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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Jan 13. 2023

나는 겨드랑이가 좋다

고양이라 누릴 수 있는 특혜입니다.

"아이고, 사랑이가 또 여기 들어왔어?"


늘 덜렁거리고 조심성 없이 쿵쾅거리며 걸어 다니는,

모든 움직임이 너무 크고 둔한 내 집사 녀석.


이 녀석이 은근 민감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바로 내가 이 녀석 겨드랑이로 파고들 때이다.

집사가 잘 시간이 다가오면,

나는 조용히 캣타워에 숨어 들어간다.

그리고 가만히 집사 녀석을 가만히 응시한다.


한참을 이리저리 움직이기도 하고, 휴대폰을 보기도 한다.

그러다 곧이어 숨소리가 깊어지고 뒤척임이 멈춘다.

그때가 바로 내가 움직일 때이다.

조용히

살금살금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캣타워를 훌쩍 뛰어 침대로 착지한다.


그리고 조용히 집사의 겨드랑이로,

다른 곳을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내 엉덩이를 먼저 들이민다.

빙글빙글 이불을 펼치며 제일 따뜻한 곳을 찾는다.


그리고 밤새 편하게 누울 수 있는 곳을 신중히 찾아본다.


혹시나 뒤척일 때 내가 빠르게 빠져나올 수 있어야 한다.


지난번

이 생각을 못하고 누워있다가 봉변을 당할 뻔한 적이 있다.


그래서 빠져나갈 곳을 파악 후 자리를 정하는 것, 매우 중요!


딱 마음에 드는 자리를 찾으면

살며시

조심스레


집사의 겨드랑이에 가장 은밀하고 따뜻하고 턱을 괴기 딱 좋은 각도로 몸을 밀착한다.


그런데 항상 이때가 문제다.

내가 자리를 잡으면 집사 녀석이 눈을 뜬다는 것!! 


"사랑이 왔어~?"


도대체 어떻게 아는 거지?

나의 핑크색 젤리덕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텐데!

그러고 나서는

커다란 몸을 내게로 돌려 누우며

애써 찾아둔 최적의 잠자리를 망가트려버린다.


"냐아옹!(어떻게 내가 올 때마다 깨는 거야?)"


"그래~ 아까 언니가 오라고 했을 때는 안 오더니?"


"냐옹! 냐옹!(내 발소리를 들을 줄 아는 거야?)"


"왜 이제 왔어?"


"냐아! 냐아!(대답해! 대답!)"


 "그래요, 알겠어요. 언니랑 같이 자자~"

아주 불편해진다.

심지어 나를 꽉 끌어안고 다시 잠드는 집사 녀석.


나는 집사가 다시 잠들기만을 기다린다.


집사의 숨소리가 다시 느긋해지고 심박수가 줄어들면,

나는 유연하게 몸을 비틀어 집사의 품을 빠져나온다.


그리고 내 소파 안으로 들어간다.


오늘 밤도 겨드랑이는 안될 것 같다.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평소에는 내가 뒤에 따라와도 모르는 집사 녀석인데 말이다!


오늘은 아쉽지만 집사 어깨를 베고 자야겠다.



내일 다시 도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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