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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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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옹알이 Jan 04. 2022

어른을 위한 원더랜드는 존재할까요?

[퇴사일기#23] 회사에서 개인을 수용하는 것

 온 세상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는 날. 아이들이 스스로를 착한 어린이라 말하는 날. 산타만큼 부모님이 바쁜 날. 흰 눈까지 내리면 낭만에 취해버리는 날.


 종교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1년 중 가장 기다리는 날은 단연 크리스마스입니다. 예전에 TV에서 런던의 크리스마스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영상을 보고서 '언젠가는 런던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보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매년 기다려지는 날입니다.


 춥지만 사람들이 부대끼는 거리는 반짝입니다. 그들의 입에는 미소가 걸려있고 추운 날씨에도 참을 수 없는 기쁨이 하얀 입김으로 퍼집니다. 눈에 보이는 반짝이 장식과 조형물은 크리스마스를 녹여놓은 듯 아름답습니다.

 어떤 가게에서는 캐럴을 조금 크게 틀고 그 흥겨움이 문밖으로 흘러나와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만듭니다. 평소 무채색의 옷을 즐겨 입는 사람도 그 분위기에 취해 밝은 색 옷을 입습니다. 빨간색과 초록색과 하얀색이 가장 인기가 좋습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크리스마스'하면 떠오르던 풍경입니다. 하지만 현재, 그 따뜻한 설렘은 어디로 갔나요. 크리스마스를 앞둔 2021년의 끝자락, 캐럴을 들으면서도 분위기가 나지 않습니다.


 작은 바이러스가 변이하고 확산되는 바람에 설레는 크리스마스는 사라졌습니다. 분위기를 즐기러 나갈 수도 없고 무섭습니다. 사람들의 미소도 마스크에 가려 볼 수 없습니다.


  기다리던 날이 기다리던 만큼 설레지 않는 것은 왜 때문일까요. 나이를 먹은 탓일까요, 코로나 블루인 가요.


  퇴직하고 처음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를 이런 식으로 아스라이 보낼 수 없습니다. 웬디가 피터팬과 함께 원더랜드를 찾아 나서 듯, 저도 크리스마스를 찾아 나서야겠습니다. 이제 크리스마스의 풍경은 환상이 돼버린 걸까요?






"OO 씨는 10년 후에 뭐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이 회사에 남아 있지는 않겠죠?"


 회사 선배가 제게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미주알고주알 미래 계획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아서(사실 소문이 날까 봐) 웃어넘겼는데, 생각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저도 꿈꾸는 미래가 있습니다. 그 꿈을 굳이 회사 선배에게 알리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막연하지만 분명 지금 이 직장을 계속 다니지 않을 거란 확신은 있었습니다. (실제로 퇴사를 했으니 확실해졌습니다.) 물론 그 계획을 입 밖에 내기에는 조심스러웠지만요.


 어릴 때는 늘 해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에 성적 잘 받고, 대학에 진학하여 취업에 성공하고, 연애를 하다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는 것. 이와 같은 사회적 침묵의 룰을 잘 따르면 마치 '정상적'으로 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평범함을 추구하는 경향의 사람이라 되려 편했습니다. 잘 따라가기만 하면 정상인처럼 보였고, 부족함 없이 평범하게 사는 것처럼 비춰졌으니까요.


 그 룰에 적응하여 보통 사람처럼 직장에 다니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어째서인지 인생이 불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러다가 원더랜드를 상상했습니다. 어딘가에는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도 벌고 내가 원하는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 '어른을 위한 원더랜드'가 있지 않을까.






 현실이 힘들 때면 상상 속에 사는 것이 좋았습니다. 언젠가는 빛날 인생이, 나를 위한 원더랜드가 있으리라 믿으며 눈앞의 업무를 해치웠습니다. 가끔 지칠 때면 퇴근 후 맥주 한 캔을 원료 삼아 버티곤 했습니다.


 원하는 컨셉의 카페를 차릴까. 책을 좋아하는 사촌 동생과 함께 독립서점을 내는 건? 글로 돈을 벌 수 있으면 좋겠다. 내 글이 사랑받고 사람들에게 위로가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늙어서는 글 쓰는 할머니가 되어야지···.  


 적성에 맞는 일을 했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다수의 우리네 인생이 그러하듯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최선인 회사 생활이 대부분일 겁니다. 직장과 직업에서 자아성찰과 적성을 따질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은 마음 한 구석의 결핍을 만들었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자아성찰, 적성, 가치관을 따질 수 있을까요? 각 단어의 뜻을 검색해서 하나하나 살펴보다가, 결국 현실적으로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직 이 사회는 직장인 개개인에게 관심을 가질 필요성을 모를뿐더러 그런 시스템이나 역량이 없기 때문입니다.


 종업원은 갈아치우는 부품과 같아서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 효율을 끌어내는데 급급합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주어진 권리와 복지는 무시하고, 회사에 몸과 마음을 바쳐 일하길 원하면서 정작 아플 때는 내칩니다.


 개인이 가지는 자아성찰, 적성, 가치관 등의 골치 아픈 문제를 들춰내기보다는 획일화된 생각을 주입하여 관리하기 편하도록 만듭니다. 여기에 따르지 못하는 사람은 '튀는 존재'로 만들어 고립시킵니다. 마치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잘못한 것처럼 말입니다.





 가끔 의심하기도 합니다. 어른을 위한 원더랜드는 존재할까요? 과연 그런 미래가 있긴 할까요. 사라져 버린 크리스마스의 풍경과 같이 환상 속의 존재일까요.

 

 그런 의심이 생겨도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은 명백하기에 계속 꿈을 꾸고 싶습니다. 아직은 여력이 없어서 그렇지 사회가 조금 나아진다면, 종업원 개개인의 특성과 꿈에 대해 주목할 필요성을 느끼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다보면 어른을 위한 원더랜드를 발견하는 날이 오리라 기대합니다.


 그 원더랜드에서는, 어른들 모두 자신의 적성과 가치관에 맞게 일하면서 돈도 벌고, 일과 삶의 균형을 잘 맞추고, 자아성찰과 같은 인간 고유의 사색을 즐기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만들어 가고 있을 겁니다. 모두가 행복하게 일하는 사회가 만들어질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잠시 잃은 크리스마스의 풍경은 언젠가 돌아올 겁니다. 지금은 방법을 찾지 못해 잠시 잃었을 뿐이지 언젠가는 모두가 알던 그 크리스마스를 다시 맞이할 수 있을 겁니다. 아름답던 크리스마스의 풍경이 환상이 아니라 믿으며 언젠가 '어른을 위한 원더랜드'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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