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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Apr 04. 2021

집사의 첫 마음고생

사랑아, 잘이겨내주어서고마워!

집사


"뭐?! 중성화 수술하고 갑자기 쇼크로 죽었다고?!"

"응. 우리 집 앞에 동물병원에서 그런 사고가 있었대. 너도 사랑이 중성화 수술 잘 알아보고 해"


사랑이 중성화 수술을 해야 될 때가 되어, 수술을 결심한 나. 

중성화 수술에 대한 필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중성화 수술을 해야 한 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랑이에게 첫 발정이 왔을 때부터 매일 틈틈이 인터넷 블로그며 카페를 뒤졌다. 

하나하나 검색을 하고 댓글을 달고, 동물병원에 전화를 해가며 수술을 할 동물병원을 물색했다.

 

암컷은 수컷과 달리 개복 수술로 진행된다. 

따라서 수술이 더 복잡하고 위험할 수 있기에 최대한 잘하는 병원을 찾아 제대로 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디서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친구와의 통화 중 충격적인 정보를 접하고 만 것이다. 


'수술은 잘했는데, 끝나고 이틀 후에 고양이 별로 가버렸다고?' 


친구가 알려준 무시무시한 이야기는 내게 엄청난 걱정으로 돌아왔다.

가뜩이나 고양이 카페나 블로그에서 수술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고생하는 케이스들도 많이 보았다.

죄책감과 분노가 느껴지는 집사님들의 글을 읽으면서 정말 안쓰럽고 마음이 안 좋았었다. 


당연히 수술이 잘 되었다는 집사님들의 글도 많았지만, 

왜 나는 잘못된 수술 후기만 눈에 들어오는지. 너무 겁이 나고, 두려웠다. 


 혹시 사랑이가 수술이 잘 되지 않는다면? 

 만약 수술을 하다가 갑자기 깨어나버리면 어떡하지? 혹은 마취에서 안 깨면 어떡하지?

 봉합을 제대로 안 해서 그 부위가 괴사 한 경우도 있잖아. 아악! 정말!!


정말 걱정이 걱정을 낳고, 불안이 불안을 낳았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하지만 중성화 수술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손품을 팔고 팔아서 찾은 동물병원들을 추린 뒤, 추려낸 모든 동물병원에 전화 상담을 했다.

그리고 결국 하나의 병원으로 결정을 하게 되었다. 


중성화 수술로 이런저런 질문을 해대니, 귀찮다는 식의 말투로 응대를 하는 동물병원도 있었다.

그래서 괜히 '나, 너무 진상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모든 집사의 마음은 나와 같지 않을까? 우리 고양이, 최대한 안전하게! 최대한 안 아프게!



대망의 중성화 수술 날.


최대한 이른 시간으로 중성화 수술을 예약해두었다. 

수술 시 마취를 하기 때문에, 12시간 전부터 금식이었다.

힘이 없을 법도 한데, 우리 사랑이는 병원에 가기 직전까지 팔팔 온 집을 뛰어다녔다. 


하지만 동물 병원에 도착하여 의사 선생님을 만나자마자 사랑이의 기분이 급격히 저하됐다.

의사 선생님과 수술 상담을 할 때도 케이지안에서 잔뜩 움츠리고 으르렁댔다.

그리고 수술 전 준비를 하기 위해 넥카라를 씌우려 하자 곧바로 하악질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버렸다. 뭔가, 사랑이에게 미움받을 것 같아서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사랑이의 표정에서부터 분노가 지글지글 느껴졌달까. 그 분노로 주변의 온도가 올라가는 듯했다. 


"의사 선생님! 저, 사랑이가 조금 성격이 욱해서 물거나 괴성을 지를 수도 있어요..."

"많이 물려봐서 괜찮습니다! 아이들도 무서우니 그런 거지요! 허허허~"

"그렇군요! 하지만 조금 많이 까칠할 수 있으니 조심하시길요."

"까칠한 공주님이군요! 알겠습니다. 저희는 걱정 마세요. 허허허~"

"네! 그리고 우리 사랑이 수술 잘 부탁드립니다!! 마취부터 봉합까지 잘 부탁드려요!"


그렇게 사랑이는 수액 처치를 하러 의사 선생님께 안겨 처치실로 들어갔다.


유유히 문 뒤로 사라지는 의사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니 뭔가 너무 슬펐다.

질병으로 인해 수술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다들 하는 중성화 수술을 하는 것뿐인데 

난 왜 이렇게 주책맞은 지. 마음이 아파왔다.


수액 바늘이 꼽힐 때 너무 아파하지 않을지, 주사도 싫어하는데 바늘은 얼마나 싫어할지. 

낯선 공간에서 얼마나 긴장하고 나를 찾지는 않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하지만 마음 아픈 일은 훨씬 더 많이 남아있었다.

수액 처치는 2시간 정도 이루어졌다.


충분히 수액을 맞고 본격적인 수술에 들어가기 전, 

병원에서 잠시 사랑이를 볼 수 있는데 보러 올 건지 연락이 왔다.

나는 연락을 받자마자 부리나케 병원 처치실로 뛰어갔고, 

잔뜩 웅크리고 있는 사랑이를 만날 수 있었다.


몸무게가 2.57kg밖에 안돼서 속상했고, 그 와중에 '다가갈 때 조심히'라는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아이고, 사랑아..."


얼마나 무서울까 상상도 안됐다. 

사람이라면 의사소통이 되니, 지금 어떤 상황이고 내게 뭘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있을 텐데,

사랑이는 고양이인지라 더 두렵고 긴장될 것이다.


왜 갑자기 언니가 사라졌는지, 왜 내 다리에 아픈 걸 찔러 넣었는지, 여기는 어딘지,

왜 낯선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지 전혀 모를 테니까.


그렇게 잠깐 사랑이와 인사를 나눈 뒤, 

사랑이는 본격적인 중성화 수술에 들어갔다.

수술 당일은 하루 입원을 하기로 했다. 수술 후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사랑이의 상태를 확인하며 진통제가 더 필요할 경우 추가 처방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수술이 잘 끝났다는 연락을 받고, 나도 어느 정도 긴장이 풀려서 침대에 풀썩 누워버렸다.

그런데 몇 시간 뒤,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사랑이가 너무 긴장을 한 상태라 그런지, 아예 밥을 안 먹는다는 것이었다.


사람이든 고양이든, 잘 먹어고 많이 먹어야 빨리 낫는 법! 

그래서 나는 사랑이가 좋아하는 습식과 평소에 잘 안주는 츄르까지 챙겨 들고 병원을 다시 찾았다.


처치실에는 눈을 잔뜩 부릅뜬 채 경계하고 있는 사랑이가 있었다. 

사랑이는 수술부위가 아파서 그런지, 온몸을 웅크리고 쿠션에 몸을 파묻고 있었다.


"사랑~ 왜 밥을 안 먹고 있어? 밥 먹어야지. 언니가 특별히 간식도 가져왔어!"


내가 부르자 나를 알아보는지 비틀비틀 걸어오는 사랑이.

위태롭게 걷다가 곧 픽하고 쓰러지는 모습을 보니 어찌나 애처롭던지.

그리고 내가 습식을 손에 올려서 내밀자 조금씩 먹는 모습에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잘 버텼어. 너무 장하다. 정말 너무 대단해, 우리 사랑이." 


그렇게 수술 첫 날밤이 지났다.


수술 다음 날, 사랑이의 퇴원 수속을 밟고 집으로 돌아왔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퇴원 준비를 위해 팔에 꽂힌 바늘을 뺄 때도 큰 난리가 있었다고 말씀해주셨다.


"아, '역시' 사랑이가 또 그랬군요. 고생하셨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이도 집에 돌아오자 긴장이 풀린 거서 같았다.

나도 사랑이가 집에 오니 어젯밤의 불안과 걱정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수술 봉합부위에 실을 꼬매 두었기에 핥는 것을 막고자 씌어둔 넥카라. 

사랑이는 이 넥카라를 정말 싫어했다. 


걷는 것도 뒤뚱뒤뚱 이상하게 걷고, 밥이나 물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심지어 응가를 넥카라에 묻히기도 했다!

그래서 당근 마켓에서 쿠션 넥카라를 급히 구해서 바꿔주니, 

그때부터 좀 살 것 같다는 표정을 짓는 사랑이를 보자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사랑아, 앞으로 실밥 뽑을 때까지 많이 답답하고 힘들겠지?

넥카라도 거슬리고, 이곳저곳 그루밍하고 싶을 텐데 못하니 짜증도 날 거야. 

그래도 우리 사랑이 처음 해본 중성화 수술도 씩씩하게 잘 버텼으니 회복도 멋지게 잘해보자!


언니도 이제 사랑이가 다른 일로 수술할 일 없도록, 

늘 건강히 자랄 수 있도록 많이 공부하고 준비할게. 


이제 사랑이 저녁밥 먹을 시간이니 얼른 밥 먹고 약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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