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의 여름 견문록
외국에 가면 그 지역 대학교를 방문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 지역의 역사와 사회, 경제의 근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한국은 워낙 지방 사립대가 난립해 있고 이상해서 논외). 홋카이도 대학은 굉장히 넓었다. 실제로 서울대보다 넓거나 그 이상이라 한다. 개인적으로 사회과학부를 가보고 싶었으나 홋카이도 대학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이공계열, 농업대학이 주력인 대학이라 그렇다. 그래도 노벨 화학상 수상자도 배출하고 작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가 방문해서 특강하고 있는 대학이었다.
홋카이도 대학 박물관은 특정 학과의 연구실과 연구실적을 볼 수 있게끔 구성되어 있던 것이 인상 깊었다. 홋카이도 대학의 역사와 비전 등은 당연히 예상했는데, 실제 연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 못 했다. 각 학과별로 어필하고 싶은 연구실적을 전시하고 각종 기념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내가 일본의 고등학생이라면, 이곳을 방문하며 홋카이도 대학 진학을 꿈꿨을 것 같다.
ps. 여기서 파는 아이스크림은 굉장히 맛있다. 홋카이도 지역의 낙농업은 홋카이도 대학과 뗄 수 없는 관계인만큼 홋카이도 대학이 이 아이스크림 맛의 지분을 상당 부분 맡고 있으리라.
나가는 길에 대학 기념품 샵을 방문했다. 개인적으로 대학교 굿즈를 왜 사는 지 잘 모르겠다. 특히 하버드, 예일, 스탠포드 등의 로고가 박힌 옷을 대체 왜 입는지 이해가 안 간다. 내가 서울대, 고려대 등의 옷을 입고 다니면, 무슨 학벌주의나 열등감에 쩔어 있는 사람이 되고 하버드, 예일 등의 옷을 입으면 패션이라니. 사대주의와 우매한 군중심리가 역겹게 섞여 있는 꼴이다. 그런데도 내가 홋카이도 대학의 후드티를 산 이유는 이 대학의 캐치프라이즈가 마음에 들어서이다.
국내 대학들의 캐치프라이즈는 제3자가 보기에는 좀 주접떠는 것 같다. ‘조국의 미래가 우리 대학’이라느니, ‘그대의 자랑이 우리 대학’이라느니. ‘우리 대학에 너를 걸라’느니, ‘우리 대학의 이름으로 전진하라’느니 등등. 그저 제3자가 보기에는 ‘정신승리’에 지나지 않으며 ‘알빠노’다. ‘위대한 게르만 민족!’과 문구상 다를 게 없다. 홋카이도 대학의 캐치프라이즈는 “Boys, be ambitious!”다. 덧붙이자면, “돈이나 이기심을 위해서도, 사람들이 명성이라 부르는 덧없는 것을 위해서도 말고. 단지 사람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추구하는 야망을”이다. 국내 주요 대학의 슬로건이 그저 그들끼리 피를 끓게 만든다면, 홋카이도 대학의 슬로건은 울림을 준다. 물론 ‘Boys’를 대명사를 쓴 점은 한계점으로 지적받을 수 있다. 뭐 그래도 당시 시대상의 한계라고 봐야겠지. 뭐 이를 다시 고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논쟁은 차치하더라도 이 슬로건이 주는 울림은 그 무게를 고수하고 있다. 홋카이도 대학의 설립 취지와 배경 그리고 역사를 알고 슬로건을 보게 되면 그 여운이 훨씬 오래 남는다. 홋카이도 대학은 그들의 캐치프라이즈대로 역사를 쌓아간 것일까. 그들의 캐치프라이즈가 그들의 역사를 쌓아가게 만든 것일까.
나는 홋카이도 대학 로고, 이니셜이 박힌 후드티가 아닌 그들의 정신이 담긴 후드티를 샀다.
아마 이번 여행 중 구입한 물건 중에 가장 울림이 큰 물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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