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퇴사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옹알이 Dec 21. 2021

기성세대에게 고합니다

[퇴사일기#21] 요즘 것들의 문제

"요즘 젊은 애들은 적응하려는 의지가 없어."

 퇴사 의사를 밝히고 얼마 후, 제 빈자리를 충원하기 위한 지원 공고가 올라갔다는 이야기가 나온 자리에서 팀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팀장님끼리의 대화에서도 '요즘 청년들의 의지박약'이 주된 화제라고 합니다.

 또 고스펙 지원자들이 막상 회사에 입사하면 적응을 못해서 퇴사한다고 합니다. 본인 잘난걸 알아서라나요. 그래서 고스펙의 지원자는 오히려 지원서 검토 단계에서 떨어뜨린다고 했습니다.
 예전에 본 어느 다큐멘터리에서는 우리나라의 젊고 똑똑한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현상에 대해 다뤘습니다. 외국인의 시선으로는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였습니다.

 공무원 시험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큰 가능성으로 많은 잠재력을 가진 인재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추구하며 공무원이 되는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미래의 주역이 될 인재들은 어째서 공무원 시험을 선택하는 것일까요.
 얼마 전 엄마와 대화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S대 씩이나 나와서 농사를 짓는 게 말이 되냐'는 것이 주제였습니다.

 저는 엄마의 생각을 통해 기성세대의 생각을 엿보았습니다. 힘들게 뒷바라지했더니 그 스펙은 일절 쓰이지 않는 농사일을 선택하는 게 말이 되냐며, 부모를 생각한다면 그럴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얘길 들으며 저는 S대에 가지 못해서 조금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할 수 있었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스펙의 사회초년생들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퇴사하는 일, 똑똑한 젊은이들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일, 청년들이 학력이나 전공과 관계없는 일을 선택하여 행복을 찾는 일. 과연 이 모든 현상이 청년들의 정신머리가 잘못된 문제일까요? 기성세대는 '요즘 것들의 문제'라고 질타할 자격이 있을까요?


저는 퇴사 후, 제가 속해있던 직장의 문제점에 대해 글을 쓰며 이 사회를 다시 보게 됐습니다. 집단에서 나오니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바라본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많이 부족했습니다. 청년들만 나무랄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경험한(그리고 주변으로부터 들은) 회사 생활만 봐도 그렇습니다.





 개인의 노력과 성과보다는 여전히 사내정치에 따른 진급과 이득이 만연합니다. 업무 시간에 효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여 퇴근해도 야근을 하지 않으면 열정을 인정받지 못합니다. 의미 없는 야근은 성실함의 척도로 둔갑합니다.


 업무보다 인간관계가 더 힘든 사회초년생이 대부분입니다. 업무에 집중하고 싶어도 사람에 치이느라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의욕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욕을 가지라고 강요합니다.


 주 52시간 근무제 등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 나왔지만, 교묘하게 시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제대로 감사하는지 확인이 불가능하고 신고자 보호도 미흡할 가능성이 커서 아마 신고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겁니다.


 허울뿐인 사규는 근로자와 기업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지 못합니다. 현실적인 부분이 반영되어 개정되기는커녕 허울만 존재하여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복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챙기는 행동이 '이득만 따지는 이기적인 요즘 것들'로 평가되고 무조건적인 순응을 요구합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육아휴직은 '환상 속의 동물' 비슷한 존재입니다. 소문으로 분명히 들었는데 실체하지는 않은···. 소신껏 육아휴직을 썼다가 진급에서 밀리고 다른 사람들의 질타를 받는 것은 개인의 선택에 대한 책임으로 치부됩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도 문제점이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S대를 나와 농사를 선택한 청년이 과연 자라면서 농사일을 접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까요?


 우리나라의 입시는 지나치게 목표 지향적이고 경쟁적인 게 특징입니다. 학생 개개인의 적성과 관심보다는 오직 점수와 등급만으로 학생을 판단합니다.


 마지막으로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사회분위기도 한몫한다고 봅니다. 부모 입장에서 자식이 고생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가 바라는대로 산다고 자식이 행복할까요?


 추울 때 추운데서, 더울 때 더운데서 일하는 게 고생이더라도 본인이 성취감과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 그 직업을 지속할 원동력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아무리 부모여도 자식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습니다.





 이 시대의 청년들은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밭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밭 자체가 별로면서 자라날 새싹을 나무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는 변하지 않으면서 언제까지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개인의 역량 부족'이라는 무게를 지울 셈인가요. 언제까지 내몰 것인가요.


 사내 문화를 개척하여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누가 더 술을 잘 먹느냐'보다 실력과 성과로 업무를 평가하는 게 타당합니다.


 그들의 워라밸을 존중하며 쓸데없는 야근으로 의욕을 깎아내리는 것은 불합리한 일입니다. 노동법이나 복지와 관련된 부분은 정부가 개입하더라도 근로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합니다.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일방적인 경쟁과 평가를 적용시킬 것이 아니라 많은 선택지를 경험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직업의 귀천을 따지기 보다 본인이 생각하는 성취와 자부심이 중요한 가치라 가르치고 그들의 생각을 존중하는 어른이 많이 필요합니다.


 기성세대가 고민하고 개선해나가야 하는 문제는 명백히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외면하여 편안함에 안착하는 것은 명백한 태만입니다. 비난을 하려거든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태도와 노력부터 보인 다음에 하는 게 맞습니다.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사회 분위기와 인식을 개선하기에 이제 막 유입된 청년들의 힘은 부족합니다.


 제가 이 글을 계속 쓰는 이유도 이 사회가 변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이미 고착된 사회 분위기를 손바닥 뒤집 듯 바꿀 수는 없겠지만, 지금과 같이 알리고 문제점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서서히 바뀔 수 있는 문제들입니다.  


 기성세대에게 고합니다. 준비되지 못한 밭에서는 아무리 좋은 새싹도 자랄 수 없습니다. 기반을 다진 것에 안주하는 자세보다 더 나은 환경을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간이 왔습니다. 사회초년생의 힘듦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사회가 변화할 때가 왔다는 신호입니다.


 요즘 것들의 문제에 대해 나무라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방법입니다. 어렵지만 함께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기성세대가 나무라는 요즘 것들에게, 날이 선 평가와 차가운 시선보다 너그러운 아량과 따뜻한 믿음을 품고 대해준다면, 분명 잘 적응하여 한 사람의 몫을 훌륭히 해낼 수 있을 겁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전을 싫어하는 저는 패배자인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