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읽는 성경 - 고린도전서
최근 드라마 제목 중에 가장 내 눈길을 끈 것은 ‘손해 보기 싫어서’. 제목을 참 잘 지었다고 생각했다. ‘손해보지 않는 삶’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가 되었음을 콕 짚어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공정’이란 단어는 ‘능력주의’에 가깝다. 각자가 가진 성장 배경이나 환경에 관계없이 시험 성적에 따라 줄을 세우는 공정. 그래서 누군가 특혜를 받거나, 사회적 배려를 받는 것에 대해 민감하다. 나의 이익이 침해당하는 것, 내가 손해 보는 것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를 읽으며 ‘손해 보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손해 보기 싫은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조금 달라야 하지 않을까?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유대인의 핍박을 견뎌내며 직접 개척한 교회다. 바울이 떠난 이후, 고린도 교회에는 교회 분열과 함께, 다양한 신학적-윤리적 문제들이 불거졌다. 그래서 바울은 이 문제들을 바로 잡기 위해 고린도 성도들에게 직접 편지(고린도전서)를 쓴 것이다.
‘고린도’ 지역은 로마 제국 중앙에 위치하여 오늘날로 보면 뉴욕, 상해, 서울과 같은 대로시로서 교통과 무역, 상업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경제적인 부가 상당히 축적된 지역이며 경쟁과 성공, 신분상승에 대한 욕망이 가득했던 곳이다. 도덕적 타락도 심각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와 가장 닮은 곳이다.
고린도 교회도 도시의 문화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교회 안에서 권력과 명예를 얻으려는 성도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지지하는 사도들을 내세워 분열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성령이 아닌, 육신을 따르는 일이라며 질책한다. 또한 분열하는 자들을 ‘왕 노릇하는 자’로, 바울과 같은 사도를 ‘사형수, 어리석은 자’로 비유하며 성도들의 교만한 모습을 지적한다.
[고린도전서 3:3-4, 새번역]
3 여러분은 아직도 육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시기와 싸움이 있으니, 여러분은 육에 속한 사람이고, 인간의 방식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4 어떤 사람은 "나는 바울 편이다"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나는 아볼로 편이다" 한다니, 여러분은 육에 속한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고린도전서 4:8-10, 새번역]
8 여러분은 벌써 배가 불렀습니다. 벌써 부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를 제쳐놓고 왕이나 된 듯이 행세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진정 왕처럼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왕노릇 하게 되면, 좋겠습니다. 9 내가 생각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인 우리를 마치 사형수처럼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로 내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세계와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 것입니다.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지만,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약하나, 여러분은 강합니다. 여러분은 영광을 누리고 있으나, 우리는 천대를 받고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십자가의 능력’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수치와 모욕을 당함으로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정말 바보 같고 어리석은 행동으로 보이겠지만, ‘섬김과 희생’이야말로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18, 새번역]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연약하고 보잘것없지만 하나님에게 속한 자들을 통해 세상에서 강하고 잘난 체하는 자들, 교만한 자들을 심판하실 거라고 한다. 스스로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자랑하며 교회를 분열시키는 자들에 대한 바울의 경고다.
[고린도전서 1:27-29, 새번역]
27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셨으며,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28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셨으니 곧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29 이리하여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바울은 성도들 간에 자신의 의와 명예를 내세우며 손해보지 않으려는 태도도 지적한다. 하나님을 따르는 성도로서 손해 보더라도 서로를 품어주고 양보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6:7-8, 새번역]
7 여러분이 서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부터가 벌써 여러분의 실패를 뜻합니다. 왜 차라리 불의를 당해 주지 못합니까? 왜 차라리 속아 주지 못합니까? 8 그런데 도리어 여러분 자신이 불의를 행하고 속여 빼앗고 있으며, 그것도 신도들에게 그런 짓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의 메시지는 지금의 한국 교회와 성도들에게도 꼭 필요한 말씀이다. 세상의 욕망과 성공의 가치가 교회문화와 신앙생활을 장악했다. 교회가 돈과 권력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세상을 변화시킬 십자가의 능력은 잃어버렸다. 십자가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준 ‘섬김과 희생’에 있다. 나의 이익과 성공을 향해 달리는 삶이 아니라 , 이웃을 위하여 섬기며 손해 보는 어리석은 삶이 생명을 살린다.
[고린도전서 10:31-33, 새번역]
31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32 여러분은 유대 사람에게도, 그리스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교회에도, 걸림돌이 되지 마십시오. 33 나도 모든 일을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게 하려고 애씁니다. 그것은, 내가 내 이로움을 구하지 않고, 많은 사람의 이로움을 추구하여, 그들이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손해보지 않는 ‘공정’의 가치가 중요해진 시대에 손해 보는 삶은 정말 바보 같다. 하지만 이웃을 섬기는 행동이 더 바보 같을수록,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더 커지지 않을까? 그리스도인에게 ‘공정’은 능력과 소유에 따라 부를 축적하는 사회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며 함께 행복한 공동체를 만드는 가치여야 한다. 세상의 가치관을 대담하게 거스르는 멋진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질 때,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의 능력도 회복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