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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Dec 30. 2022

그럭저럭 살만한 냥생입니다만

가끔은 피곤하기도 합니다.


3년간 집사 녀석을 보면서 알게된 것이 있다.

인간들은 12월만 되면 유독 시끄럽고 들뜬다. 유독.


그들은 '일 년'이라는 것을 정해두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이 끝나면 한 살씩 나이를 먹는다고 한다.


덩달아 애꿎은 나도 나이라는 것을 먹는다.

뭐 바뀌는 게 있냐고? 전혀.

그래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다.


집사 녀석도 며칠 전부터 '연말 파티'라는 것을 거의 매일 하고 있다. 어딜 자꾸 나가는 건지.


그래도 요즘 날씨가 추워서 그런가?

최근에는 내 집에 낯선 인간들을 데리고 온다.

"냐아옹"


내가 슬쩍 다가가서 그들의 바짓단에 묻은 냄새를 맡으며 지나가면, 대게 돌아오는 반응은 비슷하다.


"너무 귀여워!"

"뭐야? 나 좋아하나 봐!"

"나도 나도! 사진 찍어줘!"


소리를 지르지 않고는 말을 못 하는 게 인간인가 보다.

이런 시끄러움도 12월이라 더욱 그런 것인가?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방에 돌아와 눕는다.


12월은 인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일 년이 끝나갈 때 그들은 누군가와 함께 맺어져 있어야지만 적성에 풀리는 것처럼 보인다.


왜?

나는 이렇게 집사 녀석만 있어도 충분한데 말이지.

그래서 가끔은 내가 아닌 다른 인간들과 웃으며 즐거워하는 집사 녀석을 보면 괘씸하고 질투가 나기도 한다.


나는 네놈이 내 얼굴에 잔뜩 뽀뽀를 해도 참아주는데 말이지.

네놈이 내 발을 움켜쥐고 놔주지 않아도 봐주는데 말이지.



12월에 인간들은 지나간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작년엔 어땠다, 한 살 더 들어버리다니, 그때 정말 좋았는데, 가을이 유독 길었다, 여름휴가를 갔어야 했는데.

 

인간들에게 12월은 잔뜩 미뤄둔 기나긴 일기를 쓰는 달인가.

유난히도 저들끼리 함께 나눈 추억을 나누며 즐거워한다.

그리고 앞으로 함께 나눌 이야기를 부풀리며 행복해한다.


인간들은 참 신기하고 알 수 없는 종족이다.

지금이 아닌 것을 그리워하고 또 행복해할 수 있다니.

무슨 기분일까.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나는 어쩌면 그럭저럭 살만한 냥생을 살고 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오늘 이 순간이니까.

그리고 매 순간 만족하며 살고 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고, 놀아주는 집사 녀석이 있다. 가끔 양치할 때는 언짢지만 뒤이어 주는 게살 슬라이스 덕분에 참을만하달까. 발톱을 깎을 때는 인내가 조금 더 필요하긴 하지만.


지난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잘 기억하려고 하지도 않아.


앞으로의 일?

그런 건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걸 미리 생각한다고 집사가 간식더 준비하지않는걸.


그래서 그런 걸까. 12월만 되면 유독 들뜨고 시끄럽고 말이 많아지는 인간들을 이해하려 애쓰다 보면 피곤하다.




오늘도 집사 녀석이 집에 인간들을 데리고 왔다.

이번에 온 녀석들도 나한테 관심이 많은 것 같군.

얼굴근육에 나를 만지고 싶어 하는 기색이 가득하다.


조금 놀아주고 싶지만, 지금은 귀찮아. 조금 졸리거든.

멀리서 집사가 웃으며 다른 인간들과 즐거워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는데, 역시나. 오늘도 모르겠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얼씨구?

매일 똑같은 이야기만 하는 주제에, 오늘도 좋아 죽는다.

그래도 3년간 집사 녀석을 보며 확실히 알게 된 것이 있다.


12월은 인간들에게 뭔가 특별한 무엇이라는 것!


그리고...


아아....


모르겠다. 정말. 잠이나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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