이다. 지금 고향집에 가서 밤이 되면 우리집 말고는 불켜진 집이 없다.
일자리도 없고, 괜찮은 집도 없는 목포 원도심이 손혜원 의원 때문에 다시 한번 살아날 기회를 앞두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정치인들이 목포에서 경제를 살리고 원도심을 부활시키겠노라 공헌했지만 그 누구도 해결하지 못한 일이다. 목포 사람들은 공산당 투표율에 가까운 표심을 보내며 민주당을 밀어줬으나 늘 배신은 어김없었고, 아파트만 남긴 채 목포는 파해쳐졌다. 2019년의 목포는 과연 되살아날까? 아니 전환점이 될까? 손혜원의 열정과 진심을 믿지만 사실 나는 목포의 밝은 내일을 확신하냐고 묻는다면 여전히 어둡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번만큼은 믿고 싶다. 목포 주민, 목포가 고향인 사람들 대부분 손혜원이 제시한 방식에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동안 목포는 제대로 된 기획없이 토건세력과 정치권이 맘대로 휘두른 탓에 원도심을 제외하고는 색깔 없는 아파트 일색의 발전을 거듭해왔다. 원도심은 다행히도 욕망 가득한 토건세력에게 아직은 빼앗기지 않았으니 지켜내는 방식으로 목포만의 도시재생을 만들어보길 기대해본다.
** 내가 목포 원도심 기획에 참여한다면
제안하고 싶은 것들....**
1. 데이터 무제한 거리 : 다양한 콘텐츠 생산과 공유가 자유롭게 함으로써 다양한 IT기술의 연계 촉진
2. 거리경관 조성 : 전깃줄 지중화와 태양광 조명/바닥 등을 활용한 1930년대 분위기 조성
3. 공동브랜드/화폐/마일리지 : 근대역사공원을 중심으로 식당, 숙소, 카페 등이 공동브랜드로 묶어 공동마케팅과 브랜드 관리가 가능하도록 하고 쿠폰이나 마일리지를 공유하고 전용화폐(EX엽전) 사용
4. 여행상품/워크숍/모임 상품 개발 : 기획력 있는 청년과 마을 주민, 근대역사문화해설사들의 연대가 필요
> 대형 여행사가 함께하는 여행상품보다 가족, 친구끼리의 소수 여행이 유리한 목포 원도심의 특성을 고려
5. 시민기금 : 이미 구체화하신 분이 계셔서 기사로 공유해요^^ (전은호 목포 도시재생 지원센터장)
6. 식당, 숙소, 술집을 넘어 다양한 업종의 청년창업을 지원
> IT, 디자인, 기획 등 다양한 디지털 노마드족 지원
> 공간을 필요로 하는 문화예술가
> 역사를 다양하게 즐기는 새로운 방식의 아이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