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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쪼 Sep 26. 2024

사자

7~8. 변화

7.

최는 곧 폭발할 것 같았다. 천이 이 집에 온 이후 최는 좀처럼 연와 닿지 못했다. 연의 주위에는 언제나 천이 있었다. 천은 아침에 연을 발견하자마자 입을 맞추고, 식사 전에, 식사 후에 그릇들을 싱크대로 옮기며 다시 입을 맞추었다. 소파에서 TV를 보거나 잠시 폰을 볼 때도 둘의 몸은 늘 포개어져 있었고, 연의 방에는 천의 물건이 여기저기에 놓여 있었다. 연과 단둘이 이야기라도 하려고 연의 방 앞으로 가면 문손잡이에는 어김없이 빨간 팻말이 붙어 있었다.


거실 소파에서 연의 양옆에 박과 최가 앉아 있어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천은 소파 밑에 앉아 연의 다리를 쓰다듬거나, 손바닥과 손등, 허벅지에 입을 맞추었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천은 씩 웃어 보였다. 선전포고 같은 것이 아닌 단순한 눈인사였다.


천이 갓 입주했을 때, 연은 다른 하우스 메이트들의 눈치를 보며 천을 밀어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연도 천을 거부하지 않았다. 최는 기분이 묘했다. 우리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많은 규칙을 지키고 있는데 천은 이 규칙들에서 열외인 사람이 되어버렸다. ‘저 사람은 원래 저러니까’ 하면서 모든 것을 용인하게 만드는 사람. 최는 생각했다. 결국 규칙을 지키는 나와 박만 우스운 꼴이 되는 게 아닐까?


연와 박이 데이트를 한 날 밤, 최는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최도 연과 단둘이 데이트를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짬이 나지 않았다. 오늘은 박이 연의 방에 들어가겠군. 하지만 최가 물을 마시러 주방에 나왔을 때, 연과 천이 서로 입을 맞추는 것을 보았다. 최는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이런 일을 당한 건 박이지만 왠지 자신이 모욕을 당한 듯한 느낌이었다.


다음 날 아침, 최는 주방으로 나왔다. 연은 이미 일어나 찬장에서 인스턴트커피를 꺼내고 있었다. 최는 연에게 다가갔다. 어젯밤, 그런 식으로 박을 배신한 연이 야속했지만 오랫동안 연에게 닿지 못했으므로 오늘은 연와 붙어 있고 싶었다. 연은 몸을 돌려 최를 안았다. 최는 마음이 약간 녹아내렸다.


그 순간, 박이 연의 방에서 나왔다. 최는 어리둥절했다. 어제 분명히 박은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여.”


박은 웃으며 최에게 인사했다. 최도 반사적으로 박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은 연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러고는 찬장에서 컵을 꺼내려는 연의 고개를 돌려 입을 맞추었다.


연은 당황해 뒷걸음질했다. 하지만 박은 연을 놔주지 않았다. 둘의 입술이 떨어졌다가 다시 붙고, 서로의 고개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였다. 키스가 길어질수록 박은 더 연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리고 주춤주춤 걸어 다시 연의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나 지금 커피…….”


연이 간신히 입술을 떼고 말하려 했지만 박은 듣지 않았다. 잠시 후, 연은 박의 파자마 속에 손을 넣었다. 두 사람은 주춤주춤 방으로 이동하다가 최와 어깨를 부딪혔다. 박은 최를 보며 악의 없이 웃었다. 이게 무슨……. 최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8.

이 집에는 많은 규칙이 있다. 지난 1년간 연은 이 규칙들을 깨본 적이 없다. 아, 생각해 보니 이 규칙을 깬 적도 있었다. 다른 하우스 메이트들이 집을 비우고 그들 중 한 명만 집에 남아 있을 때, 그러면 일요일 낮이어도 연은 옷을 벗었다.


연은 회사에서 일하다가 토요일 밤과 일요일 낮에 한 섹스를 떠올렸다. 주말 내내 박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연은 박에게서 간만에 긴장감을 느꼈다. 박을 떠올리니 온몸이 뜨거워졌다. 그러고 보니 박과 최를 갓 만났을 때도 이렇게 긴장되고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다. 언제 손을 잡을까? 언제 키스할까? 언제, 어떤 식으로 옷을 벗을까?


처음부터 이 집에 이렇게 규칙이 많지는 않았다. 박과 최를 만나기 전, 연은 전 연인과 지금 사는 집에서 동거하고 있었다. 전 연인은 꽤 와일드한 스타일이었고 둘은 언제나 집에서 엉켜 있었다. 방에서, 주방에서, 소파에서, 현관에서, 복도에서, 욕실에서……. 그리고 어느 날, 박이 하우스 메이트로 들어왔다. 둘은 처음에는 정중하게 서로를 맞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집 안 분위기는 냉랭해졌다. 둘은 언제든 연을 차지하려 했고 상대가 싸움을 걸어주기만을 기다리는 느낌이었다.


연은 두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그 즈음, 연은 최를 만났다. 최는 갈등을 싫어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젠틀한 사람이었다. 연은 호수같이 잔잔한 매력을 가진 최에게 끌렸다. 최가 이 집에 들어오고 연은 무의식적으로 최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연의 가장 오래된 연인은 이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박은 달랐다. 박은 기 싸움을 멈추고, 모든 것을 수용하고 배려하기 시작했다. 하우스 메이트들 사이에 암묵적인 규칙이 생겼다. 박과 최는 빠르게 적응했다. 연의 가장 오래된 연인만이 이 규칙들을 인정하지 않고 집을 떠났다.


이렇게 이 집이 안정되나 했건만…… 천이 하우스 메이트로 들어오고 모든 것이 바뀌었다. 천은 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존재하는 모든 규칙을 간단히 뛰어넘어 버렸다. 곧 박도 규칙들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예전에는 규칙들이 생기면서 안정감을 느꼈는데 연은 그 규칙들을 마구 어기는 박에게 다시 설레기 시작했다.


어제 정말 좋았는데.


연은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회의실로 이동하면서, 메일함을 열면서, 탕비실에서 커피를 내리면서, 연은 자신에게 다가와 입을 맞추고 옷을 벗기던 박을 떠올렸다.


연은 박에게 카톡을 보냈다.


‘집중이 안 돼.’


박에게서 1초 만에 답장이 왔다.


‘나도. 오늘 몇 시에 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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