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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위 Mar 21. 2023

약이 떨어졌다

편두통 약이 이제 한 봉 남았다. 


아주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았는데 글을 쓰지 않았다고 아프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 사이에도 아주 꼬박꼬박 두통이 찾아왔고, 약을 먹는 날도 약을 먹지 않고 버틴 날도 있다. 그 날들을 지나고 지나 오늘에 왔는데, 그 사이 나는 새로운 학교로 왔다. 거리는 아주 조금 가까워졌지만, 나는 미처 출근시간 9호선 급행열차의 위엄에 대해서 알아보지 못했다. 테트리스 맞추듯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으면 어김없이 누군가 밀고 들어오는 9호선 급행을 타다가 출근과 동시에 내 컨디션은 이미 퇴근해야 할 상태가 되어버린 다는 것을 일주일도 안되어 깨달았다. 그래서 운전을 헀는데, 역시 나는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하지 않는 출근시간 서울행 경부고속도로의 위엄에 대해서 미처 생각하지 않았다. 결론은 어쨌거나 출근도 퇴근도 몹시 어렵다는 거다. 


그런데 말이다. 출근길이 아무리 고달프고 퇴근길이 아무리 힘들어도, 학교가 재미있다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한다. 이 학교는 아이들이 참 착하다. 우리 반 아이들은 (아직 한달도 만나지 않은 아이들에 대해서 섣부르게 판단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지만) 참 착하다. 착하고 어딘지 고요하다. 조회 시간에도 내가 말하지 않으면 크게 떠들지 않는데 그 순간에 흐르는 어색함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수업도 좋다. 아이들이랑 촬영 수업 하니 그저 재밌다. 


그런데 말이다. 납득되지 않는 것들이 매일 하나씩 고개를 내민다. 4시 20분이 퇴근시간인데 수업이 4시 20분에 끝난다. 종례를 하고 청소를 하고 나면 3-40분이 된다. 당연히. 담임 교사에 대한 배려가 없다. 그리고 나는 개학하고 일주일 후에 3학년 담임교사 8명 중 6명이 기간제 선생님이고 나를 포함한 2명이 올해 발령받은 교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입안 가득 쓴맛이 차올랐다. 나는 3학년 담임인데 생기부 업무가 통째로 내 업무이다. 이것도 너무나 이상했지만 학교는 종종 새로운 방식의 이상함을 정말 이상한 방식으로 던져주기 때문에 받아 들이고 있다. 그런데 자꾸만 화가 난다. 어떤 부당함들이 무거운 공기처럼 바닥에 깔려 있는데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말해도 안된다는 것을 알거나 말했을 경우 돌아올 부당함을 알기 때문일까. 


어쨌거나 아이들도 좋고, 수업도 좋고, 모든 것이 작년보다 나아졌지만... 퇴근하고 나면 눈이 감긴다. 

병원에 가야하는데... 이제 그만 아프고 싶다. 

약을 조금만 먹고 올 한 해를 잘 버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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