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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정문 Jul 09. 2024

어느 날 불안이 찾아왔다

어라, 이상하다?

2024년 초쯤엔 내가 글먹(글로 먹고사는 것)을 시작했어야 하는데? 현실은 백수한량이라니!


처음 퇴사하고 내 미래를 그려갈 땐, '시작'하는 일이 제일 어려운 줄 알았다. 일단 뭔갈 시작하면 다른 내가 되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돌아보니 타이틀은 여전한 작가지망생에, 그렇다고 글만 죽어라 쓰는 노력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자격증 공부며 밴드활동이며 요가며, 이것저것 들쑤시고만 다니는 모지랭이.


결국 시작하는 일 보다도 더 힘든 것은 '지속'하는 것이라는 사실. 끝없는 외로움과 불안 속에서 초라한 나를 견디며 계속 나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깨닫게 되었다.


결코 꿈꾸지 않았던 초라한 내 모습이 나를 괴롭게 한 것일까. 어느 순간부턴가 나의 예민함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원래가 나는 초초초예민한 사람이다. 무던한 척 하지만 나의 예민함을 숨기고 타인의 예민함을 외면하려는 노력을 부단히 해왔었는데, 스프링이 고장 나듯 핑-하고 내 머리가 고장나버리고 말았다.


예민해진 나는 가장 먼저 성취를 하지 못한 이유를 밖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효율적으로 글에 집중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거야. 사람들과의 만남을 줄이자. 불필요한 활동들을 다 중단하자.

그렇게 취미로 시작했던 기타를 손에서 놓고, 심지어 꾸준히 다니던 요가학원도 그만두게 되었다.(이쯤 해서 브런치도 올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방콕 자기계발생활이 시작되면서 부담은 커졌다. 나를 증명해 내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핑곗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소설 짓기에 매진해야만 했다.


그러나 하나에만 집중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수없이 한계에 부딪혔다.

이야기가 맛깔나지 않고, 캐릭터는 매력도 없고, 일어나는 사건들은 단편적이고 재미도 없었다. 10만 자를 겨우 써낸 나의 소설은 아무리 고쳐도 회생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투고한 소설은 당연히 반려비를 맞고, 새롭게 구상해 쓰기 시작한 소설마저도 10만 자에서 탁, 막혀 나아가질 못했다.


'아. 나, 글 못쓰는구나. 큰일 났다.'


예민함이 폭발하면서 잘 쓰이던 희망회로가 고장 났기 때문에,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비관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호기롭게 퇴사하고, 주변에는 글 쓰겠다고 떠들어두었는데. 이쯤 해서 아웃풋이 나와줘야 하는데, 이게 뭐야! 나, 능력도 없는 게 허세 부리다가 실패한 거지? 그런 거지?'


생각이 이렇게까지 치닫게 되자, 자연스럽게 나는 글쓰기를 회피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외부의 모든 부정적인 자극을 증폭해서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끝없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마침 월세계약이 만기가 되어가서 이사라는 고민거리가 턱 주어졌다.


- 이제 곧 이사를 가야 하는데, 어디로 가지? 큰일이네

- 이사를 가게 되면 얼룩이 진 벽지를 다 갈아주고 가야 하나?

- 내 실수가 아니라도 물어내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던데.

- 그러다가 집주인이랑 싸우게 되면 어떡하지?

- 그래도 3년이나 살고 나가는 건데, 집주인이 나한테 그러면 안 되지.


혼자 망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니, 멀쩡하고 친절했던 나의 집주인이 내 머릿속에서 나를 괴롭히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런 사고가 쓸데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내 생각에 집중하면서 파고드는 나를 막을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나는 매사에 끝없는 걱정을 이어가면서 내 안의 불안을 증폭시켰다.


- 곧 결혼도 해야 하는데, 버는 돈도 없이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걸까?

- 이제 사회로 다시 못 돌아가는 건 아닐까?

- 퇴사한 내 선택이 틀린 게 증명되면 어떡하지?


인생 걱정에서부터,


- 이번에 산 식탁, 사고 나서 후회하면 어떡하지?

- 여기 잘못 들어갔다가 바가지 쓰는 거 아니야?

- 저거 괜히 썼다가 건강 안 좋아지면 어떡해?


일상의 아주 사소한 걱정들까지.


이런저런 걱정으로 매일을 채워가던 어느 날, 갑자기 내 눈앞에 검은 점이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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