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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유 Oct 07. 2023

쩝쩝대는 소리에 내 불평이 들리지 않겠지만

쩝쩝거리지 좀 마라!

맛있는 산해진미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있더라도, 때로는 전적으로 마다하고 편의점의 정크푸드로 갈음한다. 쩝쩝거리며 음식을 먹는 쩝쩝이들이 거슬리기 때문이다. 일견 옹졸한 나의 신념은 지켜야 한다는 강박으로 유지되지 않고, 다만 생리적인 거부 반응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쩝쩝이들이 내는 끔찍한 소음은 식욕을 저하시킨다. 음식의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졸지엔 그들의 입에서 나는 소음들이 나의 귀를 거쳐 입으로 전해져, 입안에서 감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의 귀는 이미 그들의 입안에서 씹히고 있었다. 


음식을 먹는 것은 뭇 생명으로부터 양분을 섭취하는 행위로 인간의 현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불가결하기에, 동식물의 ‘몸’을 먹는다는 이기적인 행위에 신의 섭리가 깃들며, 밥상에 오르기까지 여러 사람의 수고가 보태졌기에,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식사에는 위대함이 담겨 있다. 그런데 쩝쩝이들의 작태엔 그 모든 것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이 깃들어 있는가? 그들은 비뚤어진 입으로 제멋대로 음식을 유린하며 인간스러운 전능함에 도취되어 있다.


그렇다면 쩝쩝이들은 왜 쩝쩝거릴까.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타고난 용모처럼 소리가 날 수밖에 없는 구강 구조를 갖고 있기라도 한 걸까. 차라리 그랬다면, 나는 보청기라도 달아 그들의 비애를 위무하였으리라.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쩝쩝이들은 자기 입에서 소리가 나는지 모르고 혹은 알아도 고치려 하지 않는다. 그나마 다른 동류에 비해 제 소리는 적다고 합리화하고 습관적이라 고칠 수 없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쩝쩝 소리를 지적하는 사람을 되레 예민한 사람 취급하며 얼굴을 붉히고 비정상인 제 성질을 정상으로 획책하려 든다.


부정적인 감정의 지옥으로 인도하는 모 악장, 쭈왑쭈왁쭙쫩짭짭. 쩝쩝이들은 자기들이 내는 듣기 싫은 소리에 걸맞은 뻔뻔한 태도를 일관한다.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쩝쩝거리지 않게 신경 쓰는 정상인들이고, 피해를 보지 않는 사람들은 그 소리에 면역된 ‘연주자들’이다. 사실, 누구나 쩝쩝댈 수 있다. 음식을 먹을 때 입을 열면 그 사이로 소리가 새나가는 것이 쩝쩝 소리가 형성되는 원리이다. 그럼 입을 오므리고 씹으면 될 노릇이다. 정상인들은 타인에 대한 배려로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억제하는데, 쩝쩝이들은 그러한 인식이 철저히 결여되어 있다.


음식을 섭취할 때 자신의 입에서 어떤 소리가 발생하는지 고려하는 섬세함이 없다. 언제나 속전속결로 효율성을 따지며 입안의 음식을 믹서기처럼 갈아 버린다. 그러면서도 미식의 쾌락을 추구하는지 입안의 음식을 굴리며 음미하는데 그 과정에서 식탐이 코로도 나와 노이즈를 유발한다. 기본적으로 쩝쩝이들은 어떤 음식물의 맛과 감촉을 입체적으로 판단하려고 드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작은 크기의 음식은 혓바닥 위로 피겨스케이팅을 추게 하는데 입이 벌어지면서 드문드문 보이는 잔해의 시각적인 테러는 덤이다. 또한, 허기질 때는 스타카토로 변주하며 식도를 동원해 배고픈 상태를 드러내 보이는데 경박하고 얄팍할 따름이다.


먹는 음식의 형태에 따라 발생하는 소리가 달라지는 것도 열받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깍두기는 아삭아삭, 조개는 쪼득쪼득, 떡은 쭈왑쭈왑, 국물은 후루룩. 의성어는 더럽혀졌다. 의성어는 그들이 씹다 뱉은 찌꺼기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내게 있어 의성어는 동화 속에 등장해 상상력을 자극하는 감미로운 어휘였는데 쩝쩝이들의 의성어 총공세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쩝쩝거리는 것은 식사 예절에도 어긋난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어느 오지의 식인 문화권이든 그 소음에 관대한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쩝쩝이들도 어릴 땐 소리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밥상머리에서 적절한 교육을 통해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진화했어야 하나 방치되었고, 그 결과 어느 인종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괴물’이 되고 말았다. 식사 예절에 관해 덧붙이자면, 개인적으로 나는 젓가락질이 서툰 편이다. 그래서 종종 놀림받곤 하는데 도리가 있겠는가, ‘휘적휘적이’인 나는 젓가락질을 잘하시는 분들의 비방을 용인하지 않을 수 없다. 


서두에서 제기한 것처럼, 나는 소란스러운 쩝쩝이들과 어떤 이유에서든 겸상하고 싶지 않다. 포박당해 쩝쩝이와 식사를 하는 고문에 처한다면 술술 불 것이고, 사업적으로 중요한 파트너가 쩝쩝이라면 나는 그 비즈니스를 포기할 것이고, 지인이 쩝쩝댄다면 한 번 지적하고 개선의 여지가 없으면 친교적인 관계라도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피치 못하다. 쩝쩝이들이 쩝쩝댈 수밖에 없는 것처럼 나의 모든 세포가 그 소리의 근원지를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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