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이민자에게 진짜 미국을 알려준 TV 프로그램들
어쩌면 지난 3년 간의 불안했던 시국에 내가 본 미국의 절반은 브라운관 너머였을지 모른다. 사실 딱히 판데믹 상황이 오래되거나 외출 통제를 했던 미국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TV를 유독 많이 보며 지낸 초급 이민생활이었다. 우리 동네에는 없는 미국 풍경을, 우리 동네에는 없는 미국 사람을, 우리 동네에서는 보기 힘든 미국의 일을 TV로 배웠다. 적게는 새로운 어휘와 발음부터, 새로 나온 광고에서 엿보는 유행부터, 크게는 미국인들의 정서 그리고 ‘미국스러움’이라는 뉘앙스에 대하여.
아래는 깊은 인상을 받았던 몇 가지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1 Selling Sunset / Bling Empire / Love Is Blind
(넷플릭스)
지난 몇 년간 미국 인기 쇼 Top 3였다. 말 그대로 뼛속까지 미국 스타일 예능이다. 리얼리티를 표방하지만 누가 봐도 대본이 빵빵한. 나중엔 인기가 너무 많아서 서로 콜라보도 했다. 아류작이 줄줄이, 미친 시청률이다. 미국에 살면서 진짜 미국을 보고 싶으면 사실 유려하고 수준 높은 ‘수상작’ 보다 그냥 이런 쇼를 보라고 말하고 싶다.
아마 지나가는 미국인에게 “아카데미상 수상작에 나온 그 수어(Sign language)알아?”보다 “셀링선셋에서 크리셸이랑 크리스틴 개싸움 난 거 봤어?”라고 묻는게 더 쉬울지 모른다. 뉴스엔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사고가 줄줄 이어도, 이들은 긴 손톱을 붙이고 전용기를 타며 탄소배출과 예쁜 쓰레기를 생산하느라 바빴다. 그리고 그런 것이 '성공'과 '멋진 것'이라고 칭송되며 새로운 스타들을 만들었다. 시끄럽게 또 화려하게, 미국스럽게.
셀링선셋은, 미국에서 스타급 부동산 중개인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벌고 또 화려하게 사는지를 보여준다. 블링 엠파이어는 미국에 있는 미친 아시안 부자들이 얼마나 돈을 종이조각처럼 뿌리며 사는지를 보여준다. (뉴스에는 코로나로 인해 아시안들이 차별당한다고 했지만, TV 에는 없었다. 오히려 쇼 이후 미국인들은 아시안계 라고 쓰고 중국계라고 읽는다 부자들에 대한 환상이나 호기심을 가지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기생충의 흥행과는 또 다른 느낌의 전세역전, 자존심 회복같은) 러브 이즈 블라인드는, 돈보다는 사랑이 우선인 사람들이 얼굴도 안 보고 결혼을 결정해버리는 용기를 보여준다. 어제는 평생의 사랑을 약속했다가, 오늘은 반지를 내던지며 욕설을 퍼붓는 격정적 사랑!
미국 쇼의 성공조건인 돈 자랑, 사랑타령, 개싸움, 가십, 진심이냐 거짓이냐, 보톡스, 백치미, 정신승리, 죽어도 해피앤딩으로 가득하다. 완벽한 미국식 리얼리티다. 미친 아시안 부자들과, 집 팔면서 자신도 파는 사람들과, 사랑에 미친 자들 이야기다.
우리 옆집엔 이런 사람들이 없다고 해도, 분명히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누구에겐 과장이고, 누구에겐 코미디지만, 또 누가 보면 '되고 싶은 꿈'일지 모른다. 이들은 방송출연 이후 슈퍼스타가 됐다. 재산 공개는 물론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는 파파라치, 가십과 스캔들, 돈 쓰고 또 써대는 일상이 생방송된다. 뭐 '시국이 이런데 자중해야지' 같은 대중정서는 미국에 없다. 있다 하더라도 고리타분한 소리로 치부된다.
돈, 싸움, 사치, 백치미, 노출증, 19금, 욕설, 난장판.
어느새 재밌다. 불편한 거 하나 없다. 이젠 필러 맞은 두꺼운 입술과 성형한 엉덩이도 예뻐 보인다. 돈 자랑도 귀엽고 감정을 못 숨기고 드러내는 것도 순수해 보인다. 메이크업은 저렇게 세게 해야지, 옷은 좀 헐벗어 줘야지, 인생 뭐 있어 돈 벌고 돈 쓰고 술 마시며 싸우고 또 화해하는 거지. 이젠 매일 이런 영상 한 편쯤을 봐줘야 활기찬 하루가 시작된다. 뭐 어때 이건 쇼인데. (나, 이제 미국에 적응한 건가?)
#2 Love Death + Robots (넷플릭스) Roar (애플티비)
맞다, 미국은 할리우드의 본고장이지. 영화와 드라마와 매체문화를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게 만든 나라지. 이 두 작품이 잠시 잊고 있었던 창작영감에 불을 붙여버렸다. 유명 감독이나 배우들의 초기 단편을 보았을 때 느껴지는 짜릿함, 대중 유행과 동떨어져 있지만 분명히 순도 100%의 예술혼이 담긴 성스러움을 다시 느끼게 해 줬다. 단편의 결과물이 주는 짧고도 강력한 힘을 다시금 상기시켜 줬다. 어쩌면 미국에서 나도, 내 이야기를 이런 곳에 팔아 먹고사는 '이민자 출신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에 한 스푼 설탕을 뿌려준.
<러브 대스 + 로봇>은 로봇이 주제가 된 단편 애니메이션을 무차별적으로 쏟아낸다. 아름다운 무더기, 은혜로운 폭풍우다. 10불 정도 되는 월정액을 내고 이렇게 좋은 작품을 계속 봐도 되는 건가 싶다. 창작하는 힘, 상상의 힘, 비현실이 때려주는 현실의 망치.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Jibaro(히바로). 공포스럽고 기괴한 영상미는 밤새 잔상을 만들어내 잠 못 이루게 할 정도였다. 여기저기 철학에 해석을 곁들여 분석한 글들이 많지만, 읽지 말고 그냥 내 눈을 통해 보시기를. 잔인하고 유혹적이고 아름답고 더불어 거대한 인류의 역사와 본능과 신까지 생각하게 되는 당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Roar>는 '세상을 향한 함성'이라는 부제가 붙여져 있는데, 없는 게 나을 뻔했다. 대놓고 내거는 캐치프라이즈는 조금 촌스러웠지만, 내용물은 대단했다. 신선한 배우들과 신선한 세트장에서 판타지 단편 드라마가 각각 다른 주제를 가지고 펼쳐진다. 기억에 남는 건 '선반에 진열된 여자'. 한평생 '진열'되기 원했던 미인대회 출신 미녀가 마침내 그 '의미 없는 진열'의 장을 내려와 땅을 밟지만, 내려온 후에도 역시 '진열'되는 삶에 속해야 안정이 된다는 씁쓸하고도 잔인한 인간본성을 예쁘게 다뤘다. 블랙 페미니즘 코미디라는 슬로건을 내세웠지만 그런 것 다 빼고 보아도 신비하고 재밌다. 배우 니콜 키드만이 제작도 하고 출연도 했다.
#3 Pretend It's a City, 도시인처럼 (넷플릭스)
이토록 우아하면서도 시니컬한 뉴욕 소개가 또 있을까? <도시인처럼>은 뉴욕 길거리 화려함이나 관광지는 하나도 나오지 않는 본격 뉴욕 홍보 프로그램이다. 늙은 여자가 무채색 옷을 입고 의자에 앉아 시종일관 냉소적으로 떠들 뿐이다. 가끔 길거리를 걷거나 일상을 사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것마저 어두침침, 춥다. 봉준호 감독이 사랑을 보냈던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이 만들었다.
화자는 유명 작가 프랜 레보위츠. 뉴욕에서 몇십 년 간 산 '뼛속까지 뉴요커'다. 시종일관 불친절하고 직설적이며, 굳이 애쓰지 않는다. 그녀는 말한다. "뉴욕에는 관광객만 있는 게 아니야. 갈 곳 없는 사람들도 많다고. 돈 벌어서 관광객들이 보러 오는 쓸모없는데에 세금 내야지!" 그녀가 표현하는 뉴욕은 정신과 의사마저 돌아버리는 도시, 그러나 화려했던 예술의 본고장이며, 백 년 전부터 엄청난 별천지가 펼쳐진 곳이기도 하다.
화자는 얼굴의 주름만큼 쌓인 뉴욕 역사와 추억을 이야기해 주는데, 솔직히 이런 걸 어디서 듣겠나. 돈 주고도 못 듣는 이야기다. 온통 저차원적인, 멋있고 맛있고 예쁘고 좋고 하는 여행타령에 질려버린 사람이라면, 색다른 뉴욕 이야기로 오시라. 호불호도 필요 없고 대중 관심도 필요 없다. 그게 바로 프랜 래보위츠고, 그게 도시인이야!
#4. F is for family, 그때 그 시절 패밀리 (넷플릭스)
미국에서 패밀리가이나 심슨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내 기준 이게 제일 재밌다. 미국 성인만화 특징인 사회풍자, 욕설도 나오고 깜찍한 19금도 나오지만 뭐랄까, 너무나 가족적이다. 가장인 프랭크는 먹고살기 팍팍하지만 집, 차, 세명의 아이, 예쁜 아내, 강아지가 있는 집에 산다. 집안엔 최신 TV나 전화기 같은걸 나름 구비해 놓았다. 미국 평균 대가족, 전형적인 '미국 미들클래스' 가족이다. 어쩐지 낭만이 넘쳤을 것 같은 1970년대 즈음의 서민가정 모습이다.
특히 이 만화가 그려내는 과거 미국 사회 속 이민자의 모습은 비꼬기 투성이다. 뭐만 하면 '아시안 때문에' '꼴 보기 싫다' 같은 뉘앙스가 풍긴다. 주구장창 쌀국수나 말다가 은밀하게 남편을 살해하는 무서운 베트남 여성, 영어도 못 하면서 라디오나 티비는 곧잘 만드는 괘씸한 일본 사람, 언젠가 미국의 등을 쳐버릴 것 같고 미국의 돈을 다 가져갈 것 같은 느낌의 중국 사람, 한국전쟁 참전 때문에 허리 통증과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해 준 얄미운 한국사람, 그 외에 블라블라 우아우아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 영어를 찌질하게 하면서 숨어 다니는 아시안 이민자가 이 만화에 가끔 등장한다.
그런데 왜 나는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인가. 오히려 그 대사들을 들으면서 웃음을 참을 수 없는 것인가. 뭐 1970년대 미국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고 여겨졌기 때문일까. 갑자기 몰려드는 이민자들로 인해 갑자기 거리 풍경이 생경해지고, 갑자기 그들에게 자리를 빼앗긴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더욱 먹고살기 힘들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지 모른다. 게다가 주인공 프랭크는 이민자들보다 훨씬 힘들고 스트레스받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마치 퇴근길에 소주 한 잔 마시고, 괜스레 티비에 나오는 정치인에게 발길질을 하며 큰소리치는 중년 아저씨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그래, 그럴 수 있어. 그 시대엔 그랬구나.
또 하나, 요즘 나는 인터넷 댓글이라든지 여론의 탈을 쓴 일부 견해들을 보고 느낀다. 2022년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글로벌하지 못한 퇴행시대라고. 이 넓은 세상에서 인종을, 나라를, 사람을 가르며 비난에 열을 올리는 불쌍한 사람들을 보니 어쩌면 이 만화 속 주인공 프랭크의 '실속 없는 발길질'이 생각났다.
#5. 뉴스를 통해 엿보는 것들
듣지 않아도, 집안에 뉴스를 틀어놓는다. 뒤늦게 미국으로 이민온 사람들은 늘 영어를 쓰면서도 영어의 어려움을 느낀다. 드라마도 좋지만, 역시 뉴스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주요 토픽은 어쨌거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중심이다. 어디에서 토네이도가 났고, 어떤 유명인이 어떤 말을 했고, 어느 지역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이뿐만이 아니라 태도도 배운다.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경청, 모든 알파벳을 다 발음하는 또렷한 말투, 입에 경련이 날 때까지 웃는 표정, 별로 웃기지도 않는데 박장대소하며 분위기를 맞추는 태도. 내가 우리 동네 슈퍼마켓에선 볼 수 없는 수트와 오피스룩 차림의 멋진 사람들을 본다. 건들거리며 농담을 던지며 리포팅을 하는 기자, 느닷없이 뉴스데스크로 다가와 팔을 걸쳐놓고 이야기하는 섹시한 기상캐스터, 그녀에게 옷이 예쁘다는 칭찬을 건네는 뉴스 앵커, 방송 사고가 나도 푸핫- 하고 웃어버리며 즐거운 해프닝으로 넘기는 여유.
위로도 얻는다. 길에서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얻어맞은 한 행인의 이야기에 분개하는 유색인종을 본다. 작은 사건에도 발끈하며 피해자의 인권을 걱정하는 인정 넘침을 본다. 상식과 인도와 착함을 느낀다. 막상 길거리엔 별로 없는 그런 느낌이지만. 우리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백인들을 본다. 존중해주는 흑인들을 본다. 멕시칸과 동남아시안과 아시안이 구분되는 광경을 본다. 영어를 능숙하게 못 해도 잘만 나오는 연기자, 출연자, 인터뷰어를 본다. 물론 브라운관의 벽은 현실보다 훨씬 높지만, 그래도 뉴스에서 종종 이성적인 안정을 느끼곤 한다.
#6. 길게 말할 필요는 없지만 추천하고 싶은 것들
Sovdagari (조지아의 상인) : 심심하다. 심지어 분량도 30분이 안 된다. 조지아 시골마을에 생필품을 팔러 다니는 아저씨와 사람들. 온통 ‘건조함’ ‘추움’ ‘배고픔’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왜 상을 탔는지, 왜 72%나 되는 시청자들이 엄지를 올렸는지 생각해 보자. 그냥 완벽한 다큐멘터리다. 재밌는 자막도, 편집도, 대본도, 깜짝 놀랄 에피소드도, 기막힌 썸네일도 없다. 유튜브에 질려버린 우리에게 던져진 순도 100%의 다큐, 결국 그게 삶의 정체성이라는 것이다.
Cabinet of Curiosities (호기심의 방) : 8개의 단편 중편 옴니버스. 개연성이고 분량이고 아무 상관없이 아름답게 휘몰아치는 공포판타지, 은밀한 스토리 컬렉션. 생활과 동떨어진 상상을 통해 세상 가장 깊숙한 원죄나 인간 본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 이런 게 주목받는 세상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꿈에서 보았던 신비한 공포, 도서관에 처박혀있던 낯선 외국 판타지, 크리스마스트리 뒤편에 있는 섬뜩한 공간.
Forgive us our trespasses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 잔혹했던 전범 역사를 ‘과거’라고 치부하며 비웃는 멍청이들에게 던지는 최신판 나치 이야기. 서구에서는 나치를, 그때의 잔혹한 행위를, 영원히 심판해야 할 잘못을 언제나 ‘어제 일’처럼 생생히 상기하고 있다. 누군가 독일에서 ‘그건 옛날 일이고..’ 라며 과거 전범역사를 취향으로 치부한다면 길거리에서 총에 맞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떤가? 글쎄, 시대가 음흉하고 답답하다. 장애아를 모두 죽이라는 나치의 명령에 불복하고 생존을 향해 달리는 소년. 그 조그만 종종걸음에 ‘여전히’ 미안함을 느끼는 소수를 위한, 어쩌면 정말 소수로 남았을지 모르는 인간다운 사람들을 위한.
Stranger Things (기묘한 이야기) : 역사상 넷플릭스 최고 역작 아닐까. 미드 보는 재미의 결정판. 어린아이들이 성장해 성인이 되는 걸 지켜보는 뿌듯함, 진부한 괴물서사에 던져진 레트로 무드, 따라 입고 싶은 복고풍 의상과 가보고 싶은 세트장. 왕자의 게임이니 빅뱅이론이니 수츠니 브래이킹배드니 해도, 내겐 기묘한 이야기가 최고다. 왜? 롤러브레이드 신고 우리 동네 시골 길을 달리다가 문득, 어느 차원으로 갈 것 같은 생생한 판타지를 주니까. (내가 사는 곳에 그런 음침한 집과 조용히 모여 노는 아이들이 가끔 보인다)
그 외 : 우리의 지구, 길 위의 셰프들, 릴리와 찌르레기, 아메리칸 걸, 웬즈데이, 결혼할까 집을살까?, 다머, 배드 트립, 톨 걸, 돈 룩 업, 로니 쳉.
<브런치에서 미국생활 이야기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