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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장미 Aug 06. 2024

아사히카와에 가다!

홋카이도의 여름 견문록

아사히카와에 가다.

계획형 인간(J)이 추구하는 여행의 쾌락은 두 가지다. 계획했던 일정을 관철하는 것 그리고 위기와 예상치 못한 일에 잘 대응하는 것이다. 오늘은 그 두 가지 쾌락을 맛봤던 날이었다. 일단 어제 뜸금없이 엉덩이에 땀띠(?) 두드러기(?)가 나 걸을 때마다 몹시 아팠다. 홋카이도 대학을 구경하는 데 큰 지장을 준 정도였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약국에서 연고를 사서 바르고 잤다. 하루 만에 80%가량 치료가 됐다. 무슨 배틀그라운드 구급상자 마냥 효과를 보니까 신기했다. 이것이 첫 위기대응적 쾌락이었다. 


나는 홋카이도 레일패스를 한국에서 구매하고 갔다(약 18만원). 레일패스란 지하철+기차(JR한정) 자유이용권을 말한다. 삿포로-왓카나이 왕복은 25만 원 이상 들기에 레일패스가 훨씬 이득이었다. 왓카나이는 일본의 최북단이라 가는 데 6시간이나 걸리고 기차 편은 하루에 3개밖에 없다. 그래서 새벽 6시에 일어나 아침 기차를 탈 준비를 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레일패스를 이용하려면 외국인 인포메이션 센터에 방문해야 하는데, 이 센터가 아침 9시부터 문을 여는 것이었다. 지금 이 기차를 타지 않으면 나는 6시간 뒤에 있는 기차를 타야 했다. 그럼 모든 일정이 꼬인다. 어쩔 수 없이 레일패스를 쓰지 않고 현금을 사용하여 전철을 탔다. 근데 레일패스를 발급받지 않고 왕복하는 건 너무 출혈이 크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왓카나이행 열차를 타고 올라가다 ‘아사히카와’에 내렸다. ‘아사히카와’는 레일패스를 발급받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역이었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레일패스를 발급받고 왓카나이행 다음 열차를 기다릴 겸 아사히카와에서 할 일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나는 일본 제국주의와 우익들의 사상이 농축된 ‘북진 기념관’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것이 이날의 두 번째 위기대응이었다.

   

  

북진기념관을 방문하다.

어쩌다보니 아사히카와에 내려 이 도시를 공부하게 되었다. 과거 이곳은 홋카이도의 계룡, 논산이었다. 일본군 제7사단이 주둔했던 곳이라고 한다. 제7사단은 홋카이도-사할린 지역의 방위와 러시아로의 북진을 위한 군대였다. 이들에 대한 역사도 공부하고 이를 바라보는 일본의 시각도 알아볼 겸 북진 기념관을 방문했다. 

    

‘북진’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언젠가 우리는 북진할 것이다. 아마 압록강-백두산까지. 문화 승리를 추구하든 정복 승리를 추구하든 선택지는 다르겠지만, ‘북진’이라는 방향성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맥락을 일본도 사용하고 있었다. 이들은 패전 이후 러시아 땅이 된 사할린과 쿠릴열도에 대한 북진의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일본은 러일 전쟁으로 독도, 사할린, 쿠릴열도를 점령했다가 패전 이후 다 뺏겼다. 그리고 현재 다시 이 영토 수복을 노리고 있다). 실제로 더블배럴 샷건에 맞아 죽은 아베는 외교승리와 경제승리 노선을 통해 이러한 북진을 시도한 바 있다. 당연하게도 푸틴은 이를 좌절시켰다. 이러한 일본의 제국주의, 우익들의 이데올로기가 담긴 곳이 바로 북진 기념관이다. 

    

북진 기념관에 들어가자 가이드분이 소속을 물어보셨다. 관람객 현황 조사를 위해서인 듯싶었다. 내국인/외국인, 남/녀, 연령 등을 물어보셨다. 한국인이라 하니 많이 당황하셨다. 이들이 당황했다는 것은 본인들도 여기가 특정 국가 국민에게 도발적이고 논란적인 장소임을 은연중에 알고 있었음을 의미하리라.     

이곳에서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욱일승천기(전범기)를 본듯하다. 일본은 특이하게도 독일과 달리 전범기를 사용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독일은 전후 주변 유럽 국가들과 정치-외교적, 특히 경제적 교류를 해야 했기에, 반성의 외양을 띌 수밖에 없었고 전범 행위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자기검열을 했다. 반면 일본은 당시 독일이 주변 유럽국과 추구해야 했던 관계만큼 동아시아 국가들과 경제교류를 할 필요성이 현저히 낮았다. 이후 일본은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이러니 일본은 욱일승천기(전범기) 사용과 전범 행위에 대한 반성의 수위가 낮을 수밖에 없었다. 핵을 두 방 맞으면서 전범국이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할 수 있는 기이한 정체성을 획득한 것도 이러한 행태의 원인 중 하나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사상이 일본의 전범 행위 반성 수위를 해석하는 프레임으로 사용될 줄이야.

      

외지인인 내가 보기에는 이곳은 역사 왜곡 기념관으로 보였다. 제7사단이 ‘홋카이도 전체를 위해 헌신했다는 것(아이누족을 몰아내놓고? 그렇다면 미국인들은 인디언들을 위해 헌신했나?)’, “일본군(7사단)은 비무장 상태였는데 갑자기 소련군이 공격해서 어쩔 수 없이 싸웠고 사할린과 쿠릴열도를 뺐겼다.(니들이 러일 전쟁 때 강제로 뺐은 땅들이잖아)” 등 어이없는 내용들이 가득했다. 그러면서 ‘역사 왜곡’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국내에 설립된 ~기념관 등도 외지인들이 보기에는 이렇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도 한국인이라는 태생적 한계로 외지인들이 보기에는 역사왜곡적 시각을 기반으로 세상을 보는 것 아닌가? 하고 말이다. 누군가는 식민지 근대화론자를 뉴라이트/친일파라 비판하지만, 누군가는 실증주의자, 경제역사학자로 지칭하기도 한다.

     

국내 역사 논쟁에서 어느 편에 서든 우리는 '북진'을 고민해야 한다. 또한, 언젠가 '북진'을 기념해야할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의 세력투사를 막기 위해 그리고 ‘우리의 북진’을 위해 당분간 일본과는 손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이들의 '북진기념관'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을 끝까지 의심해야 한다.


#홋카이도여행 #아사히카와 #북진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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