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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정 Nov 11. 2024

뉴욕에 가을이 내렸다.


뉴욕 최고의 계절은 역시나 가을 아닐까.


갈색 벽돌 사이로 황금빛 낙엽이 웅장하다. 멋스러운 크림색 빌딩이나 중세시대 성 같은 성당 사이로 나뭇잎이 굴러다닌다. 온갖 색채, 그리고 그 사이를 빠르게 지나가며 풍경의 정점을 찍어주는 노란 택시. 극적이다.



리처드 기어가 나온 영화 <뉴욕의 가을>이나

프랭크 시나트라가 불렀던 <Autumn in Newyork> 같은 게 당연히 탄생할 만하다. 이제야 이해가 된다.


“It's autumn in New York

뉴욕의 가을이에요

That brings the promise of new love

그것은 새로운 사랑의 약속을 가져와요

Lovers that bless the dark

어둠을 축복하는 사랑

On benches in Central Park

센트럴 파크의 벤치에서

Greet autumn in New York

뉴욕의 가을을 맞이하세요

It's good to live it again“

다시 살아가서 좋네요


다시 살아갈 수 있어서 좋다.

우리가 다시 살아서 가을을 맞은 것 말고 또 무엇이 좋을 수 있을까. 삶을 치열하게 무너트렸다가 또 재건한 사람들이 함께 가을을 맞는다. 빈민가와 최상류 층이 그림처럼 섞여 가을 속을 배회한다. 저마다의 이유로, 다시 살아갈 수 있어서 좋다고 느끼며.



요즘 같은 때엔 정말이지 예술가가 된 것 같다.

공원 벤치에 앉아 소설이나 시나리오나 스케치 같은 걸 끄적이며 마구 폼 잡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리고는 해가 질 때까지 신발 끝이 닳을 때까지 걷고 싶어 진다. 이게 다 다 이 도시의 낭만이 넘쳐흐르는 탓이라면서.



오점 하나 없는 완벽한 답안지 같은 날들.

명사가 되고 영화가 되며 그림이 되는 날들.

이 계절을 누리기 위해 뉴욕에 산다고 자부하는 날들.


하루 종일 걸어 다녀도 따갑지 않은 햇살,

적당하게 달큼한 바람, 사방으로 퍼지는 금색 빛.

정말이지 삶 자체가 축복이라고 느껴진다 매일.



창공이 대지로부터 멀어지고 비누냄새 같은 기억이 몰려올 때, 가을이 시작되었다고 여긴다. 살갗에 닿는 바람이 까슬하여 낮과 밤이 편안해지고, 소매 끝을 잡아당겨 책 넘기는 게 좋은 날들. 바스락바스락, 커피잔의 온기, 그리고 옛날 노래.


가을은 한량의 계절. 혼자 나가 혼자 놀다 혼자 들어오는데도 마음에는 사랑이 꽉 찬 사람들의 것. 길거리는 온통 노랑이고 햇살이고 포옹인데 나는 걷다가 커피집에 갔다가 또 책을 읽다가 사진을 찍다가 또 종이더미를 뒤적이다 음악을 들었다가 또 걷다가.


즐거운 무한궤도, 뉴욕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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