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에게 연락이 올까?'
'하반기 총운'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나는 타로점에 푹 빠지고 말았다. 정확히는 '유튜브 타로'에.
고작 동영상으로 보는 점괘가 들어맞겠느냐고 하겠지만, 나는 영상 속 목소리를 꽤나 믿는 편이었다.
'주변 가까운 곳에서 당신에게 관심 있는 사람이 있어요. 연하이고, 자주 만나는 것 같네요.' 하면서 당혹스러울만치 내 연애사업의 진행상황을 족집게처럼 맞추는가 하면,
'이번 달은 조금 힘들었던 일들이 잘 마무리가 되면서 주변의 인정을 받게 될 거예요.' 하면서 당장에 닥친 스트레스가 곧 사라진다며 단호한 목소리로 삶의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어디서든 대기 없이 점을 볼 수 있다는 점, 좋댓구알로 내는 저렴한 복채도 유튜브 타로의 매력이었다.
타로점에 푹 빠졌던 나는 심지어 타로카드를 직접 배워보기로 했다. 유튜브 타로보다 구체적인 답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직접 뽑는 타로점은 유튜브타로보다도 더 잘 들어맞았고, 그렇게 나는 점괘에 의존하는 삶을 살게 됐다.
좋지 않은 카드가 나오면 그날은 조금은 소극적으로 행동했다. 매일 타로카드를 뽑아 뒤집을 때마다 내 심장은 로또 번호를 기다리듯 콩닥거렸다.
곁에서 나를 지켜보던 남자친구는 내가 타로카드를 꺼낼 때마다 '정문이가 마음이 심란한가 보다.'하고 일기장에 적었다.
퇴사를 고민하던 시기엔, 타로를 거의 매일 봤던 것 같다.
올 해는 이동수가 있는지, 퇴사를 해도 괜찮을지, 사업을 하면 어떨지, 카드에게 계속 질문했다.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으면, 다음 날, 그다음 날에 원하는 대답을 듣기 위해 타로카드를 펼쳤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어느 날은 사주풀이 집까지 가서 "저 어떻게 살까요?"물어봤다. "살던 대로 살아라-"하는 사주선생님의 답에는 또 만족하지 못해서는, 집에 돌아와 타로카드를 다시 펼쳐들었더랬다. 내가 원하는 대답은 대체 뭐였을까.
우스운 건, 결국 내가 퇴사를 결정한 것은 타로점이나 사주의 결과 때문이 아니었다. 단언컨대, 정말, 단 1%도 영향을 주지 않았다.(아- 그 돈으로 치킨 사 먹을 걸! 이건 왜 안 알려주셨을까?)
그 무렵, 나는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를 읽게 된다.
책에서 송 과장은 '어젯밤 꿈에서 황금 여의주를 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일곱 마리 용들을 바라보는 꿈을 꾸었을지라도 나는 이 책과 저 복권을 절대 바꾸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띠용! 너무 멋있다. 저런 대박꿈을 꾸고도 복권을 안 사?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삶은 저런 태도를 가진 삶이라는 걸. 타로에도, 사주에도, 심지어는 운명에도 휘둘리지 않는 삶. 스스로가 가진 선택권을 잃지 않는 삶.
왜 어느 것에도 속박되고 싶지 않아 불만이었던 내가 왜 타로점에는 의지하고 싶었던 걸까. 왜 내 삶을 내가 책임지지 않고, 운명보다 큰 어떤 존재가 와서 해결해 주기만 바라고 앉아서 타로카드만 내려다보고 있었던 걸까. 고개를 들고일어나면, 당장 코앞에 쟁취할 수 있는 세상의 멋지고 좋은 것들이 잔뜩 차려져 있는데.
내 삶을 어떻게 할지, 내가 생각하고 내가 의도하고 살면 되는 것인데. 그냥 주저앉아, 누군가 와서 드라마처럼 뿅 하고 해결해주었으면 하는 마음. 그런 수동적이고 어린 마음에 점괘를 찾았었단 걸 알게 됐다.
그리고 더 이상 점괘를 들여다보지 않는 삶은 타로점을 보던 날들보다도 훨씬 만족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