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세대> 조너선 하이트
스마트폰 사용이 자녀의 성장과 발달에 좋지 않다는 것을 부모는 직감한다. 하지만 갈수록 스마트해지는 세상에서 무작정 사용 금지를 외칠 수도 없다. 나도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며 언제부터 핸드폰을 사용할지, 스마트폰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꼬리를 무는 고민의 연속이었다.
<불안 세대>는 스마트폰과 SNS 등 디지털 세계가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인 데이터와 함께 소개한다. 동시에 현실 세계와 디지털 세계 사이에서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성장하기 위해 가정과 학교, 그리고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아이들이 성장기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놀이’다. 혼자가 아니라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자유롭게 놀아야 아이들은 성장한다. 놀이를 통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규율과 규범을 학습하며, 갈등과 문제해결 과정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통해 아이들은 사회적 역량을 키운다.
놀이를 통해 어린 포유류는 어른으로서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을 배우며, 그것도 신경세포들이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배운다. 즉, 위험이 낮은 환경에서 성공과 실패로부터 피드백을 받는 반복 활동을 통해 배운다
아이들이 상처를 참고, 감정을 조절하고, 다른 아이의 감정을 읽고, 차례를 지키고, 갈등을 해결하고,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는 법을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활동은 감독을 받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가 주도하는 놀이이다. 아이들은 본질적으로 이러한 기술을 습득하려는 동기를 느끼는데, 놀이 집단에 끼이길 원하고 놀이를 계속 즐기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시간이 줄었다. 부모 없이는 혼자서 놀이터도 마음대로 가지 못한다. 친한 친구가 되려면 부모님부터 서로 친해져야 한다. 아이들의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놀이가 사라지고 있다. 학교-학원-집을 오가는 루틴 속에서 놀 꺼리는 스마트폰뿐이다.
심리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부모가 자녀에게 자율성을 덜 부여하기 시작한 이유를 몇 가지 지적했는데, 그중에는 도시가 점점 더 자동차 중심적이고 현대적으로 변해감에 따라 일어난 도시 설계의 점진적 변화도 있었다. 이와 관련이 있는 한 가지 요인은 20세기 후반에 사람들이 느낀 사회적 응집성 감소였는데, 여기에는 많은 원인이 있다. 사람들이 이웃끼리 서로 모르고 지내게 되자, 아이들을 지켜볼 수 있는 어른들의 시선인 ‘거리를 바라보는 눈들eyes on the street’이 사라졌다. 하지만 1980년대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아마도 부모들 사이에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이 자녀에게 위협 대상이라는 두려움이 커진 것이 아닐까 싶다.
책의 저자가 지적하는 아동 양육 문제의 핵심은 “현실 세계에서의 과잉보호와 디지털 세계에서의 과소보호”이다. 부모들은 집과 학교 바깥에서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놀 수 있는 기회는 적극적으로 통제하는 반면, 스마트폰과 SNS 속에서는 자녀들이 무엇을 경험하는지도 모르고 방임한다. 요즘 아이들이 건강한 사회적 역량을 키우지 못학고 ‘불안 세대’가 되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의 증가와 전국적인 과잉보호 광풍 때문에 고립된 아동과 청소년은 날로 늘어나는 인터넷 가능 기기에 눈길을 돌리기가 더 쉬워졌고, 이 기기들은 더 매력적이고 다양한 보상을 제공했다. 그러면서 놀이 기반 아동기가 끝나고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가 시작되었다.
‘불안 세대’는 1996년 이후 태어난 Z세대의 특징을 일컫는 말이다. 불안장애, 우울증 등 정신 건강이 악화된 지표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특히 2010년대 초반 십대들의 정신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는 추세를 보이는데, 이는 스마트폰 및 소셜 미디어 플랫폼의 확산 때문이다.
나는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왜 많은 나라에서 Z 세대(그리고 일부 후기 밀레니얼 세대)의 정신 질환 비율은 증가한 반면, 나이가 더 많은 세대들은 그 추세에서 벗어났는가에 초점을 맞춰 연구를 진행했다
2012년경부터 주요 우울증 에피소드 비율이 갑자기 크게 증가한 것을 볼 수 있다. 절대적 수치(2010년 이후에 증가한 발병 건수)로 보면,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보다 훨씬 크게 증가했고, 하키 스틱 모양의 증가 양상이 훨씬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하지만 남자아이들은 애초에 여자아이들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상대적 비율로 보면 증가 비율은 양성 모두 약 150%로 비슷하다. 즉, 우울증 발생 빈도는 약 2.5배나 증가했다.
우리는 무한한 연결의 유토피아를 제시했던 스마트폰으로 인해 오히려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 우울증을 증폭시키는 아이러니를 경험하고 있다. SNS에 끊임없이 올라오는 자기 과시적 콘텐츠는 십대들에게 ‘타인과의 비교’를 강요하며, 딥페이크와 같은 디지털 범죄는 너무도 쉽게 ‘사회적 폭력과 괴롭힘’을 일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소셜 미디어의 큰 아이러니이다. 거기에 더 많이 몰입할수록 외로움과 우울증을 겪기가 더 쉽다. 이것은 개인 차원과 집단 차원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현상이다. 십대 청소년 전체가 현실 세계에서 어울리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활동을 줄이자, 그들의 문화가 변했다. 그들의 융화성 욕구는 충족되지 못한 채 남았다(심지어 소셜 미디어에서 활동하지 않는 소수의 십대들까지 같은 영향을 받았다).
미래에 대한 아이들의 자신감도 감소하고 있다. 우울증, 불안과 같은 정서적 특징은 여자 아이들에게서 높은 반면 남자 아이들은 사회적 성취동기가 낮아진다. 디지털 세계 속에서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정작 현실 세계에서 필요한 사회적 역량을 기를 기회를 잃어버린다.
디지털 시대가 시작된 이래 테크 산업은 남자아이들이 원하는 일을 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점점 더 강력한 방법들을 발견했는데, 심지어 이제 남자아이들은 한때 그런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필요했던 사회적, 신체적 위험을 감수할 필요조차 없다. 전통적으로 ‘남자다운’ 기술과 속성으로 간주되던 것들이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가치가 떨어지고 안전 지상주의 문화가 성장하면서 가상 세계가 그런 욕구들을 직접 충족시키려고 나섰지만, 성인기로의 전환에 필요한 기술들을 촉진하는 방식으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럼, 앞으로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 앞에서 저자가 지적했던 문제점 - 현실 세계의 과잉보호와 디지털 세계의 과소보호 - 을 되돌려 놓으면 된다. 현실에서는 아이들이 더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놀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아이들은 디지털 세계에서의 취약점을 인식하고 보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저자는 책에서 아래 네 가지 기본적인 개혁 방향을 제시한다.
1. 고등학생이 되기 전에는 스마트폰 금지. 9학년(대략 만 14세) 전까지는 기본 휴대폰만 제공함으로써 아동이 24시간 내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시기를 늦추어야 한다.
2. 16세가 되기 전에는 소셜 미디어 금지. 사회 비교social comparison와 알고리듬이 제공하는 인플루언서의 파이어호스에 접하는 시기를 아동의 뇌 발달 과정에서 가장 취약한 시기가 지난 뒤로 미룬다.
3. 학교에서 휴대폰 사용 금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든 학교에서 등교 후부터 수업 시간이 끝날 때까지 학생의 휴대폰과 스마트워치,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는 그 밖의 개인용 전자 기기를 로커나 잠금 장치가 있는 가방에 보관하게 한다. 이것은 학생들끼리, 그리고 교사에게 주의를 집중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다.
4. 감독하지 않는 놀이와 독립적 행동을 더 많이 보장한다. 이것은 아동이 사회성 기술을 자연스럽게 발달시키고 불안을 극복하고 자립적인 영 어덜트young adult로 성장하도록 돕는 방법이다.
저자는 이 개혁이 달성될 수 있도록 정부, 학교, 기업 그리고 부모가 해야 할 일들도 친절히 알려준다. 모두 공감되는 제안들이다.
다만, 이해관계자들이 많기 때문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나라 현실을 보자면, 변화를 이끌고 협력 관계를 주도해갈 리더십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부모들 사이에서도, 정부 부처 사이에서도, 학교 관계자 사이에서도 이해득실을 따라 편 가르기 하는 모습이 먼저 상상되는 건 기우일까. 우선은 부모로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먼저 챙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