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퇴사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옹알이 Dec 10. 2021

개인이 삶의 이벤트를 선택하는 시대

[퇴사일기#19] 축의금 내고 얻은 오지랖의 자격

 최근 라디오에서, 회사에서 의무로 경조사비를 내야 하는 관습이 불편하다는 사연을 들었습니다. 나중에 돌려받는다며 아까워하지 말라고들 하지만 자신은 성소수자라 결혼이나 출산 계획이 없고 부모님도 안 계셔서 절대 돌려받을 일이 없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회사에 큰 애정이 있거나 친한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한 달에 몇 만 원씩 적지 않은 돈을 내는 게 아깝지만 기존 관습에 반발했다가 자신의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아웃팅과 같은 일이 생길까 봐 두려워 차마 말을 꺼낼 수 없다고 합니다.


 사연을 듣고서 돌려받지 못할 돈을 한 달에 그만큼씩 낸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까웠습니다. 저도 직장 다닐 때 원치 않는 회비를 꽤 내야 했습니다.


 요즘은 자신의 삶과 관련된 다양한 이벤트를 선택하는 시대입니다. 굳이 다른 사람이 사는 방식을 따르지 않아도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회사에서의 인맥으로 경조사를 챙기는 것이 인지상정으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달갑지 않습니다.


 세상이 변하고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 변하는 것처럼 회사 문화도 바뀌는 것이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보통 돈을 주는 사람만 손해라고 생각하는데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부담이 되는 경우가 분명히 있습니다. 저 또한 '저럴거면 축의금 내지 말고 닥쳤으면'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제 결혼식 때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저는 코로나 이전에 결혼해서 지인을 초대하고자 하면 마음껏 초대할 수 있는 시기였다는 것을 미리 밝힙니다.






 전(前) 직장에서 제 인생의 행사는 저만의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제 성격상 결혼식과 같은 개인적인 일에는 진짜 친한 사람만 초대하고 싶었으나 회사에 몸을 담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청첩장을 뿌려야 했습니다. 다니던 직장에는 그런 행동이 당연한(?) 관습이 있었습니다.


 청첩장을 모든 팀의 윗사람들한테 돌려야 했고, 그러지 않으면 대단히 인성이 나쁜 사람으로 간주되는 요상한 인식이 통용되는 회사였습니다. 그러니까 내 결혼식에 와달라는 초대장을 별로 부르고 싶지 않은 사람한테도 줘야 했습니다. 얼마나 불편했는지 모릅니다.


 과거 이웃끼리 서로 돕고, 직장 내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아름다운 풍습이 현재의 제게는 맞지 않았습니다. 원래도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편이라 전단지 뿌리 듯 돌리는 청첩장이 영 어색했습니다. 하지만 불편한 기색을 있는대로 내비칠 수 없으니 그냥 전에 결혼한 자들이 해왔던 대로 저도 청첩장을 나눠줬습니다.


 행사 이후 제게 축의금을 준 분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고자 답례품을 준비했습니다. 참고로 저와 남편은 각자 답례품을 준비해서 저는 제 몫만 챙기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보통 답례품이라 하면 호두과자나 정과를 많이 준비하는데, 저는 괜한 욕심으로 조금 더 성의를 보이고 싶었습니다. 유기농 쿠키와 수제 레몬티를 준비했는데, 가격은 좀 나갔지만 제 결혼을 축하해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가격에 대한 생각보다 잘 포장된 패키지가 예뻐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수제 제품은 배달이 조금 늦는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신혼여행 후 출근하는 주에 배달을 부탁했는데 중간에 공휴일이 껴있어서 예상보다 조금 더 늦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공휴일 하루 빼고 3일째 되던 날에 답례품을 전달하게 된 겁니다.


 이른 아침부터 무겁고 커다란 박스를 들고 통근버스를 타는 게 힘들었지만 제게 처음 있는 이벤트성 경조사에 마음을 보여준 이들에게 보답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뻐서 괜찮았습니다. 같은 팀부터 답례품을 돌렸습니다. 포장부터 내용물까지 고급지다며 좋아해주는 팀원들을 보며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내 기분 나쁜 이야기가 제게 들려왔습니다. 타 팀의 관리자가 제 결혼식에 축의를 했는데 제가 답례품과 감사 인사를 안 챙겼다고 제 동기를 불러다 혼을 냈답니다.


 돈 받고 인사도 안 오는 건 경우 없는 행동이 아니냐며 '제'가 아니라 '제 동기'를 불러다 혼쭐을 냈다는 얘길 듣고 기가 찼습니다. 심지어 이 얘기를 동기에게 들은 것도 아닙니다. 다른 관리자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온데만데 제 얘기가 돌고 있다는 말이었죠. 그 관리자는 3일을 못 기다려서 제 뒷얘기를 하고 다녔습니다.


 신경 써서 답례품을 준비했고 감사의 마음을 담았으면 더 담았지 덜지는 않았습니다. 공휴일이 껴서 어쩔 수 없이 하루 늦게 배송된 답례품을 출근 3일째 되는 날에 전달하게 된 것인데 그날 아침에 저런 얘기를 들었으니 기분이 몹시 나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따지고 보니 그 관리자는 제 결혼식에 와준 사람이 아니라 축의금만 5만 원, 다른 사람 손에 들려 보낸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그분이 그 봉투에 5만 원과 함께 얼마나 큰 마음을 담았는지 저는 모릅니다. 금액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책정할 생각도 없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제 결혼식을 축하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돈 받고 인사도 안 오는 건 경우 없는 행동이 아니냐'라고 말했을까요. 그 관리자의 악담은 사내 메일로 돌지 않았다 뿐이지 많은 사람들의 귀로 전달됐을 겁니다.


 제 결혼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멀리서 와준 사람들, 결혼식에 와서 자리를 채워준 사람들, 결혼식 사진에 찍혀준 사람들까지. 답례품을 받았네 마네 하는 얘기는 일절 꺼내지 않았습니다. 딱 그 관리자 한 명뿐이었습니다.







 사실 그 관리자와는 가까운 사이가 아닙니다. 그 관리자도 회사 풍습에 따라 제 경조사를 챙긴 것뿐일 겁니다. 그런 사람이, 본인이 축의금을 냈다는 이유로 제 행실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매우 무례한 일입니다. 결국 그는 축의금 내고 얻은 오지랖의 자격으로 저를 욕하는 게 즐거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은 제가 신입일 때 "신입 때는 일을 잘하는 것보다 사람들이랑 잘 어울리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충고를 해준 사람입니다. 저는 원래도 회사의 보이지 않는 규율이 불편한 사람이었고, 열심히 노력하던 찰나에 그런 충고를 들어서 매우 당황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일을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결국 인간관계로 제 자질이 평가된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생각하는 꼰대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이 때다 싶어 제 행실을 물고 뜯은 것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정말 기분이 많이 나빴습니다.


 그 관리자가 속해있는 팀에 답례품을 전달하러 가면서 처음으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이 딱 오전 근무 4시간 동안만 입을 닫고 있었다면, 저는 제가 준비한 답례품을 기쁜 마음으로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제게 직접 얘기한 것도 아니고 제 동기를 불러다 말한 것도, 오전에 업무가 밀려서 오후에 답례품을 전달하게 된 것인데 마치 '답례품은 커녕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할 줄 모르는 파렴치한 사람'으로 제 욕을 하고 다닌 것도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저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대상이 되어 불쾌했습니다.


 이럴 거면 축의 하지 말고 제 뒷얘기도 하지 말지 그랬냐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습니다. 그는 바로 4시간 전에 제 욕을 줄기차게 해댔으면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답례품을 받아갔습니다. '허울'이라는 단어도 아까운 인간관계였습니다.






 이 일을 겪고서 개인의 이벤트성 경조사를, 굳이 회사에서 맺은 허울뿐인 사람들과 챙기는 문화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는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에게서 받은 축의금은 이미 본질을 잃었습니다.


 그 관리자는 제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한 게 아니라 기존 관습에 따라 돈을 내고서 불만을 표한 사람일 뿐입니다. 축의금을 낸 자격으로 제 인성과 자질을 욕하는 것을 즐겼을 뿐입니다. 이런 관습이 과연 아름다울까요. 이런 관습이 의미가 있을까요.


 경솔했던 그 관리자의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번번이 상처 받는 스스로가 싫었습니다. 결혼은 어른이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어린 나이가 아님에도 언제까지 아랫사람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앞으로 얼마나 '평가받는 경조사'를 치러야 할지 생각하며 답답함에 숨이 컥 막혀왔습니다.


 좋은 일, 힘든 일에 서로의 마음을 보태어 응원하는 아름다운 관습은 지금의 회사에서는 적용되기 어려운 문화인 것 같습니다. 애초에 예의상 청첩장을 뿌려야 하는 문화부터 잘못된 일입니다. 제 청첩장은 오토바이에서 뿌리는 전단지가 아닙니다.


 요즘은 개인이 삶의 이벤트를 선택하는 시대입니다. 허울뿐인 인간관계를 피곤해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관습도 시대를 따라가야 합니다. 본인의 경조사에 진심으로 축하해줄(혹은 슬퍼해줄)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문화도 따라와야 합니다. 소모적인 관계로 스트레스를 받을 바에야 한 푼도 안 받겠습니다.


 기능과 의미를 잃은 관습은 이미 낡아버렸습니다. 낡은 관습을 생각 없이 따르는 것이 사내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이끌지 못하는 것을 직면할 때가 왔습니다. 아름다운 관습이 아름다운 의미를 지녔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물론 회사 사람이라고 모두가 허울은 아닐 겁니다. 회사에서도 깊은 관계의 사람들은 알아서 진심을 전달해줄 겁니다. 그러니 본인이 원하는 사람을 본인의 경조사에 초대할 자격은 최소한으로라도 주어지는 게 맞습니다. 언제까지 잘 알지도 못하는 윗사람까지 챙겨가며 청첩장을 뽑는 게 맞다고 말할 수 있나요.


 자신의 경조사가 평가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한번뿐인 소중한 날은 충분히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함께하기에도 부족합니다. 제게는 소중한 날을 함부로 평가하지 마십시오.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 생각보다 별거 없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