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가 시작될 무렵,
나는 뉴욕에서 텍사스로 이주했었다.
쓰러져 죽어도 최소 열흘은 발견되지 않을 법한 텅 빈 대지를 달리고 또 달리는 느낌이었다. 가끔 옆을 돌아보면 공사현장이거나 포크레인이거나 돌밭이었다. 드문드문 등장하는 햄버거집 주유소 마트 소농장, 타운이랍시고 가게 몇 개가 모여있는 곳은 복사하여 붙여넣기 같았다. 디자인이라곤 하나 없는 단층 건물에는 햇빛을 차단하는 시커먼 필름을 붙인 유리창이 인상을 쓰고 있었다.
마치 버스를 뉘여놓은 듯 길고 커다란 트럭이 바퀴에서 돌을 튕겨냈다. 핸드폰을 보느라 정신없는 운전자들은 차선이나 주차구역 같은 건 관심없는 듯 늘 제멋대로였다. 성질같아서는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면서 어느 서부영화의 담배 문 여배우처럼 거칠게 굴고 싶지만, 바지 뒷 주머니에 꽂혀있는 총을 보면 입을 다물게 됐다.
끝도 안 보이는 지평선을 장식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날씨는 너무 오래 찜통이었다. 그늘이 될 만한 것도 없었다. 여름이면 몇 달은 나가기가 싫었다. 자연이라고 부를 만 한 아름다운 나무나 숲이나 강이나 폭포나 돌덩이도 없었다. 박쥐가 날개를 접고 웅크린 듯 모여있는 주택단지의 회색 지붕들이 볼썽사나웠다. 내내 심심했고, 소문난 장소에 가도 늘상 실망이었다. 축복받은 땅이라던 미국의 이름을 무색케 만드는 벌판이었다.
넓은 땅이 무슨 소용인가.
지금 여기, 30대의 나는 멋이 없었다.
시골과 도시 그 중간 어딘가에 불시착 한 것 같았다. 아침에 눈을 뜨고 둘러 볼만한 것이 없었다. 하루가 기대되지 않았다. 매일이 뻔한 결말이었다. 꿈이 무었이었는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다들 일찍 일어나 커다란 차를 끌고 나갔다가 종일 운전기사처럼 오다니다 해질녘엔 귀가해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일찍 잠에 들었다.
걷는 생활이 없는 곳이라는게 최대 단점이었다. 회색빛의 도로, 고속도로, 팔차선도로, 공사중인 도로만 연속으로 나왔다. 걷는 생활권이 자연스레 조성하는 풍경이나 운치가 없었다. 컴팩트하고 아기자기한 맛이 없었다. 걷다가 멈춰 사진 찍고 싶어지는 곳이나, 흠뻑 분위기에 젖고 싶은 곳이 없었다. 내가 사랑하고 동경했던 한켠의 미국문화(주로 예술과 대중문화와 미디어)의 흔적도 없었다. 대단한 곳이라고 해서 가봤자 실망 뿐이었다. 죄다 덩치만 크고 철학이나 감각 같은 건 하나 없는 속 빈 플라스틱 통 같았다. 말 그대로 길 위에 뿌려진 멋과 낭만이 전혀 없는 곳이었다. 글만 읽어도 단조롭고 개성없고 크고 지루하지 않은가.
남들이 장점으로 꼽는 소수의 조건들 (이를테면 크기에 비해 저렴한 집 값, 넓은 학교, 대기업의 공장들이 들어올 예정이라 지역 발전의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감)은 나에게 현실감 없는 가치였다. 도무지 어디 갈 데가 없다고 하면, 비행기를 타고 남의 땅에 가면 되지 않냐는 엉뚱한 소리가 되돌아왔다. 주거지의 매력, 날씨의 기쁨, 이동의 간편함, 문화적 인프라 뭐 이런 기본을 다 무시한 채 허허벌판에서 답을 찾는 격이었다. 시골이라면 차라리 기막힌 자연경관 이라도 있든지, 이건 뭐라고 명명하기도 애매한 '망한 그림' 같았다. 40도 땡볕 아래 오로지 지루함, 지루함, 지루함 뿐이었다.
사는대로 생각하는걸까
생각하는대로 사는걸까의 물음 속에 갇혀있었다.
도무지 근사한 미래를 생각해낼 수 없었다.
살짝 촌스러워지고, 집안 일에 의미없이 메달리고, 시간떼우기 식 취미를 억지로 만들고, 갈수록 감이 무뎌졌다. 단순한 하루일과에 익숙해져 10년 뒤에는 정말 단무지 덩어리 같은 인간이 될 것 같았다. 그저 정해진 시간에 자고 일어나면 설탕이나 식초에 흠뻑 절여져 드럼통 안에 들어가 누울 일 밖에 없는, 안전하고 안락한 플라스틱 그릇 안의 단무지. 팔보채도 깐풍기도 못 되고 그저 짜장면 곁에 덩그러니 누워 있는 단무지. 아, 신이시여. 날 단무지 정도로 살다 가게 하시려고 이 헛헛한 벌판에 가둬두신 겁니까. 가슴을 치며 한탄했다. 내가 왜 즐거운 도시를 두고 여기에 와서 살고 있을까? 후회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도무지 가시지 않는 울적함과 멀미가 뒤섞인 어느 텍사스 벌판 위에서의 불분명한 시간, 꾹 눌러 담았던 비밀스러운 소원이 태양빛에 눌려 툭 튀어나왔다.
"나 다시 돌아갈래!"
텍사스에서 외치는 박하사탕의 설경구였다. 나 혼자 탈출을 꿈 꾸는 쇼생크였다. 텍사스를 떠난다는 의미는 ‘이사’가 아니라 ‘출소’ 혹은 ‘유배 끝 귀양(歸養)’같이 느껴졌다.
영화로 치면 <트루먼 쇼>의 트루먼이 도저히 못견디게 지난한 일상에 반기를 들고 뛰쳐나온 상황 같았다. 드라마로 치면 <가십걸>에서 시골로 강제전학을 갔다가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 한 여자아이가 “넌 모를거야 거기가 얼마나 끔찍한 곳이었는지!” 하는 느낌이었다. 혹은 <섹스앤더시티>에서 주인공 캐리가 프랑스에서의 안락한 삶을 뒤로하고 “오, 나를 다시 뉴욕으로 데려가줘”라고 절규하면서, 다시 그 복잡한 뉴욕으로 돌아와 안도감을 느끼며 눈시울을 붉히는 느낌일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되찾아야했다. 끈임 없이 길가를 수 놓은 멋진 장소들, 미적감각 상승시키는 사람들, 계절마다 열리는 패션이벤트, 길거리 공연, 전 세계 사람들이 몰려와서 만드는 불야성, 쏘다니는 밤, 거리의 예술가들, 생생하게 느껴지는 삶의 현장,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보고 듣고 배우는 것들, 골목의 운치, 역사적인 건물의 웅장함, 누리는 게 많아 저절로 생기는 소속감, 종일 구경하며 걸어다니는 즐거움, 늦은 밤까지 여는 가게들, 사람 관찰하는 맛, 여행이 삶이 된 형태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 만 같았다.
생각만해도 드라마와 영화가 줄줄이 연상되고, 걷기만해도 뮤지컬 같은 하루가 완성되는 곳. 여전히 수 많은 예술작품에서 배경으로 삼고, 주제곡이 넘쳐나며,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을 가졌고, 나 같은 이민자가 기 펴고 살기 가장 좋은 멜팅팟 뉴욕. 찾아보면 앞서가는 혜택도 많고 공짜로 누리는 인프라가 널린 곳. The Big apple, Melting pot, the City that Never Sleeps, NYON, Gotham, Concrete jungle, ILV 같이 애정깃든 별명이 넘쳐나는 곳. 오직 뉴욕이었다.
그러다 결심했다.
2024년 봄, 뉴욕에 돌아가기로.
미국에서의 이사는 귀찮은 일 투성이지만, 멍하니 혼자 하늘을 보는 것 보다 바빠서 익사할 것 같은 지금 이 기분이 나쁘지 않다. 이사 준비가 하나도 버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이제껏 지루하게 낭비해버린 텍사스에서의 시간과 비교하면, 뉴욕에서 매일 만 보씩 걷고 사람들 틈에서 존재감을 불태우며 24시간을 쪼개어 바쁘게 살 생각에 심장이 터질 것 만 같다.
이제 다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존재감, 만족감, 성취감. 충만해질지어다. 아멘.
눈을 뜨면 기대되는 일이 매일마다 생길 것이다. 보고싶은 것이 넘쳐나며, 생각하게 만드는 풍경이 매일 나에게로 쏟아질 것이다. 멈춰있던 브런치 에세이 <콘크리트 정글 : 뉴욕으로부터>도 다시 이어질 것이다. 내가 뉴욕에 사는 줄 알고 섭외 연락주셨다가 텍사스라니까 말을 흐리셨던 모 방송사 작가님께도 다시 연락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알고 지내던 아티스트들에게도 다시 연락해 사진이며 영상이며 즐거운 작업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래 켜지 않았던 카메라는 매일 셔터를 깜빡일 것이며, 잃었던 감각이 돌아오며 매일 네온사인의 불빛이 꺼지지 않을 것이다.
뉴욕, 잠들지 않는 도시.
뉴욕, 콘크리트 정글.
뉴욕, 80만 개의 이야기가 매일 새로 탄생하는 곳.
뉴욕, 센터 오브 더 월드 & 빅 애플 & 멜팅팟.
뉴욕, 예술가는 꿈을 꾸고 마천루는 끝없이 올라가는 곳.
뉴욕, 우리가 초가집에서 엽전 셀 때 이미 고층빌딩에 엘리베이터 타고 주식을 팔던 곳.
뉴욕, 프랭크 시나트라가 노래하고 제이지가 찬양하고 로빈시케가 영원히 살고 싶어하는 곳.
뉴욕, 캐리도 있고 오드리헵번도 있고 개츠비도 있고 스파이더맨도 있고 마돈나도 있는 곳.
뉴욕, 매일 영화와 드라마와 사진과 디자인과 모델과 뉴스와 유튜브와 뮤지컬과 콘서트가 공존하는 곳.
뉴욕, 모든 산업의 종사자들이 도전의 장으로 삼는 곳.
뉴욕, 누가 뭐래도 땅 값 비싼 이유가 확실히 있는 곳.
사람들은 말한다.
지난 3년간, 뉴욕은 많이 변했다고.
그러나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서울이 아무리 변했다고 해서, 그 명성과 역사와 품격이 어느 시골 논밭으로 옮겨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사람들이 입을 모아 떼창을 하는 도시의 이름은 영원하다. 돌아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환영식과 불꽃놀이가 터지는 듯 하다. 소화제를 먹고 오랜 체증을 내려보낸 기분이다. 이제서야 제대로 ‘미국 생활’을 할 것이다. 오늘 만큼은 어퍼이스트에 사는 어느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얄밉게 외쳐보고 싶다.
“이 구역의 XXX, 내가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