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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위 Apr 09. 2023

흔들리지 않는 (이상한) 편안함

9호선 급행과 함께하는 매일 아침

  집에서 학교까지 차로는 1시간, 대중교통으로는 1시간 30분이 걸린다. 대중교통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마무시한 9호선 급행열차를 타야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한다. 그 이유는, 물론 편두통 때문이다. 학교까지 가기 위해서는 경부고속도로 - 올림픽도로 코스로 가야하는데, 차가 쌩쌩 달리는 그 길에서 갑자기 편두통이 온다면, 어떻게 대쳐해야 할지 생각만 해도 막막하다. 어쩌다 운전을 해서 가는 날이면 갑자기 들이닥칠 전조증상에 대한 공포 때문에 한 시간 내내 바짝 긴장한 채 앞만 보고 간다. 다행히 운전 중에 편두통의 전조증상이 나타난 날은 없지만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편두통에 대한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어린이집 아마들과 글쓰기 모임을 한다. 이번 달 주제는 살면서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일을 하고 글쓰기. 어떤 일을 하고 글을 써보면 좋을까 요리조리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이거다 싶은 게 떠오르지 않았다. 매일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떠오르는 장면은 몬토크 해변으로 가기 위해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이터널 선샤인 속 조엘의 모습이었다. 출근을 위해 지하철 플랫폼 위에 서서 학교가 아닌 다른 어딘가로 떠나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역시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오늘은 월요일이잖아. 월요일부터 무단결근을 하면 일주일 내내 마음이 불편하겠지. 그래 월요일에 무단결근은 아니야. 수요일쯤 다시 생각해보기로 하고 장마비에 젖은 폐지 더미처럼 무거운 몸을 지하철에 구겨 넣는다. 


  출근시간의 신분당선은 시간에 따라, 요일에 따라, 칸의 위치에 따라 붐비는 정도가 미세하게 다르다. 다행인 것은 내가 지하철을 탈 때가 피크 시간은 아닌 것 같다는 사실 정도다. 하지만 출근시간의 9호선은 사정이 좀 다르다. 9호선 급행열차는 언제나 만차이지만 모든 역에서 사람을 더 태울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 9호선 급행을 타면 열차를 타는 동안은 숨을 쉴 수가 없기 때문에 내려서 한 번에 숨을 몰아쉰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는데, 농담이 아니었다. 그나마 앞에 키가 나와 비슷한 사람이 서 있다면 사정이 좀 낫지만 키가 큰 남자가 앞에 서는 날은 수양하는 마음을 갖지 않고는 버티기가 힘들다. 그런데 또 신기한 것은 처음에는 내 몸을 둘러싼 타인의 몸들로 인해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렵지만 어느 순간 다들 자기만의 공간을 찾아서 서 있게 된다는 것이다. 미세하고 물렁물렁한 테트리스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 

  물렁한 테트리스 조각들의 조합은 매번 다른 모양이다. 어떤 날은 앞에 선 여자의 머리카락이 내 코 끝을 자꾸 간질이고, 또 다른 날에는 옆에 선 남자의 휴대폰 속 번쩍이는 게임 화면이 머리를 아프게 한다. 놀라운 사실은 자신의 몸 하나를 세울 자리조차 넉넉하지 않은 그 공간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어떻게든 팔을 올려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 옆에, 앞에, 뒤에 누가 서느냐에 따라서 그날의 기분이 좌우된다. 누가 설지, 또 그 사람이 무엇을 할지 예측할 수 없지만 굉장히 많은 순간에 불특정한 그들로 인해 화가 난다. 슬프지만 그의 존재만으로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했다. 역시 마찬가지로 나의 존재만으로 내 앞에 선, 옆에 선, 뒤에 선 누군가는 불쾌감을 느낄 것이다. 가방을 뒤에 대지 않으면 뒤에 선 사람의 몸이 내 엉덩이에 닿고, 내 어깨가 누군가의 몸을 밀고 있다. 다리에 힘을 주지 않으면 내가 서 있는 그 작은 공간조차 뺏길 수 있기 때문에 지하철에서 내릴 때는 언제나 발가락이 저린다. 그런데 신기한 건, 어느 순간 내 몸이 자리를 잡고 (몹시 갑갑하지만) 아무 것도 잡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는 (이상한)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물렁한 테트리스 조각들이 서로를 지탱해주고 몸의 어느 세포도 긴장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 역과 역 사이에 잠깐, 뭉게뭉게 피어난다. 그럴 때는 눈을 감아야 한다. 눈만 감으면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의 디테일들이 지워지고 나는 몬토크 뿐만 아니라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갖게 된다. 물론 문제는, 이 시간이 결코 길지 않다는 것이다. 지하철이 다음 정거정에 서고 내 옆에 서 있는 누군가가 하차를 위해서 자리에서 빠져나가는 순간 서로를 지탱했던 균형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새로운 사람들이 타고 다시 물렁한 테트리스 조각들은 서로의 자리를 찾기 위해 분투하게 된다. 



  다시 한 정거장을 더 버티자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일도 꼭 저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떤 균형을 향해 분투하고, 균형에 다다르지만 또 이 균형은 무너지고. 그런데 그 잠시의 균형을 주는 것이 좁은 지하철에서 존재 때문에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던 그들이라는 사실에 잠시지만 그들을 미워했던 마음을 반성하게 된다. 출근시간에 9호선 급행열차는, 참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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