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팀을 잘 꾸려나가기 위해선

나의 일부를 좋아한다고 해도, 나라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변치 않으니까

by 모래


2만 개가 넘는 받은 메일함을 몇 년간 방치해 두다가(메일 개수의 8할이 광고 메일이나 스팸이었다.) 뒤늦게 정리의 필요를 깨닫고 메일함 정리에 돌입한 지 일주일째. 우연히 중학교 1학년 시절 나의 담임 선생님에게 받았던 메일을 발견하게 되었다.


선생님의 답장을 보면서 내가 대체 무슨 내용을 보냈던 건지 궁금한 마음 반, 마치 열어서는 안 되는 판도라 상자를 여는 듯한 두려움 반의 마음으로 [이 사람과 주고받은 메일]을 클릭했다.



담임 선생님은 다른 방학 숙제와 더불어 방학 중 1번 이상, 선생님에게 안부 메일을 보내는 것을 숙제로 내주셨다. 너무 형식적으로 메일을 쓰지는 않았을까 라는 걱정과 달리, 클릭해 본 메일 속 나는 꽤나 진지하게 당시의 고민들을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내가 보냈던 메일의 전문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대략적으로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그 당시 우리 반은 성적을 절반으로 나눠 상위 절반은 멘토, 하위 절반은 멘티라는 이름으로 멘토-멘티제를 운영했었는데, 운이 좋게도(?) 멘토 그룹 안에 속해있던 내가 기말고사에서 변변치 않은 성적을 받게 되자, 과연 내가 나의 멘티에게 멘토로서 공부를 가르쳐줄 자격이 있는지에 고민하고 있다는 것.


그러면서 지금의 나는 과대 포장이 된 것 같다며, 가끔은 친구들에게 진짜 내 모습을 들킬까 두렵다고 나의 마음을 줄줄 고백하고 있었다.



지금 봐도 진지한 나의 고민에 선생님은 이런 답장을 보내주셨다.


근데, 과대 포장된 너는 뭐냐?
실제 알맹이는 어떤 건데?ㅎㅎ
뭐가 실제 모습이고, 뭘 들키면 실망할까 미안한 건지 되게 궁금하네..
근데, 들켜도 괜찮을 거 같고, 별로 실망할 거 같지 않아.
좀 더 자신감을 가져. 뭘 어떻게 포장했는지 몰라도 그 포장도 네 모습이야. 포장 잘한 것도 네 능력이고.


당시에는 선생님에게 답장이 올 줄 모르고 일기장처럼 적어 내려간 메일 내용이 부끄럽게만 느껴졌는데, 10여 년이 지난 후 다시 펼친 선생님의 답장 속에서 몇 가지 생각들이 이어졌다.





학창 시절 나는 인정 욕구가 굉장히 강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언제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지금 생각한다면 결코 이룰 수 없는) 욕망에 둘러 쌓여 있었을 뿐만 아니라,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큰 두려움을 느꼈다. 남들의 거절이, 내 존재 가치에 대한 부정처럼 느끼곤 했으니까.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아 내 나름대로의 방어기제로 선택한 건, 상황마다 다른 페르소나를 꺼내어 놓는 일이었다. 대외적으로 좋은 사람으로 비추어지길 원한 나는 이 사람에겐 이 사람이 좋아할 만한 포장지를, 저 사람에겐 다른 포장지를 골라 나를 둘둘 감쌌다.



이런 방법은 남들의 호감을 사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법이었지만,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진짜 나를 보여줘도 이 사람들이 내게 호감을 보일까?' 하는 찝찝한 마음이 늘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내가 지속적으로 깊은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사람들을 만날 때면, 일부러 나의 미운 모습들을 꺼냈다. '이것 봐! 이래도 나를 계속 좋아해 줄 거야?'라고 외치면서. 그 모습 뒤편으로는 '이런 나여도 네가 내 곁에 남아줬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을 숨긴 채 말이다.


돌이켜 보면 참 이기적이지 않았나 싶다. 아무런 깜빡이도 없이 갑자기 급발진하는 나를 바라보며 상대가 느꼈을 당혹감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오랜 친구와 대화를 하다 우연히 선생님께 받은 메일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친구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며 선생님의 답장을 보여주었고, 메일을 한참 바라보던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근데 나도야. 진짜 너를 알아도 실망하지 않을 거 같아.


그러면서 덧붙이던 말,

-알잖아, 생각보다 남들은 나에게 관심 없어~



10여 년도 더 지난 선생님의 메일과, 친구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두려움을 느꼈던 지점을 똑바로 마주하게 된 기분이다.


나는 왜 관계 맺음에 있어, 내 전부를 보여줘야만 한다고 생각했을까? 나를 둘러싼 포장지 역시 나의 일부인데, 왜 일부가 아닌 전체로써 받아들여야지만 진정으로 내가 인정받았다고 생각했던 걸까. 어쩌면 이건 나의 '자의식 과잉'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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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유투브 고막메이트


과거에 '팀 정세운'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영상을 인상 깊게 본 적이 있다. 각 팀마다 메인 보컬, 메인 래퍼, 혹은 예능 담당, 비주얼 담당의 멤버들이 나눠져 있듯이, 본인 역시 출연하는 프로그램에 가장 적합한 멤버로 본인 자신을 바꿔 끼워서 나온다는 이야기였는데, 나는 그게 참 건강한 마인드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이돌 팀 그룹에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나는 아무리 다인원 그룹일지라도 한 번 좋아하게 되면 애정의 깊이는 저마다 다를지 몰라도 해당 그룹 내 모든 멤버를 좋아하게 되는, 일명 올팬 기조가 강한 팬이 됐다. 내가 처음 관심을 가졌던 멤버와의 관계성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팀 내 다른 멤버들까지도 내 마음속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난날 나는 이미 이 방법을 ‘나’라는 팀에 적용하고 있었던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마다 '입덕 포인트' 불리는, 그들이 좋아하는 나의 모습이 모두 다를 수가 있으니 그때마다 그 포인트를 중심으로 나를 소개하며 인연을 이어가는 방법 말이다.


유구한 나의 덕질 역사를 비추어보았을 때 내가 좋아하는 그룹에 친구를 입덕 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친구가 그나마 관심을 보이는 멤버를 중심으로 공략하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이 팀에는 A, B, C, D, E라는 멤버들이 있는데 모두 좋아해 줘!'하고 무자비하게 관련 정보를 쏟아내는 건, 입덕은커녕 비호감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라도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무작정 나의 전부를 끄집어내며 나를 좋아해 달라고 말하기보다는 상대가 좋아하는 모습인 나의 모습부터 천천히 꺼내어 보여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같은 시대에 한 사람을 하나의 모습으로 규정한다는 것도 웃기지 않나. 나라는 사람에게는 A와 같은 모습도, Z와 같은 모습도 있는 건데. 나의 A면모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A의 모습을 더 보여주면서 관계를 지속시킬 수도 있다는 걸, 아직도 자주 잊는다.



게다가 이 인생이라는 소속사에서 '나'라는 팀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정해진 계약 만료 날짜가 없는 종신계약 상태다! 우리 팀을 잘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건강한 나의 마음가짐을 기르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해당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된 글입니다.

[Opinion] 나라는 팀을 잘 꾸려나가기 위해선 [사람] – 아트인사이트 (art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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