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게 가졌지만 풍부한 삶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유튜브에서 흥미로운 영상 하나를 보게 되었다.
미니멀리스트로 살아가는 한 남자에 관한 다큐멘터리였는데, 그의 전재산은 보통 크기의 백팩 하나에 다 담길 만큼 적었다. 가진 것이 없었지만 그는 행복했고, 사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소유한 물건을 비워냄으로써 오히려 내면을 채워나가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반면, 그 당시 나는 맥시멀리스트로 살아가는 중이었다. 가진 것은 쉽게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었고, '언젠가는 쓸 곳이 있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과 불안함에 물건을 쌓아두기만 했었다. 그러다 보니 왠지 모르게 방이 어수선하게 느껴졌고, 새로운 물건을 들이는 일에 더 이상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다큐멘터리를 접하고 금방 물건을 비워내는 생활을 하지는 못했다. 그동안 살아온 습관이 있으니 쉽게 미니멀하게 바뀔 순 없었고, 일단 물건을 사지 않는 것으로 자신과의 타협점을 찾았다. 그렇게 미니멀리스트로서의 삶을 지향한 지 약 3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3년 동안 물건이 크게 줄지는 않았지만, 늘지도 않았다는 점에 일단 반은 성공(?)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도 그 사이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있던 옷들은 몇 차례에 걸쳐 솎아내는 과정을 통해 입을 만한 컨디션의 옷들은 친척 동생에게 주던가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했고, 상품으로써의 가치가 있는 물건들은 당근을 통해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를 했다. 그렇게 매우 뚱뚱했던 내 옷장은 눈에 띄게 홀쭉해졌으며, 잡동사니들로 가득했던 내 방 서랍장도 숨 쉴 공간이 많이 생겨났다. 괜히 뿌듯함을 느꼈다.
미니멀리스트가 되겠다고 근엄 차게 선언한 건 아니지만, 삶의 지향점을 '소유'에서 '비워냄'으로 방향을 바꾼 시점부터 나의 생활습관은 다음과 같이 변화했다.
미니멀하게 생활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습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무작정 물건을 구매하는데 돈을 쓰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의 범주 안에서는 소비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3년 동안 구매했던 겨울 옷은 작아진 코트를 대체하기 위한 코트 2벌이 전부다. 그중 하나는 당근을 통해 구입했다. 옷장을 비워내며 느꼈던 것이지만, 이미 나는 충분히 나를 꾸밀 수 있는 옷들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고, 그렇기 때문에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해 보자는 의미에서 옷들을 새로 구매하지 않았다.
우리가 늘 옷장을 열었을 때 입을 옷이 없다고 느끼는 건 새로운 자극에 익숙해진 우리 뇌의 착각이라고 생각한다. 여름에 티셔츠 1벌로 버티는 그런 극단적인 경우나 사이즈가 작아져서 입을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는 이미 멋을 부릴 수 있는 충분한 양의 옷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마저도 다 소화하지 못해 서랍에 잠들어 있는 옷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안에서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미니멀리스트로의 첫 발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미니멀리스트는 무조건 물건을 늘리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다만, 꼭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신중하게 정보를 수집해서 가장 효용이 높은 물건을 구매한다.
어릴 적엔 (경제력이 없어서 그랬던 것도 있지만) 가지고 있는 예산 내에서 가장 많이 구매할 수 있는 방법으로 소비를 하곤 했다. 그래서 저렴한 옷을 많이 샀고, 전자영어사전, mp3와 같은 전자기기도 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의 것들을 사용했다.
그런 물건들은 당장은 뭔가 돈을 아낀 것 같고, 제한된 예산으로 여러 가지 물건을 구매했다는 만족감은 있을 수 있으나 결국 저렴한 퀄리티는 그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삶의 퀄리티를 높이고, 장기간 사용할 물건들이라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본 내에서 최대한 좋은 것을 사는 것이 2개 살 것을 1개 사는 것으로 막을 수 있기 때문에 미니멀하게 소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노트북과 같이 한번 사면 오래 쓰는 물건들을 가성비를 따져 무조건 저렴한 상품을 산다면 높은 확률로 2~3년 안에 수리를 받아야 하거나, 낮은 품질로 새로운 노트북을 사고 싶어질 것이다.
브랜드에 따른 AS의 편리함, CPU성능에 따른 사용의 쾌적함 등을 따져 비싸도 좋은 물건을 사는 것이 후회를 남기지 않고, 잦은 소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이 있듯, 물건을 보면 사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기기 마련이다. 내가 굳이 필요하지 않더라도 왠지 가까운 미래에는 필요한 일이 생길 것만 같은 희한한 마음이 들게 만드는 것이 쇼핑 사이트인 것 같다. 한 때 나 역시 쇼핑광이었던지라 그런 심리를 너무나 잘 알고 공감한다.
우리는 매일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켜면 쇼핑몰 어플을 누르게 된다. 사고 싶은 마음이 1도 없었던 목도리들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이번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기 위한 필수품인 것 같고, 한번 사면 오래 쓸 것이기 때문에 1개쯤은 사도 될 것 같다는 합리화와 함께 구매 버튼을 누르게 된다. 집에 이미 쓰던 목도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우리는 이러한 패턴으로 눈앞에 어른거리는 물욕에 굴복하게 된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과 환경에 만족하기 위해서는 괜한 자극을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와 같은 고전적인 멘트처럼, 열심히 일한 하루, 한 주를 돌아보면서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불필요한 소비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홧김 비용으로 물건을 구매하는 건 쇼핑중독으로 변질될 수 있는 위험한 케이스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잦은 자기 보상적 소비는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으로 공간을 채우게 되어 심적으론 더 큰 공허함을 느끼게 하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일한 후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면,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던가 흠뻑 땀을 흘리면 신나게 운동을 하는 것과 같이 건강한 방법으로 주어진 자유시간을 즐기는 것이 낭비를 줄이는 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난 아직 비워내야 할 물건들이 많다. 또한 인터넷 포털상에서 나를 유혹하는 수많은 구매유도 광고들을 접하며 필요 없지만 사고 싶은 물건들에 대한 소비 충동을 억누르는데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깨달은 점은, 우리는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건만으로 행복한 삶을 누리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미니멀리스트의 진짜 매력은 비싼 물건을 통해서가 아닌,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여 자아를 실현함으로써 행복을 느끼는 방법을 일상에서 소소하세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언젠간 나도 나의 공간을 꼭 필요한 물건들로만 채워 배낭 하나에 다 담길 만큼의 미니멀리스트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