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읽는 성경 - 누가복음(1)
누가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선은 늘 경계선 밖을 향해 있다. 사회구성원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메시지가 누가복음 전반에 녹아 있다. 착한 사마리아인, 세리 삭개오, 돌아온 탕자 등 다른 복음서에서 볼 수 없었던 비유와 이야기. 예수께서는 당시 혐오의 대상이었던 자들을 환대해야할 이웃으로 역전시키셨다. 예수를 따르고 섬겼던 여자들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여성들의 지위가 낮았던 사회문화적 배경을 생각하면 파격적인 분량이다.
누가복음 15장에는 다른 복음서에 없는 세 가지 비유가 나온다.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는 목자,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 잃어버린 한 아들을 찾는 아버지. 누가는 이 비유를 통해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간절함, 그리고 그들을 되찾았을 때의 기쁨을 묘사한다.
[눅15: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눅15:9]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눅15: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이 비유는 예수께서 바리새인, 서기관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들은 예수가 이방인, 여성, 세리, 나병환자, 사마리아인 등 사회적 약자나 혐오의 대상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식사하는 것이 불편했다. 당시의 사회적 관점으로는 ‘부정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혐오의 대상을 규정함으로써 자신들의 ‘의로움’을 드러내고자 했다.
[눅5:30-32] 30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3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눅15:1-3]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그러나 예수께서는 국적도, 인종도, 성별도, 직업도 차별하지 않았음을 누가는 자세히 기록했다. 자신에게 오는 모든 이들을 환대하셨다. 예수 앞에서는 더러운 사람도 깨끗한 사람도 없다. 그 분은 우리 모두를 잃어버린 어린 양처럼 불쌍히 여기시며 구원하길 원하셨다. 하나님의 본질은 율법이 아니라 사랑이며, 우리에게 필요한 의로움은 환대이지 혐오가 아니다. 아주 작고 하찮아 보이는 존재라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누가복음은 시작부터 여성의 존재가 두드러진다. 세례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대표적이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였을 때에 성령이 임하고 메시아를 보내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넘친다.
[눅1:41-42] 41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42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눅1:46-48] 46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48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이 땅에 그리스도가 오기 위한 준비 과정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맞이할 때도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자격을 갖춘다. 예수가 정결예식을 위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왔을 때 시므온이 그리스도를 알아봤고, 또한 안나라는 여자 선지자가 예루살렘의 구원을 예언한다.
[눅2:36-38] 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마지막으로, 여성들은 예수의 사역에도 적극 후원하고 참여했다.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해 예수를 따르던 여성들은 그들의 소유로 예수와 제자들을 섬겼다. 또한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고 숨지시는 순간까지 여성들이 그 자리에 함께 했으며, 예수 부활의 첫 증인도 여성이었다. 예수님의 구원 사역에 있어서 여성들이 소외되지 않았으며, 어떤 영역에서는 남성들보다도 강한 존재감을 나타냈다.
[눅8:2-3] 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3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눅23:26-28] 26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눅24:1-2] 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한국 사회에도 혐오와 차별의 언어들이 가득하다. 젠더, 세대, 국적 등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수용하기 보다는 비난하기에 여념이 없다. ‘나’의 이익과 가치관이 ‘너’보다 소중하고 올바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행복을 쫓는데 몰두하고, 방해가 되는 존재들은 제거해버리고 싶은 욕망이 우리 사회를 지배한다. 결국 혐오와 차별은 내 이웃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가 하는 문제다. 내 이익에 기여하는 이들을 이웃으로 볼 것인지, 성별, 나이, 국적에 관계없이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이웃으로 볼 것인지.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대상에는 차별이 없다고. 가진 것을 사회적 약자들과 나누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그러니 그리스도인들은 이웃을 차별없이 환대하며 소외된 자들을 위해 베풀고 섬기는 삶으로 혐오의 시대를 거룩하게 건너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거룩함을 닮아, 아직은 겨자씨만한 하나님 나라가 세상 속에서 더욱 확장되기를 바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