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읽고 있는 책은 문장이 화려하지만 마음 속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저자의 슬픔과 고뇌와 외로움을 감히 내가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인가 보다.
지금의 나에게는 오히려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채 있는 힘껏 팔랑거리며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저 존재가 더 안쓰럽다.
저 존재는 떨어지는 두려움과 찬란히 빛나던 순간이 져버린 슬픔을 느끼지 못할텐데.
어째서 내가 두렵고 슬픈 것일까.
맨 다리에 스치는 바람과 한기가 계절이 또 바뀌었음을 알려준다.
계절이란 서서히 오기 마련인데 어째서인지 가을은 늘 내게 손바닥 뒤집 듯 찾아온다.
예상치 못한 이별이 손바닥 뒤집 듯 찾아온 그 날 처럼, 울다 자지러지고 쓰려졌다 일으켜지길 반복했던 그 계절.
나의 유한한 슬픔은 아직 그 시절에 머물러있건만 위대하고도 무한한 자연은 그런 작은 것에 의연치 않는다.
언제나처럼 제 할일을 할 뿐 일일이 다독여주지 않는다.
잔인함과 덧없음은 나에게만 해당된다.
그러니 저 존재가 두렵거나 슬프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고 내가 두렵고 슬픈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반복되는 이 계절의 아름다움을 서서히 느끼는 날이 올까.
공허하고 진득한 그리움보다 낯선 상쾌함이 내 볼에 먼저 닿는 날이 올까.
찬란히 빛나다 져버리는 낙엽이 더 이상 안쓰럽지 않은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