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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위 Apr 04. 2023

4월 이야기

스즈메와 나무와 나 

4월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곧 3월이 끝났다는 말이기도 하다. 한 달이 끝나고 출석부를 정리하다가, 학교에 오지 않거나, 늦게 오거나, 일찍 가는 아이들의 마음에 대해서 또 잠깐 생각했다. 4월이 시작되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벚꽃은 때 이르(다고 생각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생각일 뿐일지도 모른다)게 만개하였고 한낮에는 살짝 덥다. 시간은 슝슝 흐르는구나를 생각하다가 또 잘 모르지만 시간이 순차적으로 흐르지 않는 어떤 차원에 대해서 잠깐 생각한다. 어쨌거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조금씩 늙고 있고 아이들은 조금씩 크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정말 건망증이 심해지고 있다. 실재했지만 내 기억 속에서는 사라져버린 무수한 순간들에 대해서 또. 생각한다. 


주말에는, 체력을 추스르기에 급급하지만 또 동시에 봄이 와버렸고 아이들과 놀기도 해야하므로 강력한 비타민을 챙겨먹고 나무와 영화를 보러 갔다. 스즈메의 문단속. 제목부터가 몹시 흥미로웠고, 나무는 이 감독의 전작 중 하나인 <너의 이름은>의 OST를 아주 열렬하게 듣고 있다. (아이의 휴대폰에 유튜브를 막았더니 컴퓨터로 ost를 재생해서 그걸 휴대폰으로 녹음해서 듣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우리의 자리는 제일 뒷자리였다.) 나무는 씨익 웃으며 안경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렸다. 어쩌라고? (나무가 가장 즐겨하는 말이다.) 라는 말이 나올 뻔 했지만 다행히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자막이 보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내 마음대로 나무를 과신하며 우리는 그냥 영화를 보았다. 영화가 클라이맥스를 향해 마구 내달리기 시작할 무렵, 나무는 또 화장실이 몹시 급하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출입구가 하나밖에 없는 작은 상영관이어서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는 길고도 긴 길을 걸어야 했다. 다행히 나무는 참아보겠다고 했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할 때 화장실에 갔다 오라고 했는데, 나무는 다 보고 가겠다고 했다. 관객 대부분이 극장을 빠져나갔지만 우리는 자리에 앉아서 ost가 끝날 때까지 앉아 있었다. 나무의 방광이 살짝 걱정되었지만 나무는 재촉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마지막까지 음악에 집중했다. 마침내 스크린에 까만 화면만 남았을 때 나는 눈물이 났다.  


2011년 3월 11일. 일본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나무는 생후 두 달이 막 지난 아기였고, 나는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기저귀 갈아주고 씻기는 것이 삶의 전부인 초보 엄마였다. 그때 나무는 일본에서 만든 기저귀를 쓰고 있었는데, 3월 11일 이후 더는 그 기저귀를 살 수 없었다. 너무나 끔찍한 비극이라고 생각했지만, 당장 나무의 엉덩이에 발진을 일으키지 않는 기저귀를 찾는 일이 더 급했다. 그때는 미처 그곳에 남겨진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2011년에 스즈메는 네 살이었고, 지금은 고등학생이 되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나는 나무에게 대지진 뉴스를 보았던 그날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2011년에 한 살이었고 지금은 6학년이 된 나무와 그곳에 남겨졌을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극장 근처에 있는 우동집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우동집이 브레이크 타임이라 먹지 못하고 이동하는데, 나무가 말했다. 엄마. 영화 같이 봐서 참 좋았어. 사춘기 아이의 입에서 좀처럼 듣기 힘든 말이었다. 


2011년과 2023년. 한국과 일본. 나무와 스즈메와 나. 우리의 일상과 그들의 일상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멀었지만, 또 생각보다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망증이 심해지고 있지만, 그래서 더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더 나의 삶을 넘어선, 당신의 삶과 그들의 삶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된다. 


4월이 시작되었다. 4월에는, 4월의 이야기에 좀 더 귀기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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