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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가비 Feb 20. 2023

내 이름은 산타



초등학교 1학년. 제 장래 희망은 산타클로스였습니다.

들리는 것보다 꽤 진지한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산타클로스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던 나이였어요. 사실 저는 태어나서 한번도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어본 적이 없습니다.


4살 무렵, 산타클로스에 관한 추억이 있어요. 그 당시에 저는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았고, 친언니가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어요. 언니가 다니는 유치원에선 크리스마스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땐 엄마들이 유치원 일손을 도와서 크리스마스 행사를 직접 준비해야 했어요. 둘째를 달리 맡겨둘 곳이 없었던 엄마는 언니 유치원에 저를 데려가야만 했고, 저는 그렇게 엄마 손에 이끌려 그곳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유치원 행사에선 산타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 선물을 주는 이벤트가 있었어요. 저는 유치원 소속은 아니었지만, 어른들의 배려로 선물은 제 몫까지 준비가 되었습니다.


제 순번이 되자, 하얀 턱수염을 기르고 빨간 옷을 입은 산타 할아버지가 저를 안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쁘게 포장된 선물 꾸러미를 내밀었죠. 나지막한 목소리는 '허허허…' 하고 할아버지처럼 웃었는데, 그 웃음소리는 어색하게만 들렸습니다. 그때 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언니네 유치원 원장 선생님이 왜 갑자기 딴사람 흉내를 내지? 조금 우습지만, 모르는 척해 줘야겠다.'


그래서 저는 선물을 받고 말했습니다.


"산타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원장 선생님 품을 뛰쳐나와 선물 포장을 뜯었습니다. 그건 크레파스였어요. 저는 실망했습니다. 제가 바라던 선물이 아니었거든요. 저는 바로 며칠 전에 받고 싶은 선물을 적어서 산타 할아버지한테 편지까지 썼는데 말이죠!


편지를 쓸 때도 전 이미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산타클로스에 대한 아이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하얀 거짓말을 하거나 이벤트를 벌이는 건 쓸모없다고 생각하셨거든요. 그래서 크리스마스가 되면, '뭐가 필요해?'하고 직접 자녀들에게 물어보셨죠. 그리고 '되도록 실용적인 것'을 강조하던 분들이셨어요. 제가 바라는 것들이 그리 실용적이지 않다고 판단되면 당신들이 생각하기에 '꼭 필요한' 것들을 선물해 주시곤 하셨답니다.


그래서 저는 '다 알면서도' 굳이 산타에게 편지를 쓰기로 결심한 거였어요. 보여주기식으로 말이죠. 엄마 아빠가 사주시는 걸 알지만, 그래도 이렇게 산타클로스에게 편지를 쓰면 '혹시 내가 바라는 선물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하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믿지도 않는 산타클로스를 이용할 만큼 영악하달까 조숙한 아이였죠. 그런데, 결과적으론 아무 반전도 없었습니다.


자, 그런 해프닝이 있고서, 몇 년이 흘러 저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어떤 열망을 품게 되었어요. 순진하고 순수한 열망이었죠. 같은 반 친구들 모두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씩 해주고픈 바람이 생겼어요. 중요한 건, 아무도 모르게 익명으로 선물해야 한다는 거였죠. 그 동기는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 비롯되었어요. 아침에 등교한 친구들이 예상치 못한 선물을 책상 서랍에서 발견한다면 다들 얼마나 기뻐할까! 이런 생각을 하니까 가슴이 벅차올랐거든요.


그래서 저는 계획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선물은 문방구에서 살 수 있는 간단한 문구류 위주로 준비할 생각이었어요. 그때 제가 받던 일주일 용돈은 떡꼬치를 네 개 사 먹으면 없어질 정도의 금액이었습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떡꼬치를 한 개도 사 먹지 않고 돈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걸로는 반 친구들 선물 40개를 준비하기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받던 용돈 외의 부수입이 필요했어요.


칭찬스티커를 모아서 보너스를 타내야 했었죠. 저는 부지런히 집안일과 심부름을 도맡아 했고, 받아쓰기 시험을 백점 맞았습니다. 틈만 나면 엄마한테 조르르 달려가서 '나 심부름시킬 거 없어?'하고 물어봤죠. 그렇게 보너스를 모아도 크리스마스까지 40명 친구들의 선물을 모으는 건 무리일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이 프로젝트에 친한 친구들을 동참시키기로 합니다. 두 명의 친구가 산타 프로젝트에 가담했고, 우리는 함께 선물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12월이 되었고, 어느 토요일, 저는 선물 포장을 하고 있었어요. 선물을 담아놓은 까만 비닐봉지가 있었는데, 저는 엄마한테 '절대로' 이걸 열어보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죠. 산타 프로젝트는 부모님 비밀이었어요. 부모님은 분명 '너는 또 쓸데없는 짓을 벌이는구나'라고 말하실 게 분명했거든요. 그래서 선물이 가득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숨기고 싶었던 건데, 제가 포장을 하다 말고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는 사이, 우려하던 일이 생겼어요. 엄마가 그 봉지를 열어본 거였죠. 엄마는 혼을 내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게 다 뭐야? 어디서 났어?"


저는 산타 프로젝트를 설명했어요. 엄마의 반응은 예상대로였죠.


 "왜 그런 쓸 데 없는 짓을 하니?"


저는 풀이 죽었어요. 엄마가 다 관두라고 할까 봐 겁이 났죠. 만약 그렇게 되면, 함께 선물을 준비하던 친구들한테는 어떻게 설명하지? 싶었어요.

다행히도 엄마가 그만두란 말을 하진 않았어요. 그래도 저는 조금 실망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가 몇 달 동안 열심히 해온 일이 전부 무의미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날 , 이부자리에 들어서 형광 스티커별이 붙은 천장을 보는데, 산타 프로젝트고 뭐고  그만두고 싶어졌어요. 하지만 제가  일에 끌어들인  명의 친구가 생각났어요. 친구들 때문에 이제 와서 그만둘 수는 없는 일이었죠. 만약 혼자서 하는 일이었다면 그쯤에서 그만뒀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산타 프로젝트는 멈추지 않았고,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겨울 방학식 날, 우리 셋은 계획대로 아침 일찍 학교에 갔어요. 그리고 친구들 서랍에 하나씩 선물을 넣어두었죠. 반 친구들이 하나둘 도착했어요. 그들은 서랍에서 선물을 발견하기 시작했죠. 우리는 절대 산타가 아닌 척, 흐뭇하게 속으로만 미소 지었어요. 친구들 얼굴에 떠오른 기뻐하는 표정들이 정말이지 저를 너무 행복하게 했어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중에 도착한 담임선생님이 아침에 일어난 해프닝을 알게 되죠.

담임선생님은 엄숙한 얼굴로 교실을 둘러보며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니? 누가 했는지 자진해서 일어나."


우리 세 명의 산타 눈빛을 마주치며 긴장했어요. 갑자기 나쁜 짓을 저지른 기분이 되었죠.

선생님은 다시금 자진신고를 하라며 다그쳤어요. 우리는 불안해졌죠.

뭘 잘못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우리 셋은 슬그머니 의자에서 일어났어요.


선생님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어보셨어요.


"왜 이런 행동을 했니?"


나머지 산타 둘이 저를 쳐다봤어요. 이 일의 주동자인 제가 대답할 차례였죠. 저는 말했습니다.


"그냥…친구들이 기뻐할 것 같아서요."


선생님은 희한하다는 얼굴을 하고 다시 물어보셨습니다.


"그게 다니?"


저는 그렇다고 말했어요.


선생님은 그저 이유가 알고 싶었을 뿐이라며 우리를 자리에 앉히셨습니다. 그리고 별다른 말 없이 방학식이 시작되었죠. 방학식이 진행되는 동안 전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내년에 이걸 또 하는 건 안 될 것 같아.'하고 말이에요. 그렇게 산타 프로젝트는 처음이 곧 마지막이 되었답니다.


이것이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있었던 사건이에요.

산타가 되고 싶었던 아이가 잠시 산타가 되어봤다가, 우여곡절 끝에 산타 직을 내려놓은 사건.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그 순수함과 조숙함이 내면에 공존하는 모습을 발견할 때, 어른들은 종종 놀라워하잖아요.

제 어린 시절을 돌아봐도 그런 것 같아요.

어릴 적에 남은 산타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몰라도

저는 지금도 크리스마스를 무척 좋아합니다.

길거리에서 크리스마스 장식이 보이고, 캐럴이 들려오면 마구 행복해져요.

크리스마스가 마치 한해의 두 번째 생일인 것처럼 마음이 설렙니다.

그러다 가끔은, 산타가 되고 싶었던 그 아이가 기억 속에서 떠오르기도 해요.


그때 그 아이는 어른들의 이해를 받지 못해 실망하고 풀이 죽었을지 모르지만,

그 애를 이해해주어야 할 어른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저 자신이라는 사실을 지금 깨닫습니다.


전 그 아이를 아끼고 사랑합니다.

그 애는 얼마나 사랑스러운가요.

산타 프로젝트를 준비하던 그 아이들은….

그들의 순수한 동기를 이해하기에 저는 마음으로 그 아이들을 꼬옥 껴안습니다.


이 얼마나 좋은가요.

저는 이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어울리는 나이가 되었고

덕분에 산타가 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열려있습니다.

아이는 자라서 이렇게 어른이 되었고

그 어른의 내면에 그 순수한 아이가 살아있고

크리스마스는 매년 돌아오고

기쁨은 계속됩니다.

오늘 내 이름은 산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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