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차 회사원의 분투기_Prologue
#마음만큼은 스물다섯
2017년 무더운 여름에 입사하여 어느덧 7년 차 회사원이 되었다. 신입사원으로 고군분투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이렇게나 흘러간 게 믿기지가 않는다. 아직 마음만큼은 스물다섯인데.
스물네 살에 입사 후 서른이 된 지금 시점에 회고해 보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직도 하고 새로운 업무도 하고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지만 늘 한결같은 공통분모는 항상 일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에게 어떤 배움을 안겨주는지 어떤 자산이 되어줄지에 의의를 뒀다. 일을 통해서 알게 되는 개념과 지식은 나의 자산이고 현업을 통해 얻게 되는 경험은 나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했기에 금전적인 대가를 넘어서 이 일이 내게 어떤 무기를 장착해 줄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조급했던 마음
스물네 살에 칼졸업 후 쉼 없이 계속 달려오기만 했다. 그때는 남들보다 앞서고 싶었다. 한 살이라도 더 어렸을 때 무언가를 빨리 해내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의욕이 넘쳤고 욕심도 많았고 다양하고 많은 경험들을 하고 싶었고 하는 일에서는 잘하고 싶은데 늘 마음 한편에는 조급함이 있었다.
지금 뒤돌아보면 조급해할 이유가 없었는데. 그 나이에 그때에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해 보면서 그 시간을 온전히 음미하면 됐을 텐데 그 당시의 나는 현재를 온전히 음미하면서 살아가는 게 아닌 미래를 살아가고 있었다.
#새로운 Phase
태어나기만 한국에서 태어났지 삶의 2/3를 해외에서 거주했기에 한국땅을 20년 만에 다시 밟게 된 계기는 대학 진학 때문이었다. 외국인도 아니고 토종 한국인도 아닌 그 애매한 중간 지점 사이에 걸쳐있는 존재로서 겪은 이야기가 많지만 인생에서 대학이 주는 영향력보다 사회에서 주는 파급력이 훨씬 강력하다. 직장 생활은 다른 차원의 화력을 가진 곳이다. 대학생활은 순한 맛이라면 직장생활은 매운맛이다.
필자의 경우 보수적인 제조업 회사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위계질서 상명하복 예의범절을 강조했던 곳이라 갓 대학에서 졸업한 신입한테 군기라곤 보이지도 않았기에 더 고단했던 것 같다. 인간관계로 인해 울기도 많이 울었고 러닝 커브가 빠른 편이 아니라 업무적으로도 애로사항이 많았다.
참 고달팠다. 회사에서 깨지고 짓밟히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중간만 하자'라는 마음과 '눈에만 띄지 말자'라는 마음을 한 때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실수도 많이 하고 욕도 많이 먹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시행착오 통해 하나씩 습득하게 되니 언제부턴가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주도하면서 서서히 인정받기 시작했다. 인정을 받기 시작하니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밤을 지새우면서 스펙 맞추고 견적 작성을 마무리 했었다.
#순두부처럼 부들부들했지만 단단해지다
호기심도 풍부해 항상 질문이 많았고 생각과 의견을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편인데 보수적인 제조 회사에서의 적응기는 너무 힘들었지만 버티다 보니 단단해져 있었다.
결코 나의 경험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는 견디지 못할 만큼의 힘든 순간이라면 피하는 게 상책이 될 수 있다. 각자가 겪는 고통의 강도는 다 다르기 때문이니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고 필자가 갖고 있는 마인드를 조심스레 공유한다면, 서럽고 지치더라도 이 순간의 '끝'을 보지 못한다면 이보다 더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중도포기자 혹은 회피자로 기억되는 순간을 만들고 싶지 않아 끝을 기다리고 있는 게 최악일지언정 이 과정의 '끝'을 보자는 마음이 있었다.
#최악을 생각했는데
그러나 지금껏 살아오면서 생각보다 걱정했던 게 상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인간은 항상 최악을 생각하기 때문인지 상상했던 최악의 케이스가 생각보다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권고사직
사원이었을 때 제품 오더를 잘못 넣어서 오생산 되어 몇천만 원의 손실을 일으킨 적이 있다. 나의 실수로 회사한테 손해 끼친 것이 너무 힘들었고 두려웠고 자책도 많이 했다. 최악의 케이스로는 권고사직 당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결국 라벨갈이 해서 타 고객사로 전용하고 전용이 안 되는 것들은 추가 할인 적용해서 판매하는 것으로 일단락 됐다. 5년 전 일인데 그때의 일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오생산된 322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는 인생에서 잊지 못할 lesson learned였다. 그러나 약이 되었던 경험이었다. 나 자신이 믿을 존재가 안되어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꼼꼼함이 그때 그 경험을 통해 생긴 것이다.
#앞으로의 연재: 실무, 조직생활, 인간관계
서른이 되어 쉼 없이 달려온 7년 차 전기차 배터리 해외영업 및 PM 직군의 직장인으로서 그동안에 실무와 조직생활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배웠던 것을 차례대로 정리해보려 한다. 앞으로 연재하는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