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처음 박물관 입사일이 2019년 5월 1일이다. 그 해 6월 1일이 개관일이니 창립멤버였다. 나는 5년 하고 6개월을 다녔다.
11월의 첫 날인 오늘은 박물관을 나온 지 8일이 되는 날이다.
퇴사를 한다고 사표를 내고 날짜를 조율하다 보니 10월 22일이 퇴사일이 되었다.
10월 8일부터 남은 연차 휴가를 썼으니 20여 일을 집에서 있었다.
나의 다른 직업은 그림책작가이다. 1년 중 한 권의 그림책 내는 것이 목표는 아니었는데 설정이 되어버렸다. 총 네 권의 그림책이 나왔으니 그렇다.
박물관 입사초기는 여태껏 머물렀던 다른 회사에 비해 바빠도 예술적인 부분에 고민을 많이 해야 해서 행복했다.
박물관이 앞으로 해나가야 할 전시에 대한 기초를 함께 다지고 함께 참여함으로써 구성원으로 자부심과 창의적인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다는 것은 나의 그림책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또한 신생 박물관의 모든 디자인 설정을 내가 만들 수 있었다. 물론 컨펌이 필요하고 동료들과 같이 의논했지만 먼저 제시하는 쪽이 나였기 때문에 재미있었다.
난 하루 종일 박물관에 대한 온갖 생각과 나의 예술적 가치를 접목시켜 아름다운 박물관을 만들어가고 싶었다.
그리고 난 박물관 개관 초기 박물관의 아이덴티티를 열심히 연구해서 기초를 다져주고 떠나려 했다. 시간이 계속 갔지만 여기저기 자꾸 해야 할 일들이 생겼다. 그러면서 열심히 열심히 정말 열심히 박물관을 위해 일해야만 했다. 어떤 동료가 그랬다. 내가 하는 행동은 박물관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라고 ㅎㅎㅎ
물론 내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퇴근 후 낮에 느꼈던 일들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체계가 잡혀야 할 박물관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학예실의 잦은 교체는 소모적이고 반복적인 바쁨으로 돌아왔다.
점점 전시에 대한 나의 관심은 행정적인 부분에 치우치기 시작했고 새로운 일을 시도하면 할수록 난관이 많아 새로운 일 자체를 시도도 안 해보는 수동적이고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사실 더 새로운 일을 제시하고 추진했어야 하는데 5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나 스스로가 귀찮다고 타협을 해버렸다.
무력해진 나 자신, 그리고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는 나를 보면서 자극이 필요했다.
사실 가장 중요한 건 체력이 떨어진 것이다. 1년에 한 권의 그림책이라는 압박감이 피곤한 상태의 나의 정신세계를 쪼아댔다.
난 박물관에서 정년을 하고 싶어 했다. 체력도 될 거라 생각했고 그림책작업을 하는데 다달이 들어오는 월급의 중요성도 알았다.
그냥 인생 편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도 했다. <천천히 가도 괜찮아> 그림책처럼 '천천히 하면 되지!' 하는 생각이 주였다.
그런데 어느 날 박물관에서 현실을 망각하고 있는 나에게 자극을 주는 일이 생겼다, 아팠다. 내가 깨어있지 않았다. 그 일은 후에 언급하겠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올 가을 겨울을 이렇게 수동적으로 살면 후회할 거 같았다. 앞으로 계속 아무 생각 없이 게으르고 멍청하게 살 거 같았다.
나 자신을 반성했다.
짝지의 허락이 필요했다.
그래서 박물관이 나랑 맞지 않다는 이야기를 매일 했다.
매일매일 박물관의 흉도 보았다. 관장부터 구성원까지 그리고 시스템까지 흉도 보았다.
사실 존경스러운 분들이고 가장 멋진 분들인데, 그 당시 벗어나고픈 나의 마음이 컸다.
허락해 줬다.
정말 많은 다양한 일이 있었다. 그 다양한 일이 서운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버릇처럼 아침에 절로 출근 준비를 하기도 하고…
아무튼 이제는 박물관을 잊기 위해 이 글을 정리한다.
어제부터 썼다가 지웠다가....
암튼 나 자신~ 수고했고 사랑스럽게 열심히 살았다.
그림은 박물관을 떠나면서 그린 위로의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