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실종법칙>
유진이 실종됐다. 유진이 핸드폰을 꺼두고 행방불명이 된 지도 24시간째. 유진은 과연 어디로 사라진 걸까?
연극 <실종법칙>은 유진의 언니, 유영이 유진의 실종에 유진의 오래된 남자친구였던 민우를 의심하며 그의 자취방을 찾으면서 시작된다. 극의 배경이 되는 민우의 반지하 방에서 그들은 서로가 기억하는 유진의 기억을 쏟아낸다. 이렇게 '유진'이라는 인물을 통해 연결된 두 사람은 극의 시작부터 끝을 가득 채운다.
유영은 민우를 강하게 의심한다. 반지하에서 살고 있는 민우는, 유영의 언어를 빌려 말하자면, '실패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영의 언어는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유진과 민우 사이의 제3자인 유영은 민우에게 '대기업에 다니던 자신의 동생(유진)이 민우의 방을 치워줬다'는 사실을 그의 앞에서 들먹이며, '(대기업에 다니는) 내 동생의 방을 (백수인) 민우가 치워주어도 모자랐을 판'이라며 민우를 향한 멸시를 감추지 않는다.
그리고 유영의 멸시에 힘을 실어주는 건, 민우의 자취방이다. 유영의 말을 통해 바라보게 되는 민우의 모습은 '반지하'라는 공간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민우의 방은 곰팡이가 쉽게 피며, 외부의 소음에 쉽게 노출되는 곳. 세를 저렴하게 받는 대신 주인집 의자를 창고처럼 따로 보관해 두어야 하는 곳이다. 민우의 공간은 유영, 그리고 어쩌면 극을 바라보고 있는 관객들에게도 외형만으로 민우를 쉽게 판단하게끔 만들어 버린다. 그곳이 설령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지 않기 위해 민우가 택할 수밖에 없었던 최후의 공간일지라도.
반지하라는 공간은 민우의 사회적 약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면서, 어쩌면 유진의 실종에 민우가 개입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의 씨앗을 뿌린다.
실종의 배후로 민우를 의심하던 극의 분위기가 묘하게 흔들리던 건, 유영이 유진에 대한 기억을 늘어놓기 시작하면서다. 유영과 유진, 유영과 민우의 언어를 통해 짐작하게 되는 두 자매 사이의 묘한 긴장감. 그리고 과거 유진이 민우에게 털어놓았던 유영의 이야기가 민우의 목소리로 유영에게 닿자, 과한 반응을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단번에 그녀를 의심스러운 용의자 선상 위에 올려놓는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으려던 나의 생각과는 달리 도리어 유진의 실종사건은 점점 미궁에 빠지고 그 종적을 감춘다. 그리고 극의 마지막에서야 밝혀지는 진실은 관객들에게 '미스터리 추리극' 이름에 걸맞은 반전을 선사한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다 보면, 극에서 누구보다 많은 빈도로 언급되지만 얼굴은 알지 못하는 유진이 궁금해진다. 유진은 어떤 사람일까? 유진은 유영과 민우의 기억 중 어느 곳에 더 가까운 사람일까? 극 내내 두 사람이 끊임없이 발설하는 유진과의 에피소드는 관객을 혼란 속에 빠트린다.
법칙 (法則)
1. 반드시 지켜야만 규범.
2. 연산(演算)의 규칙.
3. 모든 사물과 현상의 원인과 결과 사이에 내재하는 보편적ㆍ필연적인 불변의 관계.
유진의 실종에는 유영과 민우만의 법칙이 있다. 각자의 주장은 '본인이 아는' 유진의 모습에서 비롯된다. 내가 아는 유진은 이러했으니, 결론적으로 네가 의심스럽다는 것. 유진의 실종을 둘러싼 서로의 실종법칙은 각자의 믿음으로 견고하게 쌓아 올려진다. 그것이 어쩌면 거짓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본인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내가 아는 유진의 모습‘을 계속해서 끄집어 올리는 것으로 감추어 낸다.
극은 결말은 우리가 세웠던 실종법칙들을 산산이 부수어 놓는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무언가는 정말 진실일까? 앎이라는 손쉬운 판단과 오만 속에서 영원히 실종상태로 묻힐 이야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연극, <실종법칙>이었다.
해당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