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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cht Sep 19. 2022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문학에 스며든 역사를 찾아서.

 

 나의 자유가 없는 곳.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고, 마음대로 먹을 수도 없고, 자고 싶어도 잘 수 없는 곳. '나는 생각하기에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고 하지만, 단순히 존재한다고 해서 삶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 글은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에서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가 수용소에서 받는 억압과 구조적인 폭력을 소개한다. 자유는 커녕 인간의 존엄성이 무참히 파괴된 곳, 당대 소련의 '수용소(굴라크)'라는 공간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인터넷 짤방. 하지만 이 그림으로 글이 쉽게 이해된다.


* 아래 링크에서 더 편하게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licht_98/221943952506




o) 줄거리 

  새벽 5시, 언제나처럼 기상 신호가 울렸다. 두껍게 성에가 얼어붙은 유리창을 통해서 짤막한 음향이 희미하게 흘러 들어왔다.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늦잠을 자는 일이 한 번도 없었으나, 오늘은 웬일인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온 몸이 쑤시고 오슬오슬 추운 게 몸살이라도 난 모양이다. 오늘만은 날이 새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그는 생각한다. 반장과 부반장이 일어나는 소리가 들린다. 명령을 수령하러 본부로 가는 것이겠지. 그래도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슈호프가 속한 104 작업반이 '사회주의 생활단지' 건설장으로 가게 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허허벌판에 높여져 밤새 쌓인 눈이 가득 덮인 작업장으로, 전혀 난방이 되지 않으니 얼어 죽지 않기 위해선 열심히 곡괭이를 휘둘러야만 하는 끔찍한 곳이었다. 침상 위 옆자리의 침례교 신자 알로샤와 침상 아래의 전직 해군 중령인 부이노프스키가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일어나자마자 밖에 나갔다온 부이노프스키가 막사 안으로 들어와 "기운을 내라! 영하 30도는 내려갔는걸!" 하고 외친다.

  

 슈호프는 몸살 때문에 늦잠을 자버렸는데 운이 없게도 당직 간수 타타르에게 들켜 본부로 끌려갔다. 슈호프는 훈훈하게 타오르는 페치카 옆에서 타타르의 훈계를 들었다. 그는 독방인 영창 3일 형을 처해야하는 죄지만, 간부실 마루 청소를 깨끗이 하는 것으로 이 일을 덮는다고 말했다. 슈호프는 감사하다고 말했고, 청소를 끝낸 뒤 식당으로 갔다. 식당은 언제나 아수라장이었다.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양배추국이 죄수들에게 주어졌다. 그들은 그 맛없는 양배추국을 어떻게든 하나 더 먹으려고 거짓말과 사기를 쳤다. 슈호프는 배식조에 속한 사람들의 성향과 배식 순서를 모두 꿰고 있었다. 평상시에는 잘 안되는 일이지만 슈호프는 운이 좋게도 오늘은 배식을 2번 받았다. 그는 비좁은 식탁에 겨우 앉아 처음 먹는 것처럼 연기했다. 그런데 맞은편 어떤 죄수가 성호를 긋고는 죽을 먹었다. 슈호프는 그가 아마도 우크라이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곳의 러시아인은 성호를 잊은 지 이미 오래였기 때문이다. 식사를 끝낸 슈호프는 숟가락을 방한화에 꽂았다. 항상 숟가락은 스스로가 챙겨야만 했다. 식기를 세척하는 건 사치일 뿐더러 그럴 여유조차 주지 않아 안하게 되었다. <중략>

  

 몸이 아팠다. 의무실로 가서 진단을 받았으나 퇴짜를 맞았다. 꾀병인 것 같기에 처벌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막사로 돌아왔다. "104 작업반, 막사 앞으로 집합!" 하는 반장 추린(수용소 생활 19년의 고참)의 명령이 떨어졌다. 추린은 '사회주의 생활단지' 작업을 다른 반에게 돌리기 위해 간부와 이야기를 하고 왔었다. 104반의 반장 추린은 일을 잘할 뿐만 아니라 수용소 후임들을 아꼈다. 그는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수용소에 체포된 인물인데, 투지와 강한 신념을 가져 작업반을 잘 이끌어 갔다. 특히, 오늘과 같이 정말 힘든 일이 주어졌을 때 간수들에게 가 협상하는 기술이 탁월해, 반원들의 지지와 선망을 모두 받았다. 추린이 이렇게 반원들을 위해 헌신하기에, 104반의 모든 수용수들은 간수들에겐 거짓말을 해도 추린에게만큼은 거짓말을 하면 안되었다. 이는 막사안에서 무조건적으로 지켜야 할 법이었다.   

 

 추린 덕택에 오늘은 '사회주의 생활단지' 공사 대신 새 작업장의 벽돌을 쌓는 일이 주어졌다. 실내에서 있을 수 있었으므로 훨씬 나았다. 머나먼 작업장까지 줄을 지어 가는길, 감시병들의 엄중한 감시를 받으며 걸어가는 슈호프의 머리 속에는 갖가지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슈호프, 그는 독 · 소 전쟁에서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해 돌아왔으나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어 반국가죄 58조에 해당한다는 죄목으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지금까지 여러 수용소를 전전하며 8년을 보냈고 앞으로 2년만 지나면 석방되는 것이었으나, 그는 그것을 믿지 않고 체념과 주저 속에서 생활했다. 왜냐하면 형량을 다채워도 죄수에게 갖가지 다른 이유를 붙여 그 이상의 형량을 살게 하는 일이 수용소에서는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슈호프가 지금까지 수용소에서 한 것이라곤 남의 심부름도 하거나, 장갑을 짜주거나, 조금의 돈을 얻으면 다른 죄수가 받은 소포에서 담배나 빵을 사는 일이 고작이었다. 정직하며 순진한 그는 남의 물건을 훔칠 줄도 모르고, 남의 것을 빼앗을 줄도 모르는 순수한 사람이었다. 잔재주도 없고 자기보다 약한 자를 잘 도와주는 마음씨 고운 사람이었지만 수용소에서 자유를 빼앗긴채 살아가고 있다. 초반에는 억울함과 분노가 치밀어 밤 잠을 못이룬 적도 많았지만, 이내 체념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리고 이 잦아짐은 습관이 되고 성격이 되어 어떠한 불공평한 지시나 명령에도 순종하는 태도로 바뀌어졌다. 오히려 반항해봐야 아무런 득될 것이 없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차라리 몸도 정신도 편하려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따라주고, 그 순종 속에서 자신이 조금 더 이득을 챙길 수 있는 부분을 가져가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간부들 몰래 만든 안주머니, 몰래 먹는 음식, 몰래 더 껴입은 옷. 등 눈에 안띄고 몰래 한 행동들이 바로 슈호프가 10년 동안 수용소에서 터득한 삶의 지혜의 총체였다.  

  

 작업장에 도착한 그는 반장 추린을 도와 언제 몸이 아팠었느냐는 듯이 열심히 일을 한다. 수용소에도 뇌물이 있고 고발이 있고······ 그러나, 영하 30도를 넘는 추위 속에서도 훈훈한 인심이 있다. 슈호프는 오후에도 열심히 작업을 했다. 몸도 아주 거뜬해졌다. 우울하고 불쾌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으며, 어쩌면 거의 행복하기까지 한 하루였다. 그렇게 슈호프는 자기의 형기가 시작된 날로부터 꼭 3,653일(윤년으로 사흘이 더해짐)을 하루같이 보낸 것이다. 사흘이 더 가산된 것은 그 사이에 윤년이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 생활단지>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점심때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그리고 반장이 작업량 조정을 잘해서 오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쌓기도 했다. 줄칼 조각도 검사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맡아 주고 많은 벌이를 했으며, 잎담배도 사지 않았는가. 그리고 찌뿌드드하던 몸도 이젠 씻은 듯이 다 나았다.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o) 작품해설 

(1) 작가 소개

  먼저 노파심에 하나만 정리하고 가겠다. 우리가 정보를 얻을 때 자주 쓰는 나무위키에서는 알렉산드르 이사예비치 솔제니친(Алекса́ндр Иса́евич Солжени́цын)을 '유복자'라 설명한다. 그러나 이는 '유복(裕福)한 가정'을 말할 때의 유복(살림이 넉넉함)이 아니라, 아버지를 여의고 태어난 자식이란 뜻의 유복자(遺腹子)를 말한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뿐더러 러시아의 대문호로 칭송받는 인물인지라 집안도 '금수저'이었을 것이라 선입견을 가질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솔제니친은 홀어머니와 함께 궁핍한 생활을 이어나갔던 전형적인 '흙수저'였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신의 꿈인 작가를 포기하고 취직이 잘되는 수학과에 진학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던 중,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솔제니친은 병사로 소집되었다. 1941년에는 수송대의 마필계(말을 관리하는 부대)에서 복무하다가, 1942년에는 포병장교학교에 입학하여 중대장으로 전쟁에 참가하였다. 끔찍한 전쟁이 몇 해 동안 이어지면서 셀 수도 없이 많은 군인과 민간인이 포화 속에서 죽어나갔지만, 그는 끝까지 살아남았다. 훗날 적성훈장을 받을 정도로 혁혁한 전과를 세우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를 죽음의 공포 속으로 몰아붙인건 따로 있었다. 바로 그가 직접 쓴 한 장의 편지였다.


 1945년,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그는 친구에게 편지를 부쳤다. 암울했던 소련의 상황에 회의감을 품고 당시 최고권력자 스탈린을 ’아주 살짝‘ 비하하는 내용이 담긴 편지였다. 그러나 운이 나쁘게도 소련의 정보기관이 이 편지를 입수했고, 솔제니친은 즉각 체포되어 8년 형을 선고받게 된다. 이렇게 그는 1945년 이후부터 1956년 소련 최고재판소 군사심의관회의에서 복권되기까지 유형지를 돌며 수용소 생활을 경험한다. 그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역사적 사건과 시대적 비극에 대하여 글을 쓰기 시작하여,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담담하게 묘사하는 일련의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상상만으로는 알 수 없는 생생함이 묻어나오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바로 작가 자신이 수용소에서 생활했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소련 강제노동수용소(굴라크)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담대한 정치적 비판보다 오히려 담담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인간의 비극을 그려나간 작가의 예술적 재능을 칭송받는 작품이다.



(2) 작품 분석

 작가는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슈호프가 수용되어 있는 강제노동수용소는 수감자들이 거의 노예인 곳이나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수감자들은 폭력에 쉽게 노출되어 있으며, 심지어 목숨마저도 바람 앞의 촛불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수감자들은 이러한 대우를 받을 만한 중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범죄 행위를 한 적도 없고, 어떤 특별한 정치적인 임무를 갖고 활동한 적도 없으며, 심지어는 특별한 정치사상을 가져 본 적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다. 슈호프는 10년 형을 선고받았는데, 죄목은 전쟁 당시 독일군의 포로로 잡혔기 때문이었다. 침례교도인 어린 알료쉬카는 기도를 너무 열심히 해서(이하 (3)에서 서술), 반장 추린은 아버지가 부농이라서, 영화감독 체자리는 불온한 영화를 찍어서 등이 체포 및 장기 복역이유이다. 체포 될 이유가 없거나 있다고 해도 이만큼의 형량을 받을 일들이 전혀 아니었다.  

 

 수감자들의 죄와 상반되는 형량은 당시의 지배 이데 올로기의 아이러니와 모순을 날카롭게 드러내준다. 즉, 작가는 주인공을 스탈린 공포시대의 상징이며 정치적 억압의 수단이었던 강제노동수용소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당대 러시아의 정치적 모순을 드러내고 수많은 약자들을 비극으로 몰아넣은 가혹한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아주 사소한 이유 때문에 가족에게 말 한 마디 못하고 체포돼 수용소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 이것이 사실이었음을 알리는게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써낸 이유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정당성을 논하기보다는 권력에 의해 한 개인의 삶이 어디까지 무너져 내릴 수 있는지 주목했다.


 즉,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피해자에 가깝다. 반장인 추린, 전직 영화감독 체자리, 비굴하고 저열한 인간의 전형인 페추코프, 심지어는 수용소의 간부들조차도 정치적인 어떤 신념이나 의지 등을 갖고 있다기 보다는 수용소 내부에서의 정치적, 사회적 희생물에 불과하다. 따라서 매일매일 글들이 살아내는 반복되는 단순한 상, 즉 먹는 것, 작업 배당, 잔머리를 굴리며 편하게 지내보려는 몇몇 인물들의 생활태도, 잔꾀, 뇌물, 눈가림, 속임수 등의 묘사는 그러한 인물들의 개인적 비극,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버림받은 이들의 비참하고 비극적인 일상이 작가의 초점이 되고 있음을 드러내준다.

 

 하지만, 수용소의 하루가 세계 명작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따로있다. 이 소설이 궁극적으로 문제 삼는 것은 이러한 부조리나 가시적이고 때론 선정적인 폭력이 아니다. 그 일차적인 폭력 뒤에 찾아오는, 일상이 돼 버린 만성적인 폭력이다. 가령 슈호프는 더 이상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또 수용소 밖의 세상을 생각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과 이곳뿐이다. 어떻게 하면 영창에 가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체자리가 피우는 저 담배를 한 모금이라도 얻어 피울 수 있을까 등 일상에 만연해져버린 폭력에 저항할 생각조차 가지지 못하게 된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폭력에 저항하지 못하는 삶, 이것이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도 무서운 폭력임을 작가는 암시하고 있다.



(3) 문학과 사상 그리고 역사의 긴밀성

 아무리 그래도 이상하지 않은가? 알료쉬카가 단지 기도를 열심히 해서 수용소에 끌려갔다는게? 물론, 굴라크에 끌려간 사람들 중에서 억울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겠냐만, 슈호프나 추린이나 체자리의 경우는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이유다. 포로로 잡힌 병사는 무능의 극치를 보여주어 국가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산 증인이고, 부농의 자식은 고귀한 노동자들을 노예처럼 취급하던 악덕 부르주아의 후손이며, 불온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공산사회로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인물이다. 만약 당신이 당대 소련의 서기장 스탈린 휘하의 간부였다면 이러한 불순분자들을 축출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들을 굴라크로 보내어 사회를 '깨끗'하게 만드는 일이 목숨을 부지하는 일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기도를 열심히 하는 침례교 신자 알료쉬카를 잡아다 굴라크에 수감시켜버리는 것과 소련의 사회정화활동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오히려 독실한 신자를 잡아다 넣었으니 사회적 반발이 더 거세지 않았을까? 그러나, 당대 소련은 종교인들을 무참히 탄압했다. 이는 역사적 맥락과 긴밀한 관련이 있는 문제다.


 첫 번째로, 당대 소련의 정치체제인 사회주의와 종교는 어우러질 수 없는 관계였다. 맑시즘의 창안자 칼 맑스는 헤겔의 『법철학강요(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를 비판하기 위해 『헤겔법철학비판(Zur Kritik der Hegel’schen Rechtsphilosophie)』이란 논평을 내며 이런 글을 썼다고 전해진다.


[Das religiöse Elend ist in einem der Ausdruck des wirklichen Elendes und in einem die Protestation gegen das wirkliche Elend. Die Religion ist der Seufzer der bedrängten Kreatur, das Gemüth einer herzlosen Welt, wie sie der Geist geistloser Zustände ist. Sie ist das Opium des Volks. (독)]

[Religious suffering is, at one and the same time, the expression of real suffering and a protest against real suffering. Religion is the sigh of the oppressed creature, the heart of a heartless world, and the soul of soulless conditions. It is the opium of the people. (영)]

[종교적 고통은 현실적 고통에 대한 표현이면서 현실적 고통에 대한 항의이기도 하다. 종교는 억압받는 피조물들의 한숨이며, 무자비한 세상의 본질이며, 영혼 없는 상황의 핵심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유명한 구절이다. 맑스는 종교가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잊게해 진정한 해방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즉, 그에게 종교란 만성적인 구조적 폭력에서 일시적 위안을 찾게 해주는 아편과도 같은 존재이며, 혁명과 계급투쟁에 방해가 되는 요소에 불과했다. 그도 그럴 것이 종교는 항상 사랑과 평화를 외칠 뿐, 구조적 폭력에 저항하는 정신을 지양한다. 또한 내세에서의 구원을 강조하는 종교적 관점은 현세에서의 행동을 촉구하는 맑스의 생각과 결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맑스의 이념상을 답습하여 현실에 실현하고자 한 소련은 종교를 아편으로 취급하며 탄압하기 시작했고, 그 시작점이 바로 종교에 귀의한 사람들을 굴라크로 보내는 것이었다. 성직자들과 종교인들이 더이상 사회에서 전도를 하지 못하게 막는 동시에, 종교를 믿으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가 되는 훌륭한 방안이었다. '무신론을 통해서 공산주의로, 종교와의 전쟁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이라는 기치가 이때부터 소련에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런 이념이 소련 해체 전까지 이어지면서 정교회, 가톨릭, 개신교, 불교 등 가릴 것 없이 종교인들은 '공산국가'와의 투쟁에서 심각한 피해를 입게된다. (이는 맑시즘을 받아들인 공산권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중국의 문화대혁명에서도 성당이나 사원을 폭파하고, 성직자들의 재산을 몰수하기도 하였다.)


두 번째로 종교적 이유를 들 수 있다. 알료쉬카가 믿었던 종교는 '침례교'였다. 침례교는 종교개혁 이후 탄생한 개신교의 한 종파다. 미국과 서부 유럽에서 침례교 신자들이 많았는데, 당시 러시아 지역의 종교는 동로마제국부터 이어온 정교회였다. 정교회는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아시아, 동유럽, 중동 그리고 러시아에 종교적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는데 정작 한 뿌리를 가진 가톨릭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는 교황의 권한에 대한 문제와 필리오퀘 문제 등 성서에 대한 해석의 문제와 크게 맞닿아 있으나, 서로 간의 의견을 좁히지 못하자 1054년에는 상호 파문을 진행해 '동서 대분열'이 일어나게 된다.


 1964년이 되어서야 양대 교회가 화합하고 교회의 일치를 위해 노력해나가기 시작했는데, 소설이 나온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는 끝없는 대립이 지속되던 때였다. 가톨릭을 교회로서 인정하지 않는 정교회가 가톨릭의 부패를 문제로 삼아 새로운 종파를 창시한 침례교회를 인정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정교회가 보기에는 가톨릭이든 침례교든 똑같은 이단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알료쉬카는 대단히 특이한 인물이다. 러시아 내에서 침례교회를 독실하게 믿고 있으니 말이다. 소련 사람들이 성호를 잊은지 오래지만 이어져. 온 대립 감정만큼은 유지하던 터이기에, 침례교는 결코 환영받을 수 없는 손님이었다. 이러한 이유에 기인해 알료쉬카는 어떤 인물보다도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이유로 굴라크에 수감될 수밖에 없었다.

 



o) 서평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읽으면 뭔가 마음이 찡한 사람들이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그게 누구일 것 같은가? 현재 복역 중인 죄수?, 이미 복역을 마치고 재사회화의 과정을 마쳐 출소한 사람?, 항상 수용소에서 지내는 교도소 간수? 누굴 생각했을진 사람마다 모두 다르겠지만, 내가 봤을 땐 우리나라의 군인들, 특히 징병되어 군대에 왔던 일반 사병들이 제일 공감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현재의 대한민국 군인들은 이 책에서 나온 슈호프의 일상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진 않다. 노동수용소보다 훨씬 더 나은 공간에서, 복지혜택을 받으며 살고 있음은 분명하다. 매 끼니의 밥이 나오고, 월급도 주며(심지어 월급 인상이 매년 크게 이루어지고 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매일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여가 시간을 보장한다. 그러나 왜 공감한다는 걸까?

 

 답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바로 자유가 박탈된 경험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사회에서는 내 마음대로 모든 것을 진행했고, 그렇게 살았다. 먹고 싶은게 있으면 금전적 여유가 있는 한 사먹었으며, 친구를 만나고 싶으면 집 밖에 나가 만나 놀았고, 집에서 자고 싶으면 눈을 감고 편하게 잤다. 그러나 군대는 달랐다. 꼭 와야만 하는 곳이라 왔는데 밥 먹는 시간, 씻는 시간, 노는 시간 모두 통제 당했다. 자유를 빼앗긴 것이다.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말이다. 슈호프도 그랬다. 난데없이 잡혀와 막사에서 지내며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만 했다.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었다. 정해진 기간동안 이곳에서 노동을 하며 지낼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의지대로 군복무를 하는 사람들은 이에 해당이 되지 않지만, 국군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일반 사병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군복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중에는 군대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몰랐던 취미를 발견하며 자기계발을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오히려 적응하지 못하고 나가 떨어져 엄청난 우울감과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도 있다. 당연히 전자를 추구하기 위해 군대에서는 조직적인 차원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후자의 경우는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들에게 있어서 병역이란 국가라는 강력한 집단이 무기력한 개인에게 가하는 무자비한 폭력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징병제가 특수한 안보 상황 속에서 법으로 유지되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군대 내에서 극도의 우울감과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을 병자 취급하며 반항할 수 없는 구조적 폭력 속에 계속 노출시키는 것은 절대 옳지 않다. 구호의 손길이 필요한 것이다. 이 따뜻한 손길은 법적 해결만이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전반적인 사회적 관심과, 군인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더 좋은 해답이 될 수 있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읽은,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라면 현재 군복무를 하고 있는 지인들에게 고생하고 있다고 따뜻한 말 한 마디를 건네보는게 어떨까. 겉으로는 그들이 강인한 척을 할 수 있겠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도 위로의 한 마디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작가는 만성이 되버린 폭력에 저항할 생각조차 못하는 사람들을 이야기에 풀었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사회 속 구조적인 폭력이 어디에서 발생하는지 비판적으로 사고하여 알아차리고, 이러한 폭력에 더이상 굴복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슈호프는 행복하게 잠이 들었지만, 그 다음 날에도 행복할 거란 보장은 없다. 그가 만약 행복하더라도 수용소 밖에서의 진정한 자유를 얻고 생활하는 것에서 받는 행복보다 클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소설 속 이야기가 현실에서 재현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야한다. 누군가 이러한 폭력을 당한다면, 그 누군가가 당신이 아닐 보장이 없으니까. 크게는 사회에서, 좁게는 당신의 주변 사람들 중에서 제2, 제3의 슈호프가 생기지 않기 위해 부단하게 견문을 넓혀, 시야를 넓게 하는게 중요하다. 모두가 존엄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부당한 폭력을 당하지 않도록,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자.


"그저 한 그릇의 양배춧국이 지금의 그들에겐 자유보다, 지금까지의 전 생애보다 아니, 앞으로의 모든 삶보다도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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