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용기> 폴 틸리히
용기는 삶의 특별한 순간에 필요하거나 발휘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거나, 실패를 딛고 다시 도전한다거나, 사랑 고백을 하는 경우처럼요.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용기는 매일, 매순간 필요하다고 말이죠.
삶은 문제와 고난의 연속입니다. 어려운 문제를 풀고 고난을 헤쳐나가는 일은 머리로만 되지 않아요. 미로의 심연 속에서, 실패와 절망의 벼랑 끝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꿋꿋이 나의 삶을 긍정하며 사는 일. 그 자체가 용기입니다. 지금, 이 곳에 “존재할 용기”를 통해 매일매일의 삶을 이끌어 갑니다.
<존재의 용기>의 저자, 폴 틸리히는 용기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용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자기 긍정, 즉 자아가 자신을 긍정하려는 것을 방해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지는 자기 긍정이다.
모든 인간은 ‘불안’을 안고 살아갑니다. 우리의 존재와 삶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죠. 틸리히는 불안의 원인을 세 가지로 구분하는데요. 죽음과 무의미함, 죄의식입니다.
모든 인간은 죽음을 맞이하지만, 언제 어떻게 그 순간이 닥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불안합니다. 삶이 공허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존재 가치를 부정하기도 하고요. 인간의 양심은 우리가 가진 악한 본성과 죄를 경계하며 질책하죠. 죽음, 무의미함, 죄의식은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비존재’들입니다.
“존재할 용기”는 이러한 존재의 불안을 끌어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의 가치를 인정하고 미래를 긍정하는 것입니다. 절망을 거부하는 태도에요.
불안은 우리를 용기의 방향으로 돌아서게 하는데, 그것 외에는 절망밖에 없기 때문이다. 용기는 불안을 자기 자신 속으로 이끌어 들임으로써 절망을 거부한다.
우리가 삶에서 가지는 용기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공동체의 일부로서 자신의 가치를 긍정하고 책임을 다하는 용기입니다. 예를 들어 가족의 행복, 기업의 성공, 국가과 국민의 안전 등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행동할 수 있는 힘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의 고유한 가치관과 특성을 긍정하는 용기 입니다. 사회적 관습과 통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죠.
폴 틸리히는 이 두가지를 ‘일부로서 존재할 용기’,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할 용기’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 용기들은 우리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 데 있어서 한계가 있습니다. 공동체에 집중하면 개인의 고유성이 훼손될 수 있고, 자기 자신에게만 몰입하면 내 삶을 유지시켜주는 공동체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일부로서 존재하려는 용기 - 만일 그것이 급진적으로 발휘되면 - 는 집단주의 내에서 자아의 상실을 가져오는 원인이 되고,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려는 용기는 실존주의 내에서 세계의 상실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를 마지막 장에서 제기하는 질문으로 이끌어 준다. 두 가지 유형의 용기를 모두 초월함으로써 두 용기를 통합하는 존재의 용기가 있는가?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폴 틸리히는 “존재할 용기”의 근원을 “존재하게 하는 힘”에서 찾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존재하게 하는 근원적인 힘 곧, “신”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신”은 특정 종교의 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이 정의하고 규정할 수 없는 “궁극적 근원, 초월적이며 절대적 존재(God above God)”으로서의 신입니다.
“존재할 용기”는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신”이 우리 존재를 긍정하고 받아들여준다는 사실을 믿음으로써 가능합니다. 죽음, 무의미함, 죄의식이 주는 불안을 끌어안으면서도 믿음을 통해 자기 긍정의 용기를 발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죠.
믿음은 하나의 견해가 아니라 어떠한 상태이다. 그것은 모든 것을 초월하고 그 속에 모든 것이 참여하는 존재의 힘에 사로잡힌 존재의 상태이다. 이러한 힘에 사로잡힌 자는 자기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데, 이는 존재 자체의 힘이 자신을 긍정한다는 사실을 그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아갈수록 ‘용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있기에 이 책을 손에 들었는데요. 뒷 부분으로 갈수록 읽기가 어려웠습니다. 철학과 신학의 내용이 난해하고 논리적인 상관관계도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요. 그렇지만 인간은 왜 늘 불안해야 하는 지, 용기가 왜 중요하고 어떻게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지에 대한 저자의 통찰은 흥미로웠습니다.
꼭 신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으로부터 살아갈 용기를 얻는 것 같습니다. 가족이든, 친구들이든 또는 자연이나 동물도 될 수 있겠지요. 그러니 혹시 주변에 “존재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들을 훈계하거나 교육하지 마세요. 그들의 마음과 감정을 인정하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라고 말해주세요. 우리는 쓸모 있어서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기 때문에 가치있는 존재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