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고통』 폴 블룸
일이 고통스러울 땐 이직을, 사람이 고통스러울 땐 이별을 떠올린다. 하지만 떠남을 결정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결국 그 일과 사람을 선택한 것도 ‘나’이기 때문이다. 그런 갈림길에서 나는 이 책을 만났다. 『최선의 고통』.
영문 제목은 ‘THE SWEET SPOT’.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최적의 지점이 시장을 움직이듯, 삶에서 쾌락과 고통이 만나 균형을 이루는 지점이 있다면 어디쯤일까. 흥미가 생겼다.
인간은 행복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책은 우리가 고통을 피하기보다, 때로는 스스로 고통을 선택하는 존재임을 다양한 사례와 연구를 통해 보여준다. 매운 음식을 즐기고, 공포 영화를 찾고, 에베레스트를 오르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 이 모든 고통은 사실, 인간이 가진 다양한 욕망을 채우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쾌락주의자이기만 한 것이 아니며, 이는 좋은 일이다.
저자 폴 블룸은 인간의 동기를 세 가지로 나눈다. 쾌락적 욕망, 도덕적 욕구, 의미를 추구하는 본능(eudaemonic drive).
우리는 늘 행복하길 바라지만, 그 행복의 정의는 단순하지 않다. 가령 ‘행복한 삶’과 ‘의미 있는 삶’은 반드시 겹치지 않는다. 연구에 따르면, 삶에 의미를 느끼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불안과 걱정을 경험한다.
삶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야심 찬 목표를 세우고, 더 많은 불안에 시달린다.
요즘의 나는 그 경계 어딘가에 서 있는 듯하다. 안락함을 좇기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붙들고 싶은데,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그 모호한 무언가는 나를 지치게도 하지만, 동시에 버티게도 한다.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고통을 단순히 참아야 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인간은 어떤 고통을 즐긴다. 매운 음식, 격렬한 운동, 공포영화, 뜨거운 사우나… 그 모든 것에는 묘한 쾌락이 숨어 있다.
왜일까? 저자는 ‘대립 과정 이론(opponent-process theory)’을 언급한다.
우리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차이에 반응한다. 행복의 비밀은 불행에 있을지도 모른다.
고통은 쾌락을 더욱 짙게 만들고, 동시에 우리의 주의를 집중시키며 자아로부터 잠시 벗어나게 해준다. 끊임없이 되뇌는 생각들,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에서 벗어날 틈을 주는 것이다.
책은 자해나 BDSM 같은 사례까지 다루며, 고통이 정신을 진정시키는 심리적 기능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저자는 이를 맹목적으로 옹호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선택된 고통’이라는 전제다.
아이를 갖지 않았다면 더 행복한 삶과 결혼 생활을 누렸을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도 그들은 여전히 부모가 된 것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면서 가장 잘한 일로 꼽는다.
책에서 가장 강하게 와닿았던 건, 삶의 의미와 고통은 불가분의 관계라는 사실이었다. 아이를 기르고, 산을 오르는 일 모두가 불편하고 고되다. 그러나 바로 그 과정에서 ‘나’는 변화하고, 확장된다.
블룸은 의미 있는 삶의 네 가지 요소를 말한다.
1. 소속감 – 타인과의 연결
2. 목적 – 헌신할 만한 가치 있는 대상
3. 내러티브 – 삶을 설명하는 이야기
4. 초월 – 자아를 벗어난 몰입 또는 경외의 순간
누군가는 연결되기 위해, 누군가는 무언가를 완성하기 위해, 누군가는 삶에 대한 이야깃거리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견딘다. 나도 마찬가지다.
책의 마지막 장은 중요한 감각을 일깨운다. 고통은 언제나 유익한 것이 아니다. 몸과 마음을 해치는 고통, 회피해야 할 고통도 있다. 하지만, 블룸은 이렇게 말한다.
선택적 고난은 커다란 즐거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의미 있다고 여기는 경험의 필수 요소다. 선택적 고난은 우리를 다른 사람과 연결하며, 공동체와 애정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또한 깊은 정서와 마음의 감정을 반영한다.
나는 이 책의 메시지를 이렇게 정리하게 됐다.
고통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건 미련한 일이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고통을 선택하느냐. 그리고 그 고통이 내 삶의 어느 부분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내가 인식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고통의 sweet spot이다. 회피도 맹신도 아닌, 감당할 수 있고, 감당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고통. 그 고통이 나를 조금이라도 단단하게 만든다면, 그건 버릴 이유가 없다.
물론 그 선택이 항상 정답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의미를 모른 채 고통을 떠안는 것보다는, 스스로 선택한 고난에 머무는 것이 낫다. 그리고 그 선택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최선의 고통』은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지금 당신이 감당하고 있는 고통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