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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가비 Feb 20. 2023

블로거에게 문학상을 준다면

수필의 맛에 관하여


아리아나 그란데는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미국의 팝 가수입니다. 한 인터뷰에서 음악상을 받은 일에 관해 아리아나 그란데에게 질문을 던졌어요. 그때 아리아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들은 그래미상을 탄 적도 없고, 빌보드차트 1위를 해본 적도 없어요. 그런 것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해요."

 (해당 인터뷰 영상은 유튜브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https://youtu.be/WW1TIzOYOyo)


스치듯 가볍게 본 영상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브런치에 글을 쓰겠다고 결심한 순간에 불현듯 저 답변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어떤 유사성을 발견했습니다. 아리아나 그란데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들처럼, 제가 작년에 가장 좋아했던 글들도 문학상을 받은 작품들이 아니었거든요. 그것들은 문학가의 작품보단 블로거의 수기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겁니다. 하지만 블로그에 쓴 글도 수필의 연장선이라면, 그들도 수필가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할 수만 있다면 수필 문학상을 드리고 싶은 분들이 있는데요, 실제로 상을 드리진 못해도 마음이라도 드리고 싶어서 그분들을 간단하게나마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네이버 블로거로 활동하시는 두 분이에요.


그중 한 분은 딸 셋을 키우는 아버지인데, 현재 택배기사로 일하고 계십니다.

이분의 블로그를 알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어요. 저는 다량의 택배를 보낼 일이 있었고, 이런 작업은 처음인지라, 어떻게 택배를 보내야 하는지 네이버에 검색해보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다 검색에 걸려서 이분의 블로그 포스팅을 보게 되었죠.


이분은 전혀 다른 직종에 종사하다가, 도시를 벗어나 가족들을 데리고 양평으로 귀촌하고, 택배기사로 전업하셨습니다. 그 다사다난 우여곡절을 꾸준히 블로그에 기록해두셨어요. 제가 클릭한 글은 블로그에서 꽤나 최근 글이었는데, 역주행이라고 하죠? 저는 시간의 역순으로 그 분의 글을 홀린 듯이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모니터도 아닌 휴대폰으로 말이죠. 꽤 시간이 흐르자 슬그머니 눈이 아파왔지만, 저는 글을 읽는 걸 멈출 수가 없었어요. 그만큼  흡입력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흡입력이 있었는지, 저는 펑펑 울기까지 했어요.

글을 읽다가 울어본 경험이 언제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나세요?

저도 어렸을 때는 책을 보다가도 잘 울고 그랬는데,

성인이 되고 나서부턴 잘 그러지도 않아요. 에이, 다 큰 어른이 누가 책을 보다가 울어. 영화도 아니고.

심지어 문학을 전공하고, 글을 쓴다는 저도 이래요. 그런데, 이분의 블로그를 읽어나가다가 눈물이 났어요. 그것도 두 번이나.

왜 그렇게 울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슬퍼서 운 건 아니었는데.


정확히 헤아리긴 어렵지만, 그때 제 마음을 돌아보자면 이랬던 게 아닐까요? 그분의 삶에 깊이 빠져들자니, 도무지 그 삶이 남 일 같지 않고,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처럼 애틋해서. 그래서 눈물 났던 것 같아요. 세 딸과 아내를 책임지는 40대 남자, 가장이라는 이름의 무게.


중년이 되어 새 도전을 시작하는데, 그 도전이라는 것이 젊을 적만큼 낭만적이지 않고, 맞닥뜨린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들은 계속 나타납니다. 고마워할 일은 반드시 나타나고 나는 도움 받고, 그래도 넘어지고, 그리고 다시 일어섭니다. 삶이 그래요. 우리가 겸허해질 때, 비로소 책임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만할 때는 큰 책임을 지고 있어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합니다.

그분의 블로그를 보면서 마음이 정화되는 것만 같았요. 울어서 좋았어요.


수필의 힘은 정직함입니다. 모든 예술의 힘은 정직함에서 나와요.

그리고 수필은 표현에서도 직접적이고 솔직한 방식을 선택합니다.

소설은 가면 뒤에 숨어 위장할 수 있지만, 수필에는 숨을 곳이 없습니다.

그러니 수필은 일종의 고백입니다.

어두운 방에서 하는 고해성사가 아니라 훤한 대낮의 광장에서 낯선 이에게 건네는 자기 고백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수필'이란 발가벗은 영혼으로 쓰인 글입니다.


얼마나 행운인지, 이 세상엔 좋은 수필이 참 많습니다. 다른 분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분은 요리 전문 블로거입니다.

딸 둘을 다 키워놓으신 중년 여성이신데, 한때는 식당 운영도 하셨다고 해요.

국내에선 잘 소개되지 않는 이국적인 요리 레시피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요리에 대한 애정으로 쌓아온 지식을 블로그에서 풀어내고 계세요. 저는 레시피를 찾다가 그 블로그를 알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포스팅 알림이 오도록 구독은 해뒀지만, 한참을 댓글도 달지 않고 눈팅만 해왔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상엔 하고많은 요리 블로거들이 있는데, 나는 왜 이분의 블로그만 구독하고 있을까? 이분은 나에게 무슨 이유로 특별할까?'


전 그분의 레시피를 딱히 따라 하는 것도 아니고, 구경하는 재미라면 유튜브에서 보는 요리 영상이 낫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데, 살며시 그 이유를 알 것 같더라고요.

 '나는 그 분의 인간적인 면모가 좋고, 그 성품이 좋은 거구나' 하고 말이에요.

그분의 일상 글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이 좋고, 요리 지식을 전하는 글에 남겨진 사견, 그분의 사족이 매력적이어서 지금까지 그분의 글을 쭉 좋아해 왔구나. 이제는 이해가 되었어요.


딱 한 번, 그분의 글에 댓글을 단 적이 있어요.

"썬드라이토마토"를 만드는 레시피에 질문을 남겼어요.

그동안 블로그  보고 있다는 인사 댓글 한번  적도 없으면서, 저는 뻔뻔하게 정보를 얻어가려고 질문을 대뜸 던졌습니다.

그러자 마음 넉넉한 분들이 베푸는 인정이 그러하듯, 친절하고 성실한 답변이 달렸습니다.  고마웠어요. 비록 제가 결국 썬드라이토마토를 만들어보지도 않았지만 말이에요. 만약 만들어봤다면, '이렇게 시도해봤어요!' 하고 댓글이라도 다시 달아봤을 데 말이죠.

 이후로그분과 특별히 더 소통하지 않아도, 그분의 친절을 기억하고 있기에  더욱 정다운 기분이 들었어요. 그분의 포스팅이 올라오면 괜스레  반가웠고요. 그러다 어느 , 이분이 근황을 전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암으로 먼저 하늘로 떠났다고요.


담담하게 적어 내려간 글엔 떠난 사람을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느껴졌습니다. 35년간의 결혼생활, 그 세월이 느껴지는 옛날 사진도 함께 걸렸고요.

이후로도 이분은 떠나고 남은 사람들이 계속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하고 계십니다.

살뜰한 두 딸과 즐겁게 잘 지내는 이야기,

요즘도 따뜻한 애정으로 만드는 요리 이야기,

혼자 맞이하는 결혼기념일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떠난 사람이 아직 살아있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는 이야기도 말입니다.


수필은 우리에게 위안을 선물합니다. 그리고 슬픔도 선물해요.

정직하게 쓰인 수필을 볼 때, 우리는 슬픔을 맛보고, 그 뒤에 따라오는 위안도 맛봅니다.

삶이라는 요리엔 다양한 맛이 나는데, 슬픔도 위안도 맛의 한 표현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수필들은 한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삶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그런데 괜찮아요. 결국 괜찮더라고요."


이렇게 말하는 글들은 살아갈 용기를 줍니다.

제가 브런치에 글을 쓰겠다고 결심한다면, 꼭 한 가지는 스스로 물어보고 싶습니다.


"나는 무엇보다 정직할 수 있나요?"


그 물음에서부터 글은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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