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만 6시간을 탄 끝에, 일본의 최북단 왓카나이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젖소 목장이라든지, 끝없는 논밭을 구경할 수 있어서 심심하지는 않았다. 왓카나이는 최북단이라 그런지 매우 시원했다. 서둘러 체크인을 마치고 동네를 돌아다녔다. 여기는 배산임수 그 자체였다. 바닷내음과 산내음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어촌 시골 마을이라 생각하고 돌아다녔는데 생각보다 그런 느낌은 적었다. 끊임없는 뱃고동 소리와 갈매기 소리, 해안 정비소와 공장 그리고 상점가까지. 심지어 왓카나이 지하철역에는 영화 극장까지 있었다. 그럼에도 시골이라 평가할 수 있는 점은 도시가 쇠약해지고 있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과거 사할린(현재는 러시아 땅)이 일본 땅일 때 왓카나이는 사할린과 홋카이도를 잇는 거점 항구도시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기반시설이 탄탄하고 곳곳에 러시아어 문구가 보였다. 하지만 사할린이 러시아 영토로 편입되면서 왓카나이는 그 역할과 가치를 상실해버렸다. 기반시설은 많은데 새롭게 업데이트는 되고 있지 않은 느낌이었다. 제주도가 타국의 영토로 편입된다면, 목포를 비롯한 많은 거점 항구도시들이 왓카나이와 같은 결말을 맞이할 것 같다. 아니, 왓카나이보다 관광 자원도 부족하니 더 심각할지도.
먼저 북방파제 돔을 방문했다. 워낙 파도가 살벌하게 치는 곳이라 거대한 방파제 돔을 곳곳에 건설해뒀다. 무려 1970년대에. 방파제 돔의 규모와 건설 시기를 고려했을 때 참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세계에는 4가지의 나라가 있다. 선진국, 후진국, 아르헨티나 그리고 일본.” 북해도를 여행하며 이 말의 의미를 계속 되새기게 된다. 일본이 잃어버린 N년 소리를 들으며 많이 추락하긴 했어도, 2차세계대전 전후의 일본의 역량은 상당하구나 싶었다.
한국 사회의 병폐를 보며 지식인들은 "한국 사회가 일본을 따라가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반대로 생각한다. "일본의 상황이라도 따라가면 다행이다."라고. 저출산, 해외노동자, 이민 문제 그리고 신규 산업 육성 등 우리가 의제 설정조차 제대로 못 하고 있는 문제들을 일본은 그래도 로드맵과 낮은 단계의 현실화를 추진하고 있다. 자민당의 사실상 독재체제라 비판 받지만 그래도 일본의 정치엘리트, 경제엘리트들은 '책임' 정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일당독재 수준의 정치체제의 단점을 최소화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어떠한가? 정권 교체가 빈번하게 이뤄진다 한들 책임정치가 실종된지 20여년은 되지 않았던가?
왓카나이의 쇠락 속에서도 북방파제돔은 오래토록 굳건히 버티고 있다.
왓카나이의 식당은 대부분 현지인 맛집밖에 없다. 외지인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구글리뷰라던지 이곳 사람들 중 일본틱하지 않은 부류가 없었다. 어찌어찌 검색과 발품을 팔며 동네 카이센동 집을 찾아서 방문했다. 이 식당은 해안 도시의 참맛을 가성비 있게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먹었던 카이센동을 삿포로에서 시켰다면 1.5배 비싼 값에 퀄리티는 1.5배 떨어진 상태로 나왔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은 가로등이 거의 없고 사슴이 돌아다녀서 굉장히 무서웠다.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곰을 조심하라는 문구를 봐서 더욱 무서웠다. 그래도 맥주를 잔뜩 먹어 비틀거리며 숙소로 잘 들어왔다. 왓카나이에 하루만 머물기로 계획했던 나 자신을 질책하면서 일정을 마무리했다.
일본의 최북단에서 맡는 바다 향기, 지정학의 풍파를 그대로 맞아버린 도시의 잔재 그리고 이 카이센동까지. 홋카이도에서 여유가 된다면 꼭 왓카나이를 방문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