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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cht Nov 21. 2023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도망칠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와 오이디푸스의 비극.


0. 서론

 소포클레스는 아테나이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둔 작가였다. 소포클레스는 기원전 495년에 출생하여 405년에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 당시 소포클레스만큼 장수한 사람은 흔치 않았다. 소포클레스는 약 120편에 달하는 작품을 썼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재에는 7편 밖에 남아 있지 않다. 이번 해설에선 최근 완역으로 발간된 <『오이디푸스왕 외, 장시은, 열린책들>을 바탕으로 그리스 아테나이에서 가장 성공한 작가 중 한 명으로 칭송받은 자인 소포클레스의 대표작 오이디푸스 왕과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안티고네를 차례로 다룰 것이며, 이번 글은 작중 시기 상 가장 첫 번째인 오이디푸스 왕을 살펴본다.



* 아래 링크에서 더 편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licht_98/223264694943




1. 등장인물 소개

- 1) 오이디푸스: 비극의 주인공, 스핑크스를 해치우고 테베의 왕위에 오른 자.

- 2) 이오카스테: 오이디푸스의 어머니이자 아내.

- 3) 라이오스: 오이디푸스의 아버지이자 테베의 원래 왕.

- 4) 안티고네, 이스메네: 오이디푸스의 딸.

- 5) 크레온: 이오카스테의 남동생. 즉, 오이디푸스의 외삼촌이자 처남.

- 6) 코린토스 왕, 왕비: 오이디푸스를 입양한 코린토스 지역의 왕가.

- 7) 테이레시아스: 눈먼 예언가.

- 8) 목자, 사자: 오이디푸스의 출생에 대한 비밀을 알려주는 자.



2. 『오이디푸스 왕 외』 줄거리  

- 1부. 『오이디푸스 왕』 - 오이디푸스의 비극.

: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는 아버지는 아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어머니는 아들과 결혼하여 자식을 두게 될 것이라는 델포이 신전의 신탁을 받는다. 이에 라이오스 왕은 신탁을 두려워하여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갓난아기의 발목에 못을 박아 산에 버리라고 부하에게 지시했다. 그러나, 그 부하는 갓난 아기를 죽이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테바이의 목자(하인)에게 아기를 맡기게 된다. 그 목동은 아기의 '부운 발'을 보고 오이디푸스라 이름을 지어줬다. 오이디푸스라는 말 자체가 '부풀어 오른(oideo) 발(pous)'인 의미였기 때문이다. 목자는 다른 나라의 목자(훗날 사자使者)에게 오이디푸스를 넘겼고, 그 목자는 코린토스의 왕에게 아기를 바쳐 오이디푸스는 코린토스 왕과 왕비를 친부모로 여기며 성장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오이디푸스가 자신에 관한 신탁을 구하고자 델포이(피토)에 간다. 한 잔치에서 어떤 남자가 만취해서 술김에 오이디푸스가 코린토스 왕의 자식이 아니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는 마음이 무거웠으나 그날에는 마음을 억누르고, 다음 날이 돼서야 코린토스 왕과 왕비에게 이 사실을 말한다. 코린토스 왕과 왕비는 이 말을 퍼뜨린 자에게 벌을 내렸다. 그러나 마음 한 켠이 찝찝했던 오이디푸스는 몰래 신탁을 받으러 향한다. 포이보스에게 자신에 관한 '사악한 신탁'을 듣게 된 오이디푸스는 패륜을 저지를 수 없다며 코린토스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신탁을 받고 혼란스러운 와중 돌아오는 길에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 왕의 일행과 좁은 길목에서 마주치게 된다. 라이오스 왕은 헤라의 저주로 인해 나타난 괴물인 스핑크스를 해결하기 위해 델포이의 신탁을 들으려 가는 길이었다. 조랑말이 끄는 사륜마차를 이끌고 가던 라이오스 일행은 오이디푸스를 강제로 길에서 몰아내려고 했다. 이에 오이디푸스는 화가 나서 마부를 때렸는데, 라이오스 왕이 오이스푸스의 정수리를 몰이 막대로 내리쳤다. 오이디푸스는 반격할 기세로 지팡이를 내리쳤고, 이때 라이오스 왕이 마차 가운데서 뒤로 굴러떨어져 사망하게 되었으며 남은 일행도 오이디푸스가 살해했다.


Joseph Blanc, The murder of Laïus by Oedipus, 1867, Paris

 

 이후 오이디푸스는 테베에 이르러 지나가는 이에게 이야기를 듣는다. 테베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스핑크스가 있는데, 테베의 왕비인 이오카스테가 스핑크스를 죽인 용사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그의 아내가 되겠다는 이야기였다. 이를 듣고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를 찾아가 수수께끼를 모두 풀어내었고, 스핑크스가 수치심에 절벽에서 뛰어내리게 만든다. 오이디푸스는 이렇게 스핑크스를 처치하여 이오카스테의 약속대로 테베의 왕으로 추대되어 어질고 지혜로운 통치로 테베를 번영하게 만든다. 이때 이오카스테는 아름다운 젊음을 계속 유지하게 만들어준다는 하르모니아의 목걸이를 차고 있었기 때문에 오이디푸스는 전혀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임을 알지 못했고,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는 4남매를 낳게 된다.


 그런데 번영하던 테베에 갑자기 역병이 돌기 시작했다. 오이디푸스는 이오카스테의 오빠인 크레온을 보내 신탁을 듣는데, "라이오스 왕의 살해범이 테베를 떠나지 않는 한 역병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란 예언을 듣는다. 이에 오이디푸스 왕은 범인에 대한 저주를 퍼부은 뒤, 유명 예언자인 테이레시아스를 모셔와 색출에 나선다. 그런데 테이레시아스는 "현명함이 유익하지 않은 이곳으로 오는 게 아니었는데"라고 말하며 예언을 말하기를 회피한다. 오이디푸스 왕은 영문을 모른 채 테이레시아스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내며 예언의 내용을 실토할 것을 요구하나 테이레시아스는 수수께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채 떠난다. 오이디푸스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크레온이 자신의 왕위를 탈취하려고 벌이는 일이라 오해하기에 이른다



테이레시아스(작중 대사)

자신이 자식들의 형제이자 아버지이며

자신을 낳은 여인의 아들이자 남편이고,

자기 아버지와 함께 씨 뿌린 자이며, 살인자임이

자신과 함께 사는 모든 이들에게 드러나게 될 것이오.


 

 얼마 지나지 않아 코린토스에서 사자(使者)가 도착했다. 사자는 코린토스의 왕이 노환으로 서거하여 오이디푸스가 코린토스 왕이 되었음을 알리러 온 것이었다. 그런데, 오이디푸스는 코린토스로 돌아가길 꺼려 했다. 신탁이 이루어질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사자는 오이디푸스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두려워" 하고 있다며 오이디푸스가 혈통상 코린토스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밝힌다. 사자인 자신이 오이디푸스를 코린토스 왕에게 선물로 바쳤다는 말을 건네면서 말이다. 오이디푸스는 사자에게 "다른 손에서 얻으시고도 나를 그토록 사랑한 이유"를 묻는다. 사자는 코린토스 왕이 "이전에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오이디푸스는 마지막으로 사자에게 갓난 아기였던 자신을 건네준 사람이 누군지 밝혀내고자 한다. 사자는 라이오스 부하 중 자신을 거둬들인 목자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를 불러들인다.


 이때 이오카스테는 오이디푸스의 정체를 먼저 깨닫고 그에게 이 사건을 더 조사하지 말 것을 부탁한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반드시 진실을 알아야겠다며 물러서지 않는다. 이오카스테는 참담한 비극을 예견하듯 궁전으로 들어가 버린다. 라이오스의 부하에게 아기를 받았던 목자 역시도 오이디푸스의 정체를 깨닫고 '파멸로 이끌 진실'을 대답하길 꺼려 하나 오이디푸스는 말할 것을 강권한다. 이렇게 그가 원했던 진실이 밝혀지자, 오이디푸스는 "태어나선 안 될 이들에게서 태어나, 섞여선 안 될 이들과 함께하고, 죽여선 안 되는 이들을 죽인 자가 나라는 게 드러났다"고 외치며 궁전으로 들어간다.


  궁전에 들어갔다 나온 전령은 가장 끔찍한 광경을 보았다며 궁전에서 일어난 일을 말해준다. 이오카스테는 올가미에 목을 매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오이디푸스는 이를 보고 무섭게 울부짖으며 걸려 있던 밧줄을 푼 뒤, 이오카스테의 옷을 고정하던 황금 브로치로 자신의 눈을 찔렀다고 말이다. 오이디푸스는 크레온에게 아버지를 살해한 불경한 자신을 이 땅에서 쫓아내라고 부탁한다. 테바이의 왕위를 이어받게 된 크레온은 오이디푸스의 부탁을 받아들이면서, 두 딸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가 등장한 후 극은 막을 내린다.  



3. 서평 및 해설 - <장시은 역, 열린책들> 작품 해설 참고.


소포클레스는 플롯을 치밀하고 복잡하게 구성하고, 대립과 대조를 부각하는 복합적인 대화 장면을 탄생시켰다. 그는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성격을 깊이 탐구하고 드러내면서 극적 아이러니, 어휘의 중의적 의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오이디푸스 왕』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찬사를 받은 작품으로 유명하다. <시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발견과 반전을 비극 구성의 두 요소로 뽑는데, 발견은 모르고 있던 진실을 깨닫는 것을, 반전은 사건의 진행이 반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두 요소가 가장 탁월한 작품으로 간주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오이디푸스 왕에서 오이디푸스가 자신이 집요하게 쫓던, 라이오스의 살해자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었음을 발견하는 장면이라고 설명한다.         


『오이디푸스 왕』의 그리스어 제목은 <오이디푸스 티라노스(Tyrannos)>이다. 왕으로 번역되는 티라노스는 오이디푸스가 왕위를 혈통으로 승계한 것이 아니라 왕으로 추대된 것임을 알려 준다.           


소포클레스는 당시 널리 알려진 테바이의 신화인 오이디푸스 설화를 극화하면서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는 과정을 일종의 수사극 형식으로 보여준다. 특히, 아폴로의 신탁과 테이레시아스의 개입, 코린토스의 전령과 하인의 등장은 소포클레스가 창조한 부분으로 판단된다고 한다. 비극적 긴장감을 더해주는 서사적 장치를 창조해낸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사건을 더 추적하는 것이 자신을 파멸시킬 것임을 알면서도 진실을 알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건이 밝혀진 뒤, 그 운명의 희생자로 주저앉지 않는다. 스스로 두 눈을 찌름으로써 자기 자신을 처벌하며 운명을 직접 결정한다.          


오이디푸스는 헛똑똑이에 불과한 인간의 무지에 대한 질타로 해석될 수 있다. 오이디푸스는 <어려서는 네 발, 커서는 두 발, 늙어서는 세 발을 가지는 짐승이 무엇이냐>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탁월하게 풀어내지만,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오이디푸스라는 이름 자체가 정체성을 암시하는 표현임에도 말이다. 그래서 오이디푸스가 두 눈을 뽑고 스스로 장님이 되는 것은 인식의 한계, 감각에 의존한 판단의 한계를 직접적으로 의미한다. 스스로를 알지 못한 죄책감에 대한 자기 징벌인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사람이 정작 자신에 관해서는 무지하나, 앞을 못 보는 예언자는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본다는 아이러니가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자기실현적 예언 개념이 활용되고 있다. 즉,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예언을 피하기 위해 길을 떠났지만, 오히려 이 길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게 되고, 자신의 고향인 테바이로 떠나게 되며, 왕위에 올라 어머니와 결혼을 하게 된다.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아이러니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기원전 430년 경에 극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소포클레스의 시점 활용과 플롯 구성, 등장인물 간의 갈등, 어휘 활용은 이후 문학의 발달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소포클레스의 작품에서 활용된 아이러니 개념은 소설 구성의 가장 기초적인 요소가 되었지만, 여전히 활용하기엔 어려운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오이디푸스가 이러한 비극적인 운명을 맞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가 어째서 이러한 신탁의 주인공이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알기 위해선 동 시기의 다른 작품을 참고해야 한다. 어떤 일화에 따르면, 라이오스가 왕이 되기 이전에 벌인 잘못된 행각 때문이라는 설이 있으나, 그렇다면 라이오스 왕에게만 그 책임이 돌아가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 아들인 오이디푸스가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그 자식들까지 연좌제처럼 고통받는다. 과한 책임을 오이디푸스에게 돌리고 있으니 어쩌면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라이오스는 결국 죽어 지옥에 갔지만, 오이디푸스는 자신도 모른 채 벌인 행각 때문에 죽지도 못하고 생지옥을 맞보는 것이니 말이다.           


가장 품격 있는 명성을 떨쳤고, 가장 강력한 권위를 가졌으나 상황이 바뀌어 죽어 마땅한 자로 전락하는 『오이디푸스 왕』의 서사는 독자에게 아찔함과 몰입감을 선사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간적 서사를 치밀하게 다루는 문학적 능력과 함께 반전에 대한 풍부한 이해가 있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놀라운 작품이다.          



4. 명언, 좋은 말

사제: 필멸의 인간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분(오이디푸스)이시여, 도시를 바로 세워 주소서. 이 땅은 이제 그대를 구원자로 부르고 있으니. 당신의 통치에 의해 우리가 바로 섰다가 나중에 넘어졌노라고 결코 기억하지 않게 하소서. 이 도시를 견고하게 세워 주소서. 그대는 이전에 상서로운 전조로서 행운을 가졌다 주셨으니, 지금도 그때와 같은 분이 되어 주소서.          


오이디푸스: 모든 것을 수수께끼처럼 너무 모호하게 말하는구나.          

테이레시아스: 그런 걸 밝혀내는 데는 그대가 가장 뛰어나지 않은가?          


오이디푸스: 누군가 몰래 계략을 세우며 빠르게 다가오고 있을 때면, 나도 이에 맞서 빠르게 계획을 세워야만 하오. 가만히 앉아 기다린다면, 그자의 일은 실행되고, 나의 일은 빗나갈 것이오.          


이오카스테: 이 딱한 사람들, 왜 이런 생각 없는 혀의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까? 이 땅이 이렇게 병들어 있는데 사사로운 분쟁을 일으키다니 부끄럽지 않으십니까?          


이오카스테: 인간이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나요? 우연한 일이 지배하고, 어떤 예견도 분명하지 않은데. 계획 없이 가능한 대로 사는 것이 최선이에요. (중략)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이가 삶을 쉽게 견디는 법이에요.         


전령: 그 불행한 여인(이오카스테)은 남편에게서 남편을, 자식에게서 자식을 낳은 이중의 침대에 대해 애곡하셨습니다.          


전령: 피의 검은 비가 소나기처럼 쏟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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