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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 Jan 04. 2023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

도서, <글리프 6호 김초엽 > (M.D.LAB PRESS, 2022)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끝까지 차오르는  벅찬 감정을 어떻게 정제된 언어로  나타낼  있을지. 남들에게 이런 나의 마음을 논리 정연하고 일목요연하게 말하고 싶은데,  나아가 상대도 내가 좋아하는 이것을 아껴줬으면 하는 영업 욕심까지 들지만... 결국 내가 내뱉게 되는 문장은 이렇다.


"너 이번에 나온 김초엽 소설 읽어봤어? 걍 미쳤음... 진심 대박임..."


김초엽 작가를 좋아한다. 매주 순서를 정해 돌아가면서 한 권의 책과 화두로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모임(을 가장한 친목도모회)을 친한 친구들과 이어온 지도 이번 주차로 벌써 68번째이다. 그중에서 SF소설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40%이다. 독서 모임에서 딱히 장르를 정해놓은 것이 아닌데도 그렇다. 우리가 SF를 자주 찾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김초엽이었다.


이 도서는 그동안 우리가 왜 김초엽 작가의 소설에 자주 손이 갔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는지, 내가 매번 ‘대박’과 ‘짱’이라는 말로 뭉뚱그렸던 이유를 선명한 문장으로 대변해 준다.



사회 여러 분야에서 강요되고 있지만 진입은 더욱 어려워진 어떤 ‘정상’의 기준에서, 어딘가에선 필연적으로 ‘비정상’으로 불릴 수밖에 없는 세대. 우리는 김초엽의 세계 안에서만큼은 안전하게 위로를 받을 수 있게 된다.

(혐오 끝의 온실 김초엽의 소설들, p.18)



도서가 풀어낸 이야기들 읽으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단어는 단연코 ‘정상성’이었다. ‘정상성’이라는 묘한 기시감이 드는 단어 속에서, 정상이라는 범주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회가 규정해 놓은 어렴풋한 정상의 궤도 안에 진입하기 위해 애쓰던 날들.  


간혹 가다 그 궤도를 이탈한 것만 같을 때면 나는 그때마다 드넓고도 깜깜한 우주를 홀로 떠도는, 발사에 실패해 조각나버린 파편 중 하나가 되어버린 기분에 자주 사로잡혔다.



김초엽의 비표준 캐릭터는 소설 속 정상성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고유한 경험을 기반으로 선택하고 나아간다.

(...) 표준 캐릭터는 처음엔 자신의 기대와 다른 선택을 하는 상대를 이해하지 못한다. 또, 정상성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일이 두려워 비표준의 선택을 환영하지 못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늦더라도 비표준의 캐릭터의 선택을 이해해보기 위해 이전에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던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로써 소설 속 정상성이라는 프레임에 균열이 생긴다.

(...) 결국 김초엽 이야기에서 중요한 문제는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가 아닌, '정상성이 무용해지는 순간은 어떻게 가능한가'인 것이다.


(김초엽의 윤리적 상상력 : 정상성 흔들기, p.28)



그럴 때마다 나는 그녀의 소설을 읽었다. 그녀가 만든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세계에 일단 진입하게 되면, 나는 더 이상 ‘정상’과 ‘비정상’의 이분법적인 범주 안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만든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세계 속의 작은 틈에서 시작된 정상성의 균열은, 글을 읽는 우리에게 되려 안전한 위로를 건넨다. 그렇게 허물어진 경계는 나와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이어진다. 김초엽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마다 비릿한 쇠맛의 끝에서 유난히 따뜻함을 느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아카이빙 작업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기획하고 출판하는 엠디랩프레스에서 펼쳐낸 이번 <글리프> 6, 김초엽 [실험] 편은 일종의 ‘작가 덕질 아카이빙 잡지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 그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어지게 하는 것처럼, 해당 도서는 본인들의 시선이 담긴 글뿐만 아니라 그녀를 향한 정제되지 않은 팬심의 편지부터 지금까지 작가가 걸어온 발자취들을 모아 한데 엮어 발행하였다.  



이 도서는 김초엽 작가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는 아주 친절한 입문서가 되기도, 이미 그녀를 열렬히 사모하는 팬들에게는 함께 제공되는 <모의덕력평가 : 초엽영역>을 통해 다시 한번 작품과 본인의 덕력을 곱씹게 해주는 재미난 핸디북이 되어줄 것이다.  





해당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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