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끼리는 '빚쟁이 모임'이라고 부른다.
중소기업진흥공단(약칭 중진공)에서 한때 수출을 지향하는 기업 대표 간 교류를 장려하기 위해서 만든 모임이다. 글로벌퓨쳐스라는 명칭의 이 사업은 3년 정도 진행하고 없어진 걸로 안다. 중진공에서 주선을 하다 보니 그곳의 자금을 지원받은 기업들 위주이고, 다들 크고 작게 나라에 빚을 지고 있어서 우리끼리는 '빚쟁이들만 모아 놓았다'라고 농을 하면서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2017년 6월에 첫 모임을 가졌으니 올해로 벌써 8년째다. 약 40 곳의 다양한 업종의 기업이 모여 있는데, 이 중 '소미미디어'라고 출판업을 하는 대표님이 계신다. 대부분 멤버가 제조업과 유통, IT 위주인데 출판업은 이 분이 유일하다. 온화한 성품에 추진력이 좋으신 이 대표님과 간혹 술자리를 하게 되면 '제 책도 출간해 주세요'라며 빈말을 던지곤 했다. 그러면 당연히 이 분 역시 언제가 그런 날을 만들어 보자고 또 실없는 약속을 하며 받아치셨다. 기업인 모임에 출판업을 하는 분을 만난 건 아주 드문 하나의 우연이었다.
그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큰 아들이 페이스북에 '유사수학'이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카드뉴스 형태로 수학 관련 에피소드를 발행하고 있었는데 구독자가 꽤 되었고 콘텐츠도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한 번은 모임 때 소미미디어 대표님께 아들 얘기를 하면서 카드뉴스 내용을 정리해서 책으로 만들면 잘 팔릴 거 같다고 제안을 했다. 흥미를 갖고 내 얘기를 들어주었는데, 아들이 아직 고등학생 신분인 데다가, 수학이라는 낯선 카테고리라서 쉽지 않을 거 같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 후 우연히 '웨일북'이라는 곳에서 아들에게 출판을 해 보자고 연락이 와서 아들이 1년 가까이 글을 정리해서 '발칙한 수학책'이라는 이름으로 책 출간을 하게 되었는데 의외의 인기를 끌었다. 소미미디어 대표님 입장에서는 먼저 제안을 받은 책인데, 다른 출판사에서 그 책을 펴내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걸 확인하게 되어서 기회를 안타깝게 놓친 기분도 들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두어 달 후 '빚쟁이 모임' 때 소미 대표님께서 나에게 책을 내보지 않겠냐고 그러시더니 며칠이 지난 후 우리 회사를 찾아와서 저술 관련 미팅을 하고 계약을 맺었다. 그 즉시 통장에 계약금까지 꽂아주셨다. 타 출판사에 놓친 아들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게 나와의 출판 계약을 맺는데 영향을 미쳤을 걸로 나는 추정한다. 아들의 책이 의도치 않게 우연히 나한테까지 영향을 미친 셈이다.
계약 후 글을 쓸려니 너무 막막했다. 계약금을 받았으니 물릴 수도 없었다.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방향성을 잡는 거부터 힘들었다.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편안하게 내 얘기를 적어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래서 평소에 내가 관심 있고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주제들, 내가 경험한 것들에 대해서 글을 써 보았다. 스스로 동기부여 차원에서 그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렇게 두세 꼭지 인터넷쇼핑몰 사업에 관련된 글을 적었는데, 운 좋게 일부 글이 바이럴이 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아웃스탠딩'이라는 매체에서 원고 작성 의뢰가 들어왔다. 페이스북보다는 동기부여가 잘 될 거 같아서 덜컥 계약을 맺었다. 23년 6월부터 월 1회씩 총 5회 기고를 하는 조건이었다. 유료사이트인 만큼 공개된 온라인 채널에는 글을 공유할 수 없지만 책 출간은 가능하다고 그랬다. 계약으로 인해 강제적으로 글을 쓸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니까 어쨌든 한 달에 하나씩 꼬박꼬박 글을 쓰게 되었다.
다행히 내가 쓴 글들이 공감이 되는지 댓글도 달리고 호평이 받으니까 글 쓰는 재미가 커졌다. 5회를 마친 23년 연말경 업무가 과중해서 아웃스탠딩에 양해를 구하고 글 기고는 종료했다. 그러다가 다시 지난해 7월 기고 재요청이 와서 연말까지 다시 5회 더 글을 썼다. 이 글들이 책의 토대를 잡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아웃스탠딩과의 인연은 우연히 페이스북에 쓴 글이 맺어준 소중한 인연이다.
사실 나는 어릴 적부터 책을 내고 싶다는 욕망을 갖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한테 글재주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자기 확신에 사로잡혀 언젠가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진작부터 품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책을 많이 읽었고 대학 진학 시에서 전공을 국어국문학과로 선택했다. 쑥스럽긴 하지만 대학문예상 소설부문에서 당선되기도 했다. 학창 시절 등단을 하지 못해 졸업 후 등단 준비를 한다고 모 소설가의 문하생으로 글공부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욕망은 예상치 못하게 어느 날 갑자기 내가 가장의 신분에 처하면서 모두 날아가 버렸다. 대학생의 신분을 벗어나자마자 그 즉시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고, 어쩌다 보니 사업을 하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회사를 성장시켜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되어서 20여 년을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러다가 50살이 된 지금 3번의 우연이 교차해서 발생한 덕분에 운명처럼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독서라는 건 소중한 '시간'이라는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 대충 훑어보더라도 2~3시간, 정독을 할 경우엔 6~7시간을 집중해야 한다. 넷플릭스 시리즈물보다는 짧지만 영화 관람 시간보다는 훨씬 긴 시간을 투자해야 저자의 생각과 경험을 파악해서 내 걸로 만들 수 있다.
그래서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뻔한 얘기가 아니라 내가 직접 경험한 유니크한 내용이 들어가야 하고, 이를 짜임새 있게 구성해서 읽기 편하게 요리해야 한다. 책을 읽은 후 깨달음을 얻든, 공감을 얻든, 반성을 하든, 반론이 떠오르든 뭔가 어떠한 반향을 일으켜야만 그 글이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이러한 마음으로 글을 썼고 이 글들을 모아서 책으로 엮었다.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재미있다.
관계 때문에 사두고 책꽂이에 꽂혀서 먼지가 쌓이는 신세가 되지 않고, 다 읽고 난 뒤에 주변에 추천해 주는 책이면 좋겠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한 권 사주면 큰 도움이 되니, 조심스레 부탁드린다. 다 읽고 난 뒤에 좋았던 내용과 개선해야 될 내용에 대해 개인적으로 피드백 주면 더욱 고맙겠다. 게다가 책 6권이 팔리면 나와 당신이 함께 커피를 마실 수 있을 정도의 원고료도 내가 벌 수 있으니, 그 돈으로 당신께 커피도 꼭 한잔 대접하고 싶다. 아, 책 제목은 '사업의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