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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교회, 불편한 복음

마흔에 읽는 성경 - 에베소서

by 재희


‘그 교회는 ○○대 출신이 많아’,
‘그 공동체는 대기업 다니는 사람들이 많대’,
‘그 팀은 아이들 학교가 다 비슷하더라’.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비슷한 환경과 정서를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더 쉽게 열린다. 함께 있는 시간이 편하고, 나눌 말이 많고, 갈등도 덜하다. 좋은 사람들과 교회 생활을 함께 한다는 건 축복이다.


하지만 때때로, 그 '편안함'이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는 벽이 된다. 낯선 문화, 다른 배경, 불편한 차이들로 인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조용히 소외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은 과연 우리가 '비슷함' 안에서 모이기를 원하셨을까?



벽을 허무신 그리스도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쓴 옥중서신 중 하나다. 당시 교회는 유대인 출신 신자들과 이방인(비유대인) 출신 신자들 사이의 갈등으로 긴장 상태에 놓여 있었다. 유대인 신자들은 자신들이 '원래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방인 신자들은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받는 현실에 마음의 상처를 입곤 했다.


바울은 이런 교회 상황을 향해 단호하게 말한다.

그리스도는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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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2:14, 새번역]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더 이상 이방인도, 외국인도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 시민이며, 같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한 가족이다.


[에베소서 2:19, 새번역]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은 외국 사람이나 나그네가 아니요, 성도들과 함께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우리 교회는 벽인가? 다리인가?


에베소서의 핵심 메시지는 분명하다. 교회는 ‘벽’을 세우는 곳이 아니라, ‘다리’를 놓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서로 다른 이들을 연결하고, 낯선 존재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곳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떨까?


우리의 교회는, 내가 속한 공동체는 누군가에게 다리가 되고 있을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벽이 되고 있진 않을까? 하나님은 ‘서로 다른 우리’가 하나되는 것을 원하신다. 사회적 지위, 출신 지역, 학벌, 경제적 배경, 성격의 차이… 우리는 다르지만, 한 성령, 한 주님, 한 하나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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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4:3-6, 새번역]
성령이 여러분을 평화의 띠로 묶어서, 하나가 되게 해 주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그 부르심의 목표인 소망도 하나였습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십니다.



복음, 차이를 품고 하나되는 능력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어떤 이상적인 공동체보다 훨씬 더 낯설고 다양하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불편해하면서도 함께 하는 교회를 통해 이 세상의 벽을 허물어가길 원하신다. 그런 의미에서 ‘편한 교회’가 좋은 교회는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불편함을 감내하는 교회, 다름을 포용하는 교회가 복음을 진짜로 살아내는 교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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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는 분위기가 너무 좋아요."
"우리 소그룹은 마음이 잘 맞아요."


그 말 속에, 나와 다른 누군가가 불편해서 떠난 이야기는 숨어있지 않을까?
에베소서를 읽으며, 다시 묻게 된다.


나는 벽을 세우는 사람인가? 벽을 허무는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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