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옹알이 Mar 08. 2022

쓰는 일상에 대하여

마라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퇴사 후 글을 쓰기 시작한지 어느 7, 주력으로 밀고 있는 [퇴사일기]에는 20여 편의 에피소드를 업로드 했다.


 구독자 수가 늘지 않아서 고민이다. 이럴 때면 '내 글이 재미없나?'부터 '홍보가 잘못되고 있나?'하는 생각까지 별별 생각이 다 든다.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초조한 것이다.


 나는 느린 사람인데다 꼼꼼한 편이라 글을 쓰면서 꽤 많은 시간을 소모한다. 한 편의 에피소드를 완성한 후 업로드까지 최소 5번은 퇴고를 한다. 그러니 일주일에 1편을 올리는 것이 할 수 있는 현상 유지의 최선이랄까.


 또 글이라는 것이 앉아 있는 시간과 비례하여 결과물이 나오는 건 아닌 것 같다. 타고난 성품으로 꾸준히 글을 쓰러 나가지만 어떤 날은 2시간 동안 한 문단도 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날인가 지인을 만나 글을 쓴다고 말했더니 어떤 글을 쓰냐고 물었다. 그래서 퇴사 후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를 쓴다고 대답했다.


 그는 내게 '팔리는 글을 쓰는 건 아니네.'라고 말했다.


 웹소설이나 극본 같은 걸 써보라는데 사실 자신이 없었다. 나는 너무 평범하고 소박하고 잔잔하고 안정적인 사람이라 그런 아이디어가 없다. 또 경험해보지 못한 일은 상상하기 어려워하는 편이다. 굳이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하는 타입이랄까.


 그와의 대화 후 얻은 것은 내 소망과 현실 사이의 쓰디쓴 간극 뿐이었다.





 내 글은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책을 낼 만큼 필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재미가 담긴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겪는 아주 평범하고 소박하고 잔잔하고 안정적인 이야기다.


 그래서 이목을 끌지 못 하는건가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 내가 가진 게 적어서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누구를 탓하겠는가. 게다가 나조차 내가 쓰는 글에 기대감이란 색안경을 끼고 순수하게 읽어내지 못하면서 독자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것은 놀부 심보가 아닌가.  


 예전에 상담 치료에서 선생님이 그랬다. 나는 돈을 벌면서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이라고. 그래서인지 금전적으로 쫓기는 상황이 아님에도 내가 글을 쓰는데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계속 의문이 든다.


 퇴사 후 쓰고 싶었던 글을 원없이 쓰면서도 만족감보다 초조함을 느끼는 이유가 그 의문에서 시작된 스스로를 향한 의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근에 5개의 공모전에 도전하여 딱 한 작품만이 '가작'으로 당선됐다. 상장도 상금도 없었지만 내가 쓰는 글의 가능성을 인정 받은 것 같아서 기뻤다. 반면에 공모전에서 떨어진 나머지 글들은 마치 물거품으로 사라진 인어공주와 같은 사라졌다.


 존재했는지 아닌지 흔적도 없는 글. 나만이 기억하는 글. 이걸 계속 쓰는 게 맞는 걸까.





 시간과 노력을 들였으니 당연히 결과물을 바라는 게 인간이다. 성과가 없으니 초조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계속 쓰고 있다. 나라는 인간은 쓰는 인간인가보다.


 생각해보면 누구도 내 글을 비난하지 않았다. 공모전에서 당선되지 않았을 뿐이지 내 글이 물거품처럼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실은 내 태블릿에 저장되어 있다. 다른 사람의 눈에 당선될만한 글이 아니었을 뿐, 내 글은 계속 거기에 저장되어 있다.


 내가 쓴 글들은 꾸준히 쌓여가고 있었는데 내 마음이 요동쳐서 그것들을 부정한 것이다.  


 내가 쓴 글에게 의미와 가치를 심어줄 사람은 바로 나다. 생각해보면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은, 훗날 돌아봤을 때 지금 이 시간이 의미없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단 한명의 독자라도 내 글을 읽고 위로 받길 바래서였다. 하트의 갯수나 댓글, 당선이 목적이 아니었다.


 해소할 수 없는 갑갑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으로 글을 쓰는 순수한 기쁨을 잊었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한거다.






 그런 와중에도 계속 쓰는 일상을 보낼 것이다. 아니, 그러고 싶다. 알 수 없는 무력감과 미지의 결과 속에서도 계속 써나가는 것은 내가 쓰는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타고 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쓰고, 결국엔 쓰는 일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끊임없이 쓰고, 쓰고, 쓰면서 살아갈 것이다.


 내가 원했던 일이다. 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계속 상기시키면서 다리가 풀려 널부러진 나를 어루고 달래어 계속 달리게 해야한다.


 마라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낙엽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