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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쪼 Nov 18. 2024

신 2

기도를 마쳤지만 김운경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김운경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지금, 작업실로 가야 한다. 이렇게 연락이 끊기면 표절 사실을 들켜서 잠적했다고 생각할 거다. 당장 작업실에 가서 보이스톡이든 뭐로든 오해를 풀고, 저쪽에서 들이민 증거를 충분히 반박해야 한다.


김운경은 숨을 참고 발로 바닥을 밀었다. 다리에 힘을 줄 때마다 허리가 찌릿찌릿했지만 디스크가 터져서 죽나 오명을 쓰고 사회에서 매장당하나 죽기는 매한가지였다. 온몸으로 바닥을 쓸며 이동하니 어느덧 책상 위에 얹어놓은 노트북이 보였다. 김운경은 책상 옆으로 가 노트북에 꽂아놓은 충전 선을 살살 잡아당겼다. 노트북이 책상 밖으로 반쯤 튀어나왔을 때 팔을 뻗어 노트북을 받을 생각이었다.


예수가 눈을 감았다. 동시에 작업실에 불길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삐이이이이이이이.


“뭐야? 뭔데?”


정체불명의 소리는 노트북에서 나오고 있었다. 김운경은 허겁지겁 팔을 뻗어 노트북을 잡았다. 허리가 따끔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김운경은 입술을 꽉 깨물고 노트북을 배에 올려놨다. 그 순간, 불길한 소리가 멎더니 화면이 검은색으로 변했다.


“뭐야? 이거 왜 이래?”


김운경은 스페이스바를 눌러봤다. 하지만 노트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전원이 꺼졌나? 이번에는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충전 선을 뺐다가 꽂았다. 자판을 마구 두드렸다. 노트북을 접었다 폈다. 하지만 김운경이 무슨 짓을 해도 노트북은 켜지지 않았다. 김운경은 자판을 퍽퍽 내려치며 말했다.


“뭐야! 이거 왜 이러는데!”

“제가 준 건 이렇게 돌려받았습니다.”


예수는 이렇게 말하고 김운경의 곁에서 물러섰다. 할 일을 모두 마쳤다는 몸짓. 부처는 예수의 뜻을 읽었다. 부처는 사뿐사뿐 걸어 예수가 비워준 자리에 섰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눈을 감았다. 김운경이 욕을 하며 자판을 내려치고 있었지만 부처는 동요하지 않았다.


몇 분 후, 작업실에 카톡 알림음이 울렸다.


‘리트머스에서 추가 메일이 왔습니다. 네 번째, 두 번째 작품도 표절인 것 같으니 해명…….’


미리보기 메시지는 여기까지였지만 김운경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명확히 알았다.


“아아아아아아아!”

“제가 준 것도 이렇게 돌려받았습니다.”


부처가 미소를 지으며 예수에게 말했다. 예수는 부처에게 미소로 답했다.


“부처여, 아니면 예수여, 제발 저를…….”

“집이 참 넓고 좋군요.”


부처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 예수는 부처의 시선이 닿는 곳을 보았다. 꼭대기 층이어서 그런가, 창문 너머로 서울숲 전체가 보였다. 그러고 보니 하와이의 세컨 하우스도 해변 바로 앞에 위치해 있었다.


예수는 부처의 뜻을 이해했다. 예수와 부처가 아니었다면 김운경은 이것들을 가질 수 없었을 거다. 물론 18개국의 출판사와 각종 제작사에서 위약금을 청구하면 이것들을 모두 팔아도 모자라겠지만, 만에 하나하는 게 있다.


“그럼 조금만 손을 보지요.”


예수가 먼저 눈을 감았다. 바닥의 타일과 콘크리트가 요란하게 갈라지며 커다란 가로 크렉이 생겼다. 부처가 눈을 감았다. 천장과 벽이 갈라지며 커다란 세로선이 온 집을 질렀다.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큰일이 벌어지면 몸도 정신도 회로가 멎어버린다. 김운경은 눈동자를 천장에 고정한 채 집이 갈라지는 걸 보고만 있었다. 이거, 실화인가?


그때 김운경의 눈앞에 있는 책장이 기우뚱 기울었다. 평소라면 두 팔로 얼굴이라도 가렸겠지만 거대한 불행 앞에 김운경은 완전히 얼어버렸다. 김운경은 필사적으로 눈만 질끈 감고 죽음을 기다렸다. 글을 쭉 쓰지 못하면 말년에는 굶어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일찍 책장에 깔려 죽을 줄이야.


귓가에 굉음이 울리고 바닥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김운경은 전혀 고통스럽지 않았다. 차에 치인 순간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던데, 그게 이런 걸까? 아니면 나 이미 죽었나? 김운경은 살그머니 눈을 떠봤다. 눈앞에는 책장 대신 갈라진 천장이 있었고, 책상은 동선을 비틀어 김운경의 팔 바로 옆에 엎어져 있었다.


“실수입니다. 계산을 잘못했군요.”


예수는 부끄러운 듯 웃었다. 부처가 웃으며 말했다.


“화가 많이 나신 줄 알았습니다.”


부처와 예수는 농담을 오래 하지 않았다. 둘은 다시 눈을 감았다. 해변에 위치한 하와이의 세컨 하우스에 바닷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중 주차되어 있던 김운경의 미니쿠퍼가 슬금슬금 미끄러지더니 지바겐에 부딪쳤다. 김운경이 성수에서, 마포에서, 강남에서, 용산에서 딜레마존을 지질지질 달리는 영상들이 담당자들의 눈에 들어왔다. 총 9명의 담당자가 김운경에게 7만 원짜리 쿠폰을 보냈다. 김운경은 몸을 움직일 수 없으므로 고지서를 발견했을 때에는 과태료가 더 불어나 있을 것이다.


부처가 눈을 뜨니 예수가 물었다.


“취업을 도와주신 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부처는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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